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헤스, 인간 소망의 기쁨\"...마이라 헤스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7-04-14
2007-11-28 11:27:02
허원숙 조회수 3692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7년 04월 14일 원고.... 마이라 헤스 “헤스, 인간 소망의 기쁨”

1890.2.25-1965.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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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해드릴 피아니스트는, 2차대전으로 영국이 전쟁에 시달릴 때 런던의 국립 미술관 (National Gallery)에서 연주회를 열어서 동포들에게 따뜻한 음악으로 위로와 희망이 되었던, 그래서 나중에는 애국자, 영웅이라는 칭호까지 받은 여류피아니스트, 마이라 헤스입니다.

1890년 2월 25일에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고요, 5세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서, 트리니티 칼리지, 길드홀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왕립음악학교 (Royal Academy of Music)에서 장학생으로 Tobias Matthay의 제자가 됩니다. 마테이 선생님은 후에 마이라 헤스가 그 분을 회상하면서 “내가 모든 것을 빚진 분”이라고 말하였던 훌륭한 선생님이었는데, 헤스의 피아노 음악의 기술적인 면이나 정신적인 면에서 깊은 통찰력을 심어주셨고, 소심한 헤스가 무대에 연주하러 나갈 때면 “음악을 즐겨라!”라는 말로 안심시키곤 했다죠.

어릴 적부터 재주는 많았겠지만, 전형적인 천재의 모습은 아니었고요, 스스로 열심히 노력해서 하나씩 자신의 영역을 개척해나가야만 하는 노력파였는데요, 1907년에 토마스 비첨의 지휘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4번으로 런던에 데뷔하고 이 공연이 성공했지만, 당시는 요셉 호프만이나 파데레프스키, 고도브스키 같은 기라성 같은 피아니스트들의 화려한 음색에 눌려서 헤스의 음악은 대중에게 잘 드러나지 않았지요.

그러던 헤스가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가 있는데요, 1922년 뉴욕 연주 도중 일어난 일입니다. 청중들의 환호에 보답코자 앙코르 곡을 한 곡 선사했는데요, 그 곡은 바흐의 작품을 헤스가 편곡한 곡이었어요. 청중들은 이 곡을 엄청나게 사랑하게 되었고, 미국 전역에 이 곡이 유행가처럼 퍼져나갔죠. 심지어는 기차를 타고 가다가 앞에 앉은 승객이 휘파람으로 이 곡을 불고 있을 정도. 그래서 듣던 사람이 “바흐를 좋아하세요?”하고 물으면 “아뇨”, “아니, 당신이 휘파람 부는 그 곡이 바흐잖아요?” 했더니, “이 곡은 바흐가 아니라 마이라 헤스 곡이에요.” 라고 대답했다는 그 곡. 바로 그 곡은 헤스가 편곡한 바흐의 칸타타 147번의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입니다.

 


오늘 첫 곡은 D.Scarlatti 의 Sonata C 단조 K. 11, 그리고

헤스가 편곡한 J.S.Bach의 “예수, 인간소망의 기쁨” 을 마이라 헤스의 연주로 보내드립니다. (1957 녹음) (연주시간 3:20+ 3:38= 약 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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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라 헤스의 뉴욕 연주회에서는 한계를 알 수 없는 위대한 피아니스트라는 찬사와 함께 재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음악의 해석이 정교하다는 평을 받았는데, 그 이후로 헤스는 미국에서 많은 오케스트라 협연과 독주회를 개최하게 됩니다.

 

 

 

이렇게 피아니스트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마이라 헤스를 위대한 예술가, 애국자, 영웅으로 기억되게 만든 사건이 있었는데요, 그것은 2차 대전 초기에 있었던 마이라 헤스의 연주회에 관련된 일들입니다.

2차 대전이 시작되고 영국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갔는데요, 당시 공연장에서의 공연은 모두 취소되었고요,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공습에 대비해서 전시품들을 모두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고 텅 비워놓았대요. 전쟁으로 황폐해지고 또 문화의 고갈도 사람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었던 때였는데, 바로 그 때, 그 곳에서 마이라 헤스가 기적과 같은 음악회를 시작합니다.

장소는 전시품이 모두 사라진 미술관, National Gallery 였고요, 시간은 점심시간. 연주곡은 누구나 다 알 법한 대중적이고 쉬운 곡들....

헤스는 그 곳에서 정말 많은 음악회를 열었는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전곡 연주회가 있었죠.

헤스는 자신의 음악회 뿐만 아니라, National Gellery 시리즈라는 음악회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6년 반 동안 1300회의 연주회를 개최했고, 그 중에 146회의 연주회에 직접 출연하였다고 하는데, 이 일을 계기로 5000명이 넘는 예술가와 음악인들의 자선기금이 모아졌다고 하죠.

그렇게 따뜻한 마음이 모여서 만든 음악회에서 사람들은 전쟁으로 빼앗긴 마음의 위로를 되찾았고요, 하루는 200명이 넘는 청중이 이곳에 현악 사중주를 들으러 왔는데, 그 곳에  1000 파운드의 폭탄이 그 건물에 깔려있다는 사실을 알았대요. 다른 음악회에서는 정말로 연주 도중에 폭탄이 터진 일도 있었고요. 그런 적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이 건물 안에 폭탄이 있다는 알고도 사람들은 동요하지 않고 음악회를 끝까지 감상했다고 합니다.

 


이런 마이라 헤스에게 조지 5세 왕은 1936년 대영제국의 기사작위를 수여하고, 또 5년 후에는 Dame이라는 칭호를 내립니다. 그 후로 우리들은 마이라 헤스를 데임 마이라 헤스라고 부르게 되었고요.

그리고 또 Royal Philharmonic 협회로부터는 위대한 음악인에게만 수여되는 금메달도 받게 되죠.

 


어릴 적에는 천재는 아니었지만 항상 자신의 힘으로 하나씩 개척하면서 발전해 나갔던 피아니스트, 데임 마이라 헤스.

이분의 삶을 돌아보면 “대기만성”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데요, 큰 그릇은 오래 걸려서 만들어지는 것 뿐만 아니라, 큰 그릇에는 정말 많은 것들이 채워진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녀가 어린 시절을 회고하면서 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내가 어렸을 때 예술가의 인생을 시작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은 비극입니다.”

 


음악 듣겠습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1번 작품 110 중에서 1악장 Moderato cantabile, molto espressivo. 데임 마이라 헤스의 연주입니다. (1953년) (연주시간 6:38초)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