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아버지도 나도 아들도 피아니스트\"...겐리흐 네이가우스 1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7-01-20
2007-11-28 10:57:07
허원숙 조회수 4928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7년 01월 20일 원고.... 겐리흐 네이가우스  (1) “아버지도 나도 아들도 피아니스트”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재산 많으세요?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재산이 아주 많았던 사람입니다.

얼마나 많냐구요?

글쎄.... 이 사람 재산은 돈이나 집 그런 게 아니고요, 사람인데요....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 라두 루푸, 에밀 길렐스, 야콥 자크, 레프 나우모프, 알렉산더 베데르니코프, 베라 고르노스타예바, 예브게니 말라닌, 빅토르 에레스코, 스타니슬라브 네이가우스, 블라디미르 크라이네프.... 모두들 정말 내로라 하는 피아니스트들인데요, 글쎄요, 이 모든 사람들을 합치면 얼마일까? ^^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전설적인 피아노 교육자 겐리흐 네이가우스 (Genrikh Gustavovich Neygauz)입니다. (1888.4.12-1964.10.10)

네이가우스는 교육자로서 너무나 전설적인 인물이었다는 것이 피아니스트로서의 명성에는 오히려 장애가 된 사람인데요, 사실은 이 분은 교육자일 뿐만 아니라 금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의 한 사람이었지요. 낭만적이면서 서정적이고 기품있는 연주를 들려준, 대가 중의 대가였구요.

이렇게 교육자이면서 동시에 명피아니스트였던 사람은 프란츠 리스트 이후로 알프레드 코르토 그리고 오늘 말씀드릴 겐리흐 네이가우스 밖에는 없었다는데요...

러시아 현대 피아니스트들의 위대한 스승으로 추앙받는 네이가우스는 1888년 4월 12일 우크라이나의 엘리자베트그라드에서 태어났는데 이 엘리자베트그라드라 하면 1847년 리스트가 수도원으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 공개연주를 했던 곳으로 음악 애호가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곳이지요. 1935년 이후에는 키로보그라드(Kirowograd)로 이름이 바뀌었고요.

겐리흐 네이가우스와 하인리히 노이하우스.

같은 사람이름인데요 왜 이렇게 두가지 이름으로 불리울까... 궁금하시죠.

그 이유는 네이가우스가 사실은 독일 사람이었기 때문이에요. 하인리히를 러시아식으로 읽었을 때 겐리흐, 노이하우스를 러시아식으로 읽으면 네이가우즈... 이렇게요.

네이가우스 가문은 거의 모두 다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는데, 할아버지는 피아노 회사를 설립해서 운영하던 사람이었고, 아버지 구스타프 네이가우스(1847-1938)는 독일의  Niederrhein의 Kalkar 라는 곳에서 태어나서 쾰른 음대에서 피아노를 공부했던 피아니스트로, 아주 똑똑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디어와 계획들이 가득 찬 사람이었대요. 이 아버지는 쾰른 음대에서 Ferdinand Hiller(베토벤과 친분이 있었던) 의 문하생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고향을 떠나 남러시아 (우크라이나)의 후작부인 Schichmatow(쉬흐마토프) 에게 피아노, 독일어를 가르치러 갑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자신에게 피아노를 배우던 제자 올가 블루멘펠트라는 폴란드 여인과 결혼을 하죠.

할아버지는 피아노회사 사장, 아버지는 피아니스트, 어머니도 피아니스트... 그런 가정에서 1888년 4월에 태어난 겐리흐 네이가우스가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히 피아노 치는 일이었겠죠.

 


음악 듣겠습니다.

모차르트의 론도 K.511 겐리흐 네이가우스의 연주로 감상하시겠습니다. 1950년도 녹음입니다. (연주시간8:38)

음반번호 Melodiya 74321 25174 2

**************

 


네이가우스의 부모는 모두 피아니스트였는데 엘리자베트그라드에 음악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했대요. 그 음악학교는 러시아에서 잘 알려졌고 또 좋은 음악학교라고 인정도 받았고요.

