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늦게 피는 꽃이 아름답다\"...이그나츠 파데레브스키 1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7-05-26
2007-11-28 12:45:50
허원숙 조회수 2614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피아니스트 플러스>코너

2007년 05월 26일 원고....이그나츠 파데레브스키 (1)  “늦게 피는 꽃이 아름답다”

1860.11.6-194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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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피아니스트이면서, 작곡가이면서, 정치인이면서 애국자인 분입니다. 폴란드의 피아니스트 이그나츠 파데레브스키.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대단한 존경을 받았던 위대한 연주가인데요, 이렇게 대단한 분, 어려서부터 재주가 비상하고 세간의 이목을 한 몸에 받았겠죠?

아닙니다. 

파데레브스키는 1860년에 태어나서 열여덟 살에 바르샤바 음악원을 졸업하고 곧바로 모교의 피아노 선생으로 재직하다가 1884년 스물네 살에 오스트리아 빈의 저명한 피아노 교육자인 Theodor Leschetizky의 오디션을 받으러 빈으로 갑니다. 당시의 파데레브스키는 물론 음악원을 졸업했고, 또 음악선생으로 재직하고 있었지만 그다지 별로 배운 것이 없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Leschetizky 선생님으로부터 청천벽력같은 말을 들었대요.

“자네는 재능은 조금 있긴 한데, 너무 늦은 것 같네. 이렇게 손가락이 훈련이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 정말 절망적일세. 그리고 손가락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는 상태인 것 같군.”

그러면서 이렇게 잘못된 테크닉으로 피아니스트로서 활동을 한다는 것은 무리이니, 꿈을 접는 게 좋겠다는 말을 했죠.

그 절망적인 말에도 불구하고 파데레브스키는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결심을 하고 그 때부터 연습을 노예처럼 했다고 해요. 그래서 1년 후에 다시 레세티츠키 선생님을 만났을 때, 선생님은 파데레브스키의 몰라보게 변화된 모습을 보고 정말 감동을 받아서, 이젠 자기 문하로 들어와도 좋다고 허락했다고 하죠. 하지만 가슴을 에이는 한 마디를 하는 것을 잊지는 않았죠.

“너, 어디 가서 내 수제자라는 둥 그런 소리는 하지 말아!”

 


음악 듣겠습니다.

쇼팽의 소나타 2번 op.35 중에서 3악장 장송행진곡과 4악장입니다.

1928년 (68세) 이그나츠 파데레브스키의 연주로 감상하시겠습니다. (연주시간 합 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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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데레브스키는 1888년은 자신에게 터닝 포인트같은 해라고 하죠. 이미 파리 같은 곳에서는 데뷔를 했었지만, 1888년에는 드디어 음악의 도시 빈에서 비르투오조 피아니스트로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는데요. 그 후 유럽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호주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전 세계를 종횡무진하면서 수많은 연주회를 가졌는데, 미국에서만도 1500회가 넘는 연주회에 그것도 연주회마다 가장 많은 청중을 동원한 연주가가 되었지요. 새로 만든 카네기홀에서 최초로 솔로 리사이틀을 가진 피아니스트이기도 했었는데, 그 때 찾아온 청중들이 거의 3천명에 육박했다고 하죠.

그 후 1902년에는 같은 날 카네기홀에서 자신의 피아노 독주회가 열리고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는 자신이 작곡한 오페라가 공연되는 진기록을 새우기도 했는데, 양쪽 공연장이 모두 매진되었다고 하죠.

 


파데레브스키는 미국에서 이렇게 연주여행을 많이 했는데, 그 때 타고 다닌 교통수단이 무엇인지 아세요?

개인 자가용 기차였다고 해요. 그 열차에는 피아노를 여러 대 싣고 다녔다고 하고요.

파데레브스키가 탄 기차가 연주회가 개최되는 도시에 도착하면, 온 도시의 사람들이 다 나와서 파데레브스키를 환영하고 연주회장으로 호위하고 갔다고 하고, 또 그냥 기차가 지나쳐 가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파데레브스키가 탄 기차를 보려고 진을 치고 있었다고 하죠. 그러니 그 인기가 얼마나 많은지 짐작할 수 있겠는데요.

그런데 도대체 이 분이 왜 그렇게 인기가 많았는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한 가지는 파데레브스키의 외모에서 풍기는 매력 때문이었다고 해요. 젊은 시절의 파데레브스키는 붉은 색 머리카락을 길게 아무렇게나 나부끼며 피아노를 치곤 했는데요, 그 헤어스타일이 유행처럼 번져나가서 연주자들이 앞 다투어 머리를 기르고 top hat을 쓰고, 긴 코드를 입고 다녔다고 하죠.

파데레브스키의 인기는 단순히 패션을 따라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사탕, 인형, 장난감, 비누 같은 것들도 파데레브스키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으로 만들어졌다는데, 그 중에서도 크리스마스 장난감 중에 피아노 앞에 앉은 검은 연미복과 나비 넥타이를 한 , 머리 큰 남자의 인형이 있었다고 해요. 이른바 파데레브스키 인형인데, 태엽을 감으면 그 인형은 사정없이 머리를 흔들면서 피아노를 치곤 했다죠.

그런 그가 연주회에서는 어떻게 했을까...

대중 앞에 나선 파데레브스키는 엄청난 카리스마로 청중을 압도했다고 하는데, 연주회마다 영적인 해프닝 spiritual happening 그 자체였다고 해요.

연주로 말하면, 조금 전에 장송행진곡에서 들은 것처럼 아름다운 소리와 음색으로 오케스트라를 연상케 하는 연주였다고 하는데, 거기에 섬세한 터치와 벨칸토 창법같은 아름다운 노래를 구사하는 피아니즘, 페달 테크닉... 환상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연주였다고 해요.

어떤 사람들은 파데레브스키가 너무 지나치게 템포 루바토를 구사한다고 혹평을 하기도 했는데, 그것은 당시의 연주경향이 로맨틱 스타일이라 그런 것이었죠. 그리고 파데레브스키는 로맨틱 피아니스트의 마지막 그룹에 속한 피아니스트였고요.

 


음악 듣겠습니다.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곡을 타우지히가 편곡한 작품.

Man lebt nur einmal <인생은 단 한 번>입니다. 파데레브스키의 1930년도 연주입니다.

(연주시간 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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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까지는 인기 많은 피아니스트의 이야기였지만 다음 번에는 급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대하세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