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사랑한다는 마지막 말도 못 남기고\"...윌리엄 카펠 2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7-05-19
2007-11-28 12:45:23
허원숙 조회수 2804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피아니스트 플러스>코너

2007년 05월 19일 원고....윌리엄 카펠  (2) “ 사랑한다는 마지막 말도 못 남기고”

1922.9.20~1953.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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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이후 혜성처럼 나타난  피아니스트 윌리엄 카펠은 반 클라이번이나 캐나다 출신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나타나기 전 미국 음악계의 희망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으로 이민 온 유럽이나 러시아의 피아니스트와는 달리 카펠은 유일하게 미국 땅, 그것도 맨하탄에서 태어난 토종 미국 피아니스트였고 또 세계가 주목하는 젊은 피아니스트였으니까요.

1938년 16살의 나이로 스승 올가 사마로프를 만나면서 연주가로서의 본격적인 수업을 받고 19살에 나움버그 상과 타운 홀 상을 수상하면서 비로소 피아니스트 반열에 오르기 시작했는데, 그런 카펠이 맨 처음 입상한 콩쿠르가 무언지 짐작하세요?

대부분의 어린 아이들처럼 카펠도 어린 나이에 콩쿠르에 도전했었는데 그 첫 번째 콩쿠르는 10살 때였고요, 재미있는 것은 그 콩쿠르의 부상이지요. 피아니스트이면서 영화배우로도 출연하기도 했던 호세 이투르비와 함께 칠면조 요리가 나오는 저녁식사를 먹는 것. 하하.

 


카펠은 올가 사마로프를 만나면서 스무 살에 연주가로서 커리어를 시작했는데 영화배우와도 같은 수려한 외모와 훌륭한 연주로 청중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인기만점의 피아니스트가 되었습니다. 비틀즈의 공연을 보는 것 같은 환호와 열기가 공연장에 가득 찼다고 하네요. 그런 그가 연주하던 곡들은 라흐마니노프, 차이코프스키, 카차투리안의 피아노 협주곡이 대부분이었고요, 이렇게 러시아 작품만이 그의 레퍼토리가 된 것은 스승 사마로프의 영향이 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카펠은 그렇게 자신의 레퍼토리 중에 베토벤이나 슈베르트의 작품이 거의 없다는 것을 후회하거나 아쉬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러시안 레퍼토리 일색이었던 카펠이 그의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은 그가 숨지기 2년 전의 일인데요, 그 마지막 2년 동안 카펠은 자신의 레퍼토리를 늘이고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슈나벨에게 가르침을 청합니다. 그 때 새로 배우기 시작한 곡들이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 쇼팽의 협주곡 등이었고요, 바흐나 드뷔시 같은 작품으로도 자신의 폭을 넓히게 되지요.

 


음악 듣겠습니다.

슈베르트의 즉흥곡 D. 935-2 A flat 장조, 1953년 Town Hall 에서의 윌리엄 카펠의 연주로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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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부터 대가의 반열에 올랐다는 카펠은 하루에 8시간씩 꼬박 연습을 했고요,  연주 여행 중에 보낸 편지에 보면 연주회와 연주회 사이에 2-3일 여유가 있어서 연주할 곡을 정비할 수 있는 조건이 되면 자신은 무대 위에서 좋은 연주를 할 수 있다고 했고, 정말 좋은 연주를 하기 위해서는 연주와 연주 사이에 1주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러니 매일 여덟시간씩 연습하고 연주하고 또 다른 연주장소로 이동하고, 고달픈 연주가의 치열한 삶을 살았던 피아니스트인데요, 인기 많은 젊은 연주가로서 신체적인 조건도 충분했다고 하죠. 영화 배우를 연상시키는 수려한 외모, 일명 John Garfield 를 연상시키는 외모였다고 하는데, 음반 북클릿을 보면 피아니스트로서는 드물게 수영복 전신사진도 있고요, 하여튼 인기는 무척 많았던 게 사실이죠. 하지만 피아니스트로서 중요한 신체부분, 특히나 손가락이 3,4,5번 손가락 길이가 거의 같아서 정말 고르게 표현해야 하는 부분에서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고 하네요. 

 


윌리엄 카펠은 살아있는 시간의 마지막 여름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보냈는데 거기서 14주 동안에 37회의 음악회를 개최했죠. 연주 장소는 시드니, 멜버른 뿐 아니라 벤디고, 쉐퍼튼, 앨버리, 홀스햄, 그리고 질롱 같은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에서도 연주를 했는데요, 질롱에서 마지막 연주를 끝으로 드디어 14주간에 걸친 연주여행을 마치고 사랑하는 부인과 두 자녀가 기다리는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타고 가던 비행기는 착륙을 두 시간 앞두고 샌프란시스코 근교의 킹스 마운틴에 충돌해서 비행기에 탑승했던 모든 사람과 함께 안타깝게 숨지게 되죠. 1953년 10월 29일. 카펠의 나이 서른 한 살 때의 일입니다.

 


음악 듣겠습니다.

카펠의 마지막 연주가 있었던 오스트레일리아의 질롱에서의 연주로 쇼팽의 소나타 2번을 보내드립니다.

1악장 Grave,doppio movimento

2악장 scherzo

3악장 Marche funebre:Lento

4악장 Presto

중에서 1,3,4 악장 (연주시간 14분 7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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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펠이 요절한 후에 부인인 레베카 안나 루 멜슨은 남편의 이름이 사라지지 않게 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고요, 그 노력은 자신이 뉴욕에서 사회인류학자가 된 이후에도 계속되었죠. 다시 결혼을 한 이후에 이름이 Anna Lou Dehavenon로 바뀌었는데도요.

그리고 메릴랜드 대학교에서는 카펠의 이름을 딴 윌리엄 카펠 피아노 콩쿠르가 2년마다 개최되고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