그러니 당연히 이 네이가우스도 이 음악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잘 자랐겠지.. 라고 생각하시겠지요? 또 네이가우스의 전기를 보면 아버지한테 첫 번 피아노 수업을 받았다고 나와 있긴 한데 사실은, 부모가 모두 음악학교일로 너무 바빠서 이 아들 겐리흐 네이가우스의 피아노 교육에는 신경을 잘 쓰지 못했다고 해요. 이 아버지가 아들에게 한 일은, 엄청나게 연습을 시키는 것이었는데요, 왜냐면 이 아버지의 생각에는 일단 테크닉이 되어야 음악이 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이 재주 많은 아들에게 정말 강압적으로 테크닉을 연마하도록 했다고 했는데 네이가우스는 자기 아버지의 교수법을 너무나도 싫어해서 후에 자신이 제자를 가르칠 때에는 테크닉의 연마 보다는 학생의 지성에 호소하는 수업을 했다고 해요.

그럼 도대체 누가 이 꼬마의 음악적인 재능에 관심이 있었느냐 하면...

외삼촌이죠. 이름은 펠릭스 블루멘펠트.

어디선가 이 이름 들어보신 적 있으시죠? 지난번 호로비츠 할 때 말씀드렸는데, 호로비츠의 선생님이 바로 이 네이가우스의 외삼촌이에요.

펠릭스 블루멘펠트는 네이가우스 엄마의 남동생인데요, 안톤 루빈슈타인의 제자이고요, 유능한 피아니스트이자, 상트 페테르부르크음악원의 교수이면서 또 마린스키 오페라하우스의 지휘자인데요, 제자로는 호로비츠 외에 시몬 바레레(Simon Barere) 가 있지요.

이 블루멘펠트는 젊었을 때부터 누나의 집에 가끔씩 오곤 했는데, 피아니스트 교수인 삼촌이 집에 놀러오니까 피아노를 좋아하는 어린 조카는 얼마나 신이 나겠어요? 얘기도 많이 하고 피아노도 같이 치고... 사실 네이가우스는 음악적인 환경에서 자라서 음악과는 친숙해졌는데, 글쎄요... 바다 한가운데서 배가 표류하면 주변에는 온통 물인데, 마실 물은 없는 것처럼 이 꼬마는 부모가 다 피아니스튼데 시간이 없어서 자식이 피아노치는 것을 제대로 봐주지를 못하니까 어릴 적부터 혼자 피아노에 앉아서 나름대로 연주하고, 또 즉흥연주도 많이 하면서 거의 독학 아닌 독학으로 피아노를 쳐왔거든요. 아버지는 테크닉이 우선 완벽하게 되어야 뭐든 할 수 있는 거라고 말만 하시고....

그러면서도 9살때에는 엘리자베트크라드에서 쇼팽의 작품만으로 독주회를 가졌고요, 1902년(14살)에는 당시 인기절정의 꼬마 바이올리니스트 미샤 엘만 Misha Elman (11살)과 함께 두오 리사이틀을 열었고요.

그러던 중에 이 외삼촌 블루멘펠트는 14살짜리 조카 네이가우스가 슈만의 환상곡 C장조를 치는 것을 보고 놀라서 “내가 교수로 있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도 이런 재능을 가진 학생은 한 명도 없다”고 말했고, 이어서 네이가우스는 삼촌의 조언으로 베를린으로 공부를 하러 떠나게 됩니다.

 


음악 듣겠습니다.

드뷔시의 전주곡 중에서 중단된 세레나데, 눈 위의 발자욱, 아나카프리의 언덕.

네이가우스의 1946-48년도 녹음 연주로 보내드립니다.

(연주시간 2:20+3:09+3:19=8:50)

음반번호 Melodiya 74321 25174 2

 


**********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