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그 스승의 그 제자\"...겐리흐 네이가우스 3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7-02-03
2007-11-28 10:57:57
허원숙 조회수 2937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7년 02월 03일 원고.... 겐리흐 네이가우스  (3) “그 스승의 그 제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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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네이가우스의 두 선생님을 잠깐 소개해 드렸지요?

네이가우스가 베를린으로 유학 갔을 때에 그 곳에 계신 선생님은 카를 하인리히 바르트 선생님이었는데, 이 바르트 선생님은 독일의 전통적인 음악의 혼을 중요시하는 분이라, 음악은 브람스 이후로는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하는 분이었어요. 그러니 리스트, 바그너, 드뷔시, 스크리아빈, 말러, 리하르트 쉬트라우스 같은 작곡가들은 절대 인정하지 않았지요. 음악이 아무래도 장황하니까.... (슈만의 전기를 보면 바그너같은 음악에 대항하는 결사대같은 다윗동맹이라는 것이 나오잖아요? 슈만의 피아노 음악에도 <다윗동맹의 춤>이라는 곡도 있고요.. 어쨌든 슈만이나 브람스, 그리고 그 반대쪽에 있었던 바그너, 리스트... 등등 그 시대의 작곡가들의 양분된 성향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죠.)

그리고 이 바르트 선생님은 피아니스트에 대한 편협한 시각을 갖고 있었는데, 예를 들어 페루치오 부조니 같은 대가들은 절대 좋아하지 않았다고 해요. 그러니 이 열린 사고의 네이가우스가 바르트 선생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잘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죠. 급기야는 베를린을 떠나서 우크라이나로 되돌아가는 사태가 벌어졌고요.

하지만 베를린에서 음악이론과 대위법을 가르쳐 준 파울 유온 (Paul Juon) 교수와는 잘 지냈고, 또 습작이지만 많은 작품도 작곡했고요. 네이가우스의 말에 의하면 자기 자신의 독창적인 작품은 아니었지만, 마치 정신적인 체조를 하는 것처럼 이 분과 함께 엄격한 대위법에 의한 작품, 이를테면 라틴어 가사에 의한 12성부로 된 작품 같은 곡도 작곡했지요.

 


바르트의 고집스러운 음악에의 편협한 시각은 네이가우스로 하여금 다른 선생님을 찾게 만들었는데, 그 분이 바로 레오폴드 고도프스키였어요. 고도프스키는 폴란드 태생의 피아니스트이면서 작곡가였는데, 미국 시민권을 얻은 다음에는 다시 유럽으로 가서 베를린과 빈을 중심으로 활동을 했고, 네이가우스가 1912년 고도프스키를 만났을 때에는 빈의 음악아카데미에서 피아니스트의 최고 연주자과정 (Meisterschule) 을 가르치고 있었어요.

당시 네이가우스의 나이는 24살이었는데, 네이가우스는 1904년 도르트문트에서 열린 베스트팔렌 음악축제에서 처음으로 해외 데뷔연주회를 한 이후로, 1905년에는 도르트문트를 다시 방문해서 거기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만나 지속적인 후원을 받았고요, 또 본, 쾰른, 베를린 같은 독일의 주요도시에서 많은 연주회를 가졌고, 1906년에는 바르샤바, 피렌체 같은 곳에서 연주회를 가지고 큰 성공을 거두었고요. 프랑스, 러시아 등등에서 이미 뛰어난 피아니스트로서 각광을 받으며 활동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는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피아노를 배우고자 고도프스키의 문하생으로 들어갑니다. 이 때가 1912년이었지요.

고도프스키의 문하로 들어간 네이가우스는 이 때의 스승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후에 네이가우스의 연주 양식을 결정짓게 하는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을 하고 있죠.

그렇게 훌륭한 수업을 받기 시작해서 2년이 지났고 고도프스키 교수 문하에서 Meisterschule 전과정을 홀륭하게 마쳤는데... 전쟁이 났네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네이가우스는 다시 러시아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이제는 러시아를 중심으로 더 활발하게 연주활동을 합니다.

 


음악 듣겠습니다.

쇼팽의 녹턴 B 장조 op.32-1와, 3개의 유작 연습곡입니다. 1949년 10월 11일 모스크바음악원 연주홀에서 있었던 네이가우스의 독주회 실황녹음입니다.

(연주시간 4:32 + 4:00 = 8:32)

DENON COCO-80271-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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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가우스가 회상하는 고도프스키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네이가우스가 말하는 고도프스키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스승이자 안톤 루빈슈타인 이후의 가장 저명한 피아니스트의 한 사람이었다고 햅니다.

