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나의 무대는 어디인가\"...에밀 길렐스 2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7-04-28
2007-11-28 12:43:53
허원숙 조회수 2212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피아니스트 플러스>코너

2007년 04월 28일 원고.... 에밀 길렐스 (2) “ 나의 무대는 어디인가...”

1916.10.19~198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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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 처음에 들려드린 곡 중에 부조니가 편곡한 리스트의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2개의 주제에 의한 환상곡 기억나시나요?

바로 그 곡이 17살의 어린 길렐스가 모스크바에서 열린 전 소비에트 음악 콩쿠르에서 연주했던 곡이었고 그 콩쿠르에서 우승함으로 말미암아 그 곡은 길렐스의 상표가 되었다고 해요.

지난 시간에 우리는 20대의 길렐스의 연주로 감상했지만, 17살의 길렐스의 연주는 과연 어땠을 지를 상상한다면?

그 당시 길렐스는 아르투르 루빈슈타인 앞에서 한 번 연주한 적이 있었다는데, 그 때의 연주를 회상하면서 루빈슈타인이 한 말이 있어요.

“나는 길렐스가 열정 소나타를 치기 시작한  그 첫 마디에서부터 그가 얼마나 많은 은총을 받은 재능을 가졌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 곡이 끝나고 나서 다른 곡도 듣고 싶다고 했더니 당시로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라벨의 물의 유희를 연주했는데, 그것은 이미 완성된 대가의 모습이었다.”

이렇게 17살에 이미 완성된 대가의 모습을 갖춘 러시아에서 가장 잘 치는 피아니스트 길렐스.

지난 시간에 말했듯이 사회주의 예능교육의 성공작이라고 불렸던 길렐스의 탁월한 연주.

하지만 그 연주는 네이가우스를 만나면서 비로소 완성된 예술가의 모습으로 탈바꿈하는데,  그 탈바꿈하는 과정이 참 본 받을 만 한 것이, 곧바로 네이가우스 문하로 들어가지 않고 일단 하던 공부를 마저 다 마치고 네이가우스에게 갔다는 것이지요.

콩쿠르 우승 후에 바로 화려한 연주가의 날개를 펼쳐도 될 만한데, 오데사 음악원에 남아서 공부하면서 몇 몇 연주만 허락한 채 그 곳에서 묵묵히 공부를 마치고 졸업을 하고난 길렐스는 1935년에 모스크바로 옮겨 네이가우스의 문하로 들어가서 이듬해 1936년에는 빈 콩쿠르 2위, 1938년에는 브뤼셀 이자이 콩쿠르 1등을 수상하고 곧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로 임용됩니다. 이때 나이 스물 두 살.... 그리고 이듬해 1939년에는 뉴욕의 국제 박람회에서 연주해 달라는 섭외를 받고 연주계약을 맺었고, 이제 길렐스의 앞에는 성공만이 남은 것 같은데.... 인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1939년 뉴욕 연주는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그 이유는.... 전쟁이죠.

뉴욕의 박람회 대신 길렐스가 연주하러 간 곳은 군부대, 병원, 최전방, 그리고 포위된 레닌그라드 같은 곳들이었죠.

 


음악 듣겠습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3번 일명 “열정” 중에서 제1악장 Allegro assai. 에밀 길렐스의 1954년 체코슬로바키아 라디오 프라하에서의 실황 연주로 보내드립니다. (연주시간 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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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나도 이렇게 전방이건, 군부대건, 병원이건 가리지 않고 열심히 연주에 힘쓴 길렐스는 1946년에 스탈린상을 수상하고, 다시 공식적인 연주경력을 쌓기 시작해서 1947년 처음으로 소련을 떠나 외국에서 연주를 하게 되면서 동유럽과 이탈리아. 스위스, 덴마크, 프랑스, 벨기에 같은 곳에서 연주회를 가졌고, 1954년에는 소련의 인민예술가가 되어서, 이듬해인 1955년 뉴욕 연주로 전세계에 급속도로 알려지는 피아니스트가 되었는데, 이 뉴욕 데뷔연주는 연주자체로도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았지만 (강철터치...), 정치적인 면에서도 획기적인 연주여행이었다고 하죠. 왜냐면 2차대전 이후 냉전시대에 소련에서 처음으로 미국에 파견한 소련 연주가라는 기록을 남기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후 모스크바에서 1958년에 처음으로 시작된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의 심사위원장을 맡게 되는데, 그 때 함께 심사위원으로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도 참석했죠. 리히터는 콩쿠르에 대해 완전히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인데, 당시 모스크바 음악계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은 모두 심사위원으로 참여해야 하는 상황이라 마지못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심사위원을 했다고 하는데, 리히터와 대조적으로 길렐스는 초대심사위원장을 맡아서 4회까지 심사위원장 임무를 묵묵히 수행했다고 하죠.

하기 싫은 일은 절대 하지 못하는 리히터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길렐스. 리히터와 1살차이이고, 같은 네이가우스 문하이고, 이렇게 콩쿠르 심사도 같이 하고... 부딪히는 일도 많겠죠? 다음 시간에 계속하기로 하고요....

 


음악 듣겠습니다.

에밀 길렐스의 최고의 음반으로 평가되는 음반인데요, 1958년 시카고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 중에서 제1악장 Allegro non troppo입니다. 지휘에는 프리츠 라이너입니다. (연주시간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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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