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연주기계의 탈바꿈\"...에밀 길렐스 1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7-04-21
2007-11-28 12:43:29
허원숙 조회수 2487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피아니스트 플러스>코너

2007년 04월 21일 원고.... 에밀 길렐스 (1) “연주기계의 탈바꿈”

1916.10.19~198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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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해 드릴 피아니스트는 거인입니다.

건반 위의 거인이라는 별명을 가졌고 또 강철 터치라고도 불리는 이 피아니스트의 키는 5피트 6인치. 환산하면 167cm .... 별로 크진 않군요. 으하하.

바로 에밀 길렐스인데요, [Emil Grigoryevich Gilels, 1916.10.19~1985.10.14] 우크라이나의 오데사 출신이면서, 뛰어난 기교와 절제된 연주로 유명하였고, '강철 터치'라는 별명처럼 강인한 힘과 테크닉이 뛰어난 연주가였죠.

길렐스는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서 오데사 음악원에서 라인발트에게 배운 후에 17살에 모스크바에서 열린 전 소비에트 음악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는데요, 길렐스의 우승은 천부적인 재능과 손가락의 힘과 테크닉을 향상시키는 철저한 훈련이 탄생시킨 사회주의 예능교육의 성공작으로 인식되었다고 하죠. 말하자면 사회주의 국가에서 만들어낸 연주기계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 전 소비에트 음악콩쿠르의 우승 이후 길렐스는 오데사에 머무르지 않고 모스크바 음악원의 네이가우스 문하에 들어갑니다. 다시 말하면 연주기계에서 예술가로서 탈바꿈을 하는 과정에 돌입한 거라고 할 수 있겠죠.

네이가우스라고 하면 예전에도 소개해드렸지만, 음악학교를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방치되어서 자라면서 연습하라는 명령만 받고 혼자 독학하면서 삼촌인 블루멘펠트에게서 음악적인 갈증을 조금씩 해소했다는 불쌍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이죠. 그래서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는 테크닉적인 면보다는 (물론 비장의 고도의 테크닉도 가르쳐주었지만) 음악가로서의 기본이라든지, 예술 전반에 걸친 지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고 또 아주 훌륭한 제자들이 많이 배출되었는데, 바로 오늘 소개해 드리는 에밀 길렐스도 스승 네이가우스로부터 음악에 관련된 역사, 철학, 미학 등 광범위한 분야의 지식을 전수받게 되고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하게 됩니다.

1935년, 열아홉살에 네이가우스 문하에 들어간 길렐스는 이제 구소련이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젊은 피아니스트의 자격으로 서방세계의 콩쿠르에 나갈 기회가 생겼고요, 1936년 빈 콩쿠르에서 2등을 수상했고, 1938년 브뤼셀의 이자이 콩쿠르 (퀸 엘리자베드 콩쿠르의 전신)에서 1등을 수상했습니다. 이후 길렐스는 소련에서 정책적으로 서방에 소개하기 시작했는데, 2차 대전 이후 냉전구도가 형성되어서 ‘철의 장막’이 쳐진 이후에도 한동안 유일하게 서방을 오가면서 연주할 수 있는 구소련의 연주가였다고 합니다.

 


음악 듣겠습니다.

에밀 길렐스의 아주 젊을 때의 연주로 준비했습니다.

부조니가 편곡한 리스트의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중의 2개의 테마에 의한 환상곡입니다. (Liszt-Busoni: Fantasia on two themes from Mozart's The Marriage of Figaro) 녹음 연도는 1930-40 으로만 되어있습니다.(연주시간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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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요? 

길렐스의 말년의 베토벤 연주를 기억하시는 분들께는 신선한 충격이 되었으면 합니다.

길렐스는 지금 들려드린 이 곡의 연주로 가공할 만한 테크닉의 젊은 피아니스트라는 찬사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국제 콩쿠르에 1등한 것도 잠시 이름을 반짝하게 만들고 사라지게 했는데, 길렐스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54년의 파리 공연과 1955년 미국공연에서였습니다.

그 중에서 특히나 1955년 12월 미국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유진 오먼디의 지휘로 공연한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1번을 연주한 데뷔 공연은 '수십 년 만에 한 번 나올 만한 압도적인 연주'라는 언론의 찬사를 끌어내는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이후 길렐스의 이름에는 강철 터치라는 상표가 따라붙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길렐스의 예술성을 설명하는 데 이런 상표는 오히려 방해가 되었다고 하는데 왜냐면 길렐스에게는 막강한 손가락 힘에서 뿜어나오는 폭발과도 같은 터치와 오케스트라마저 압도해 버릴 듯한 소리의 중량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섬세한 감각과 따뜻한 인품이 있었고, 정연한 질서와 견고하게 음악을 쌓아올리는 구성력이 두드러졌기 때문입니다.

 


음악 듣겠습니다.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 6번 D 플랫 장조입니다.

에밀 길렐스의 1930-40 녹음으로 감상하시겠습니다. (연주시간 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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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밀도의 긴장감이 동반된 강철 같은 터치와 고도의 음악성이 조화를 이룬 입체적인 평형감각을 지닌 피아니스트, 에밀 길렐스의 이야기.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