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운동화와 강철손가락\"...마리아 유디나 1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7-03-10
2007-11-28 11:02:34
허원숙 조회수 2784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7년 03월 10일 원고.... 마리아 유디나  (1) “운동화와 강철손가락”

1899.9.10~1970.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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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해 드릴 피아니스트는요, ‘강철 손가락’이라는 별명을 가졌고요, 항상 검은 옷을 입고 다녔고 운동화를 즐겨 신어서, 심지어는 무대 위에서 연주할 때조차도 운동화를 신었던 피아니스트입니다. 피아니스트이지만, 학교에서 성악교수로도 재직했고요, 스탈린이 라디오를 듣다가 이 분 연주가 나오자, 이 녹음을 당장에 구해오라고 했다는 일화로도 유명한 연주자입니다. 누군지 아시겠어요?

마리아 베냐미노브나 유디나 (Maria Venyaminovna Yudina)입니다.


마리아 유디나는 서방세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러시아 출신의 전설적인 여성 피아니스트인데요, 여성피아니스트계의 전설로 통하던 연주가였습니다. 1899년 러시아의 비테브스크의 네벨이라는 곳에서 태어나서 7살에 피아노를 시작해서 22살에 상트 페터스부르크 음악원에서 안톤 루빈슈타인 상을 수상하고 졸업한 후에, 철학과 사학을 공부했고요, 모교에서 10년간 교수직을 거쳐서 후에는 모스크바음악원의 교수로 있으면서 많은 음악활동과 더불어 러시아에 현대음악을 소개한 피아니스트입니다.

이분은 러시아 혁명으로 도시마다 폭동이 일어나고 난민도 많이 생기고 부랑자, 병자들이 넘쳐나게 되자 그 사람들을 위해서 음악회를 개최하기도 했고요, 평생 동안 스탈린의 예술 억압 정책에 대항했다는 이유로 세 번이나 음악원 교수직에서 강제 해임되었고 또 음악 활동에도 많은 제약이 따랐던 기구한 삶을 살았던 예술가입니다.

 


음악 듣겠습니다.

독일의 작곡가 에른스트 크레넥 (Ernst Krenek: 1900-1991)의 소나타 2번 op.59 (1928) 중에서 제1악장 Allegretto. Moderato comodo.  마리아 유디나의 1961년도 (62세) 연주입니다. (연주시간 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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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22살의 나이로 상트 페터스부르크 음악원을 졸업하고 난 후에 바로 모교에서 강의를 시작했는데요, 졸업할 당시 소프로니츠키와 공동으로 안톤 루빈슈타인 상을 수상하고, 또 강의도 같이 하게 되면서 당시 동료 교수였던 쇼스타코비치와 친한 교분을 나누면서 서방의 작곡가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고 해요. 파울 힌데미트를 알게 되면서부터는 자신의 예술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고요. 물론 현대음악에 관심도 많았지만, 유디나의 졸업 연주회 프로그램을 보면 바흐, 베토벤, 리스트, 글라주노프를 연주했다고 하는데, 당시 러시아의 풍토로서는 러시아 음악을 고집하지 않고, 서방음악을 많이 받아들인 것으로 보아서 시각이 열려있고 사고가 깨어있었던 예술가라는 것이 확연히 드러나는 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26년부터는 레닌그라드의 현대음악협회 회장으로 선임되어서 짦은 기간이지만 러시아에 서방의 현대음악을 소개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고요, 1960년대에는 스트라빈스키, 노노, 스톡하우젠, 불레즈, 펜데레츠키, 메시앙 같은 현대 음악가들과 교분을 나누었다고 하죠.

이렇게 마리아 유디나는 음악적으로나 예술가적인 기질로는 깨어있고, 열려있는 사람이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지요.

당시 러시아에서는 몇몇 예술가들만 서방세계로 진출할 수 있었고 대부분의 많은 예술가들은 체제 내에서 억압당하고 외부 세계와 단절과 왜곡이라는 장벽에 부딪혀서 서방에 알려지지 못하고 국내에서만 제약된 음악활동만 허락되었는데, 호로비츠 같은 피아니스트는 세계 최고의 개런티를 받으면서 자신의 피아노를 직접 공수해서 연주하던 것에 비해서, 마리아 유디나는 자기 소유의 피아노 조차도 없었고, 때로는 끼니를 굶기도 하고, 또 몇 년 동안 같은 옷을 입고 살아야했다고 하는데요, 그 상황을 비관하기 보다는 받아들이고, 오히려 자랑스러워하고, 그 당시에 정신적인 박해를 당했던 많은 동료 예술가들을 도와주고 대변해주는 역할을 묵묵히 잘 수행했다고 합니다.

마리아 유디나 라고 하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한번은 유디나가 방송에서 모차르트의 협주곡을 연주했는데, 그 방송을 스탈린이 듣고 있다가 감동을 받아서 이 연주자의 이 테이프를 당장 가져오라고 명령했다고 하죠. 그 일화로 유디나는 갑자기 서방에 스탈린의 이름과 함께 알려지게 되었고요.

하지만 유디나는 스탈린에게 동조한 예술가가 되었던 것은 아니고요, 오히려 스탈린의 예술정책에 대항하고 맞서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고 노력했다고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정부의 문화정책에 반대한 다른 지식인들이 강제 수용소에 끌려갈 때에도 유디나는 끌려가지는 않았다고 하는데, 아마도 스탈린이 워낙 유디나의 연주를 좋아했기 때문에 음악활동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말이 있지요. 하지만 세 번이나 교수직을 강제 해임당했었다는 것도 스탈린과 무관하다 할 수 없는 것을 보면, 스탈린이 뒤를 돌봐주려 해도 워낙 마리아 유디나가 제멋대로 행동하니까 자꾸 경고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음악 듣겠습니다.

63세의 마리아 유디나가 연주하는 스트라빈스키의  1925년 작 Serenade in A입니다.

제1곡 Hymne, 제2곡 Romanza, 제3곡 Rondoletto 제4곡 Cadenza finala입니다.

(연주시간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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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