ARTICLES \"맛있는 음악가, 멋있는 정치가\"...이그나츠 파데레브스키 2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7-06-02
2007-11-28 12:46:21
허원숙 조회수 2798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피아니스트 플러스>코너

2007년 06월 02일 원고....이그나츠 파데레브스키 (2)  “맛있는 음악가, 멋있는 정치가”

1860.11.6-194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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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파데레브스키의 어린시절과 피아니스트로 입문하던 시절, 그리고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떨치던 모습까지 말씀드렸지요.

이미 바르샤바 음악원의 교수가 되어서 활동하던 때, 레세티츠키 선생님께 테스트를 받고 가망없다는 혹평을 받았지만 노예처럼 연습해서 1년 후 다시 선생님을 찾아 뵙고 자신의 바뀐 모습에 감동한 선생님은 그를 제자로 받아주었다는 이야기부터, 자신의 전용기차로 미국을 횡단하며 개최한 연주여행 이야기까지...

그런 파데레브스키의 연주를 보고 어떤 사람은 당시의 위대한 바흐 해석가였다고 말을 하고요, 또 어떤 이는 파데레브스키의 베토벤 연주를 절대 간과할 수 없다는 말을 했고요, 또 어떤 이는 파데레브스키야말로 당시 최고의 쇼팽연주가이면서, 또 리스트 헝가리 랩소디는 그 사람처럼 잘 칠 사람은 없다고 말했고요... 뭘 믿어야 할지...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죠. 바흐에서 베토벤, 쇼팽, 리스트 모든 작품을 두루 섭렵한 피아니스트이구나 하는 점 말이죠.

하지만 파데레브스키는 피아니스트로서만 두각을 나타낸 사람은 아니었고요, 작곡에도 많은 관심과 또 작품을 남겼는데, 우선 오페라 2편을 남겼고, 교향곡 1곡,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 2곡,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1곡,  가곡들, 그리고 피아노곡들이 단연 많았지요. 특히나 피아노 곡 중에서 소나타 op.21, 변주곡과 푸가 op.23 같은 곡들은 테크닉이 너무 어려워 별로 유명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작곡가 자신의 예언이 적중해서 현재 잘 연주되지 않는 작품이 되었지만, 전반적으로 파데레브스키의 작품에는 나라를 사랑한 작곡가답게 폴란드를 나타내는 민족적 특징이 되는 테마가 많이 들어있습니다.

 


파데레크브스키의 작품으로 가장 알려진 곡은 G major Minuet 인데요, 이 곡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도 없을 정도로 유명한 곡인데요.

파데레브스키가 활동하던 1920년-30년대에 자녀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친 부모들에게는 꿈이 있었대요. 그것은 바로 언젠가 자신의 자녀들이 작은 음악회에서 파데레브스키의 미뉴엣을 치게 될 때가 있겠지 하는 희망이었다는데요, 그 만큼 이 곡은 어린 피아니스트의 성취도의 척도가 된 곡이라는데, 그만큼 인기가 있었던 곡이라는 말이기도 했겠죠. 전반적으로 모차르트 스타일로 작곡된 곡이면서, 너무 어렵지도 않고 또 너무 쉬운 곡도 아닌 이곡은 무엇일까?

 


파데레브스키가 직접 연주하는 파데레브스키의 미뉴엣 G 장조 op.14-1과 (1937년 녹음)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 10번(1922년 녹음)을 감상하시겠습니다. (연주시간 4:03 + 4:47= 8분 5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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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요? 맛있죠? 예전의 연주가들에게는 요즘의 연주자들에게서 느끼는 정확성을 넘어서 이렇게 살아있는 혼이 느껴졌었어요.

이런 파데레브스키의 작품은 영국의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의 작품에 모티브가 되기도 했는데요, 파데레브스키의 Fantaise Polonaise가 엘가의 교향적 서곡 Polonia에 들어있기도 했죠. 또한 카미유 생상스는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폴로네즈를 파데레브스키에게 헌정했고요.

 


일생동안 열렬한 애국자였던 파데레브스키는 1910년 튜튼 기사단을 물리쳤던 폴란드의 승리를 기념하는 기념비를 크라코프 시에 기중하는 등 음악 외의 활동도 많이 하였는데요, 하지만 그의 본 직업은 정말 많은 연주회와 작곡과 작품발표로 분주한 풀타임 음악가였어요. 그러던 그가 이제는 그의 인생이 바뀌는 시점에 도달했습니다.

파데레브스키는 유럽과 미국의 최고의 정치가들을 많이 알고 있었고, 그들과 친밀하게 지냈는데 그런 친분으로 인해서 후에 파데레브스키에게 정치 활동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파데레브스키는 폴란드의 국립위원회의 일원이 되었고, 위원회의 대표로 임명되어서 정치 활동을 하게 되는데요,  폴란드 독립을 지지하도록 윌슨 대통령을 설득하게 됩니다.

그 결과 윌슨 대통령은 1918년 1월 8일에 14개의 조항이 들어있는 윌슨의 평화원칙을 발표했고요, 그 중에 13번째 조항에 폴란드의 재건, 독립을 언급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 임시 정부의 총리였고 반-사회주의자였던 유제프 피우수츠키는 파데레브스키야말로 가장 유명하고 대중적인 인물이고 사람들로부터 승리의 힘으로 믿어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보았어요. 바르샤바에 당성이 배제된 전문가들의 정부, 이른바 초당파정부를 수립해달라고 파데레프스키에게 부탁했고, 1919년 1월 17일에 마침내 정부가 수립되었는데 파데레프스키는 바로 이 정부의 외무장관직을 겸한 총리가 되었습니다.

총리로 재임하던 1919년에 파데레브스키가 이룬 업적은 대표적으로 베르사이유 평화조약이 있었는데 바로 그 조약으로 폴란드를 되살아나도록 만든 장본인이 되었죠.

잘했죠? 박수! 짝짝짝!

애국자로 또한 정치가로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한 파데레브스키에게 1차대전 당시의 빅4라고 불리던 미국의 Wilson, 프랑스의 Clemenceau, 영국의 Lloyd George, 이태리의 Orlando 는 입을 모아, "No Country could wish for a better advocate"라고 말했죠. “이 나라에 이보다 더 좋은 대변자는 없다” 인가요?

 


음악 듣겠습니다.

파데레브스키가 작곡한 곡을 듣겠습니다.

파데레브스키 피아노 협주곡 A 단조 op.17 중에서 2악장입니다.

안타깝게도 파데레브스키의 연주는 아니고요, 피아노에 Janina Fialkowska, 폴란드 국립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Antoni Wit 의 지휘로 보내드립니다. (연주시간 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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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