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죽음은 예고없이 찾아온다\"... 에밀 길렐스 3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7-05-05
2007-11-28 12:44:20
허원숙 조회수 3079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피아니스트 플러스>코너

2007년 05월 05일 원고.... 에밀 길렐스 (3) “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1916.10.19~198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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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음악원의 네이가우스 교수 문하에 에밀 길렐스보다 한 살 많은 피아니스트가 있습니다. 아시죠?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가 생각하는 길렐스는 어떤 사람일까요?

한 마디로 정직한 음악가이고 경이로운 피아니스트였다고 하죠.

에밀 길렐스는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소나타 8번을 초연한 피아니스트로도 유명한데, 그 음악회를 리히터도 보았대요. 리히터는 길렐스의 그 연주는 정말 경이로운 연주였다고 하면서, 그 날 프로코피예프의 소나타 3번도 함께 연주되었는데, 길렐스의 그 연주를 듣고 리히터는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그 곡을 자신의 연주 레퍼토리에서 뺐다고 해요. 왜냐면 길렐스의 연주가 너무나 훌륭해서 자신이 더 보탤 것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라죠. 사실, 리히터의 평생의 연주목록을 보면 2,4,6,7,8,9번은 수십 번씩 연주했지만 (no.6은 97번이나) 신기하게도 3번은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 대단해요. 리히터도....

왜냐면, 이 연주가 대략 1946년 정도라고 생각되는데, 그렇다면 이분들이 서른 살 정도였을 텐데, 그 때 아무리 훌륭한 연주를 들었고 더 보탤 것이 없다고 생각했더라도 리히터는 그 후로 50년을 더 살았는데, 그 좋아한다는 곡을 어찌 연주해보고 싶지 않았을까.... (참고:리히터는 프로코피예프 6,7,9번을 초연)

 


길렐스와 리히터는 평생 동안 단 한 차례 함께 연주한 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연주는 전쟁 중에 라디오를 위해서 연주한, 생상스의 베토벤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라고 해요. 대가들 둘이 모였으니 연주가 정말 훌륭했을 것 같은데, 리히터는 그 연주가 형편없었다고 말하면서 아마도 생상스의 그 곡 자체가 잘된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하죠.

 


에밀 길렐스는 분명 아주 위대한 피아니스트이지만 꽤나 복잡한 인물이었다는데, 격하기 쉽고 자존심을 잘 다치는 성격이었고요, 실쭉한 표정을 짓고 있기 일쑤였고, 병적인 시샘이 많은 사람이었다는데, 남을 자꾸 시샘하다보니 내면에는 늘 불행하다는 느낌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해요.

한 번은, 모스크바 음악원 복도에서 어떤 부인이 길렐스를 알아보고 옆의 아이에게 “이분이 누군지 아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란다” 하자 아이가, “아,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 라고 했대요. 그 말을 들은 길렐스는 문을 꽝 닫고 들어가 버렸다고 하는데, 에구 속 좁은 사람.... 쯧쯧... 하기에는 사연이 있어요. 리히터를 서방에 소개한 사람이 바로 이 착하고 소심한 길렐스였거든요. 그러니, 그 어린 아이 말 한 마디에 엄청 섭섭했고요....

 


음악 듣겠습니다.

러시아의 작곡가 Medtner의 Sonata Reminiscenza (추억의 소나타) A 단조 op.38을 에밀 길렐스의 1969년 2월 2일 카네기홀 실황연주 중에서 감상하시겠습니다. (연주시간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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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훌륭한 연주를 하는 사람도 내면에는 불만과 시샘과 섭섭함이 가득찼다니... 믿어지지 않지만 한 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더욱 연주가 가슴 절절이 다가오는구나 하고 생각도 되지요.

 


길렐스는 리히터가 말했듯이 프로코피예프 같은 러시아 작곡가의 작품 연주도 훌륭했지만, 그 중에도 가장 대표적인 음반이라면 죽음 직전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녹음한 베토벤 소나타인데요, 이 베토벤 소나타 전집 녹음은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1972년부터 녹음을 시작해서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지만, 아쉽게도 완성하지 못한 채로 끝나고 말았지요. 32개의 소나타 중에서 4개 소나타가 빠졌는데, 그 중에 마지막 소나타인 작품 111도 빠졌다는 게 정말 안타깝지요. 전집으로 완성은 하지 못했지만, 그 녹음 하나 하나가 완벽하고 정말 내면의 감동으로 벅차오르는 예술가의 혼이 담긴 연주인데요.

오늘은 그 중에서 정말 좋은 예를 들려드리려고 하는데, 일명“전원”으로 불리는 소나타 15번 작품 28 중에서 제2악장 Andante 입니다. 에밀 길렐스의 1982년 녹음입니다. (연주시간 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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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요?

완벽함과 완전무결함 그 자체이죠.

오른손과 왼손이 전혀 타협하지 않는, 완벽한 레가토와 완벽한 스타카토, 넘치지 않으면서

꽉 차오르는 감동. 절제와 균형..... 브렌델의 이 곡을 들으시면 음악의 차원이 얼마나 다른지 직접 느끼실 겁니다.

 


에밀 길렐스는 1985년 9월 12일 핀란드 헬싱키에서의 마지막 연주를 마치고, 모스크바로 돌아왔는데, 다음 순회 연주를 떠나기에 앞서 건강 검진을 받기 위해서 크레믈린 병원에 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주사 한 대 맞고는 3분 뒤 숨지게 됩니다.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는 길렐스의 허무한 죽음을 한탄하면서 크레믈린 병원의 의사들이 실력으로 들어간 게 아니고 정치적인 자격 요건에 따라 선임되기 때문에 실력 없이 빽만 있는 무능한 의사들 때문에 이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말합니다. 그 날이 1985년 10월 14일. 이렇게 세상을 떠난 길렐스는 모스크바의 융프라우 묘지에 안장됩니다.

한 곡 더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너무나 허전해서....

사실, 제가 길렐스의 이 곡 연주를 듣고 결정적으로 길렐스를 좋아하게 된 곡입니다.

Siloti가 편곡한 바흐의 프렐류드 B 단조.

에밀 길렐스의 1969년 카네기홀 실황입니다. (연주시간 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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