고도프스키라면 피아노 테크닉의 마술사로 널리 알려진 분인데요, 그 당시에 독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그의 연주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고도프스키의 비르투오조 테크닉을 배우러 왔었고요. 물론 그 수많은 젊은 피아니스트 중의 한 명은 당연히 네이가우스였겠죠?

그런데 이 고도프스키 선생님은 테크닉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하죠. 그 대신 연주를 하는 데 있어서 음악적인 결점 같은 것들을 바로 잡게 해 주었고 또 음악적 논리에 이르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고 해요. 그리고 또 악보의 문맥이 원하는 의미와 연주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를 바탕으로 해서, 소리를 듣는 법이라든지, 명징한 소리를 내는 법이라든지 입체감있게 소리를 표현하는 법을 가르쳤다고 하죠.

그리고 이 고도프스키 선생님은 진정한 음악가를 존중했고, 손가락은 아주 빠르고 뛰어나지만, 두뇌는 아주 느리고 무딘 피아니스트들에게는 남들 다 보는 데에서 드러나게 면박을 주었다고 해요.

귀가 부정확한 학생이나 악보의 음을 잘 못 읽은 학생, 또 음악적 취향이 이상한 학생... 그런 학생들에게 아주 따끔하게 혼을 내었구요.

한 번은 네이가우스도 함께 수업을 받던 때였는데, 그 당시에 이미 콘서트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어떤 피아니스트가 고도프스키의 매스터 클래스에 수업을 받으러 왔대요. 그 사람이 쇼팽의 에튀드 작품 10-7번을 정말 한 음도 틀리지 않고 아주 깔끔하게 연주를 했는데, 실수가 있다면 마지막에서 두 번째 화음 중에서 왼손 부분을 “도-솔-도”로 쳐야 하는데 그만 “도-미-솔-도”로 쳤대요. 연주가 끝나고 나니까, 고도프스키 선생님은 “다시 한 번 치세요” 라고 했고, 영문을 모르는 그 피아니스트는 또 한 번 깔끔하게, 아까 그 음 그대로 쳤고요, 그러니 고도프스키 선생님은 또 다시 “다시 한 번 치세요”라고 했고, 그 피아니스트는 내가 뭘 잘못했나 하면서 또 한 번 그렇게 쳤고요...  고도프스키는 또 다시 치라고 했고요, 영문을 모르는 그 피아니스트는 더 깨끗하게, 마지막 코드에 줄기차게 “미”를 넣어서 또 쳤고요... 고도프스키 선생님은 왜 자꾸 다시 시키는지 설명하지도 않고 계속 반복하라고 하면서 스스로 깨우치기를 원했대요.

결론은?.... 

그 피아니스트는 어깨를 들썩이면서 내가 뭘 잘 못했는지 모르겠다고 하고, 고도프스키는 복도로 나와서 씁쓸하게 네이가우스에게 “끔찍한 피아니스트구만” 이라고 했고요....

이해 가시죠?

고도프스키 선생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지, 그리고 그게 어떻게 네이가우스에게 전달이 되었는지...

한 음이라도, 비록 그 음이 곡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 음이라 할지라도 소홀히 여기지 말고 음악을 대하라는, 음악을 바라보는 자세를 중요하게 설명하신 분이고요, 또 그것을 본인 스스로가 깨우치도록 기회를 주는 선생님이었고요, 본인 스스로 깨우칠 때까지 시간을 내어주면서 기다렸던 선생님이었던 거죠. 그리고 그것은 고스란히 네이가우스에게 전달이 되어서 후대에 후세 사람들이 그를 피아니스트 최고의 스승이라고 부르게 되었구요.

 


음악 듣겠습니다.

네이가우스의 연주로 chopin 의 Ballade no.3 op.47입니다. 역시 1949년 10월 11일 모스크바음악원 독주회 실황입니다. (연주시간 6:57)

DENON COCO-80271-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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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가우스의 선생님 고도프스키는 레슨 때에 말을 많이 아꼈다고 해요. 그저 "이 곳은 좀 더 무게를 실어서 연주하면 어떨까” 아니면, “여기는 아주 자유롭게 연주해 봐” 같은 정도만 이야기했다고 해요.

하지만 학생을 그저 방치하는 선생님이 아니라, 작품의 혼을 가르치고, 음악의 논리적인 연주를 가르치는 선생님.

네이가우스에게 고도프스키는 피아노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라기보다는 음악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고, 그런 고도프스키에게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진정한 예술가, 진정한 음악가,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피아니스트가 되었다고 회고하고 있죠.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