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불꽃을 향하여\"...알렉산더 스크리아빈 4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7-01-13
2007-11-28 10:53:44
허원숙 조회수 3036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7년 01월 13일 원고....알렉산더 스크리아빈  (4) “불꽃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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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1908년에 스크리아빈이 거장 쿠세비츠키를 만나게 되었다는 말씀을 드렸죠. 스크리아빈의 숙모와 할머니, 벨라이에프(출판, 매니지먼트)의 대를 이은 것처럼 쿠세비츠키는 스크리아빈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면서 5년 동안 자신의 관현악단을 이끌고 스크리아빈과 유럽 연주여행을 합니다. 스크리아빈을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 하면 그 누구건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군요.... 스크리아빈은 참 복도 많죠? ^ ^

그 후 1909년 스크리아빈은 러시아 황실 연주회에서 초청연주회를 갖게 되는데요, 이 연주회는 스크리아빈이 모스크바 음악원의 피아노 교수직을 버리고 러시아를 떠난 지 6년만에 다시 조국에서 갖는 음악회가 된 셈인데, 이 때 <법열의 시>라는 교향시를 발표해서, 극찬을 받음과 동시에 현대음악의 기수로서 확고한 입지를 굳힌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가 되었어요.

그리고 다시 브뤼셀로 돌아와서는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 <Prométhée, le poème du  feu> (프로메테우스, 불의 시)를 작곡하기 시작합니다.

제가 지난 시간에 스크리아빈이 1905년 브뤼셀에 머물면서 신지학의 창시자 헬레나 페트로브나 브라바츠키의 지도를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신지학(theosophy)의 영향을 강하게 받게 되었다고 말씀드렸지요?

처음에는 니체의 초인사상, 그 후에는 브라바츠키의 신지학의 영향을 받은 스크리아빈에게 예술이란 종교와 다름없었어요. 다시 말하자면, 스크리아빈에게 있어서 예술은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종교적인 수단”이고요, 예술가란 “예술의 정신을 통하여 위대한 일을 행하는 종교인”이었다고 해요. 그래서 당연히 음악에 있어서도 종교적인 무아(無我)의 경지를 느끼고자 했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음악뿐만이 아니라 음악에 연결된 시, 무용이 있어야 했고요, 또한 소리뿐만 아니라 빛과 향기가 결합된 종합예술로서의 공연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1910년에 탄생한 작품이 신비화음(C-F sharf -B flat -E-A-D-G)이라고 불리우는 스크리아빈 특유의 어법으로 작곡된 <프로메테우스>라는 곡이었는데요, 이 곡의 스코어에는 타악기가 없는 관현악 (스크리아빈은 타악기를 쓸 때에는 정말 조심스럽게 썼다고 하네요), 피아노, 오르간, 합창 그리고 이 악보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Color Keyboard 였죠. 이 칼라 키보드는 건반에 색깔조명을 연결시켜서 음악이 연주될 때 연주회장에 스크린이 비춰지면서 특정화음이 나타날 때마다 색깔을 변화시켰다고 해요.

이 곡은 1911년에 모스크바에서 초연되었는데 그 때에는 아쉽게도 조명은 사용하지 않고 연주만 했다고 하네요. 그 후에 1914년 처음으로 런던을 방문하여 헨리우드의 지휘로 '프로메테우스'를 재연하여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고 합니다.

요즘 “퓨전 아트”, “크로스 오버”라는 말을 참 많이 쓰고 있고 또 예술의 형태도 정말 많이 섞이게 되었는데 사실 이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스크리아빈이 이미 100년 전에 시도한 거죠.

 


음악을 듣겠습니다.

제가 고른 곡은 스크리아빈의 Vers la flamme <불꽃을 향하여>op.72 (1914)인데요.

얼마 전 개봉되었던 <타짜>라는 영화를 보면 옛날 유행가 <불나비>가 나옵니다. 불을 보면 결국은 그 불에 타 죽을 줄 알면서도 그 불로 돌진하는 불나비의 운명... 그 영화에 나오는 도박꾼들의 운명과 그 노래를 절묘하게 잘 연결시켰는데요, 그것처럼 스크리아빈의 <불꽃을 향하여>를 들으시면 어떤 생각이 점점 증폭되고 고조되어서 흥분의 절정에 이르는 것처럼 이 곡의 첫 부분에는 불 주위를 떠나지 못하고 서성거리다가 결국은 죽을 운명인 것을 알면서도 장렬하게 불꽃으로 뛰어드는 불나비의 최후, 죽음을 황홀경을 절정으로 설정한 곡입니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연주로 감상하시겠습니다. (연주시간  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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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을 향하여>.... 어떠셨어요?

무(無)에서 시작해서 절정으로 끝맺는 이 곡은 상승과 고조로 황홀경과 무아를 체험하면서 일상적 현세를 떠나 신과 하나가 된다는 신비체험이 강한 곡이죠.

이 곡에도 곡 자체에 색채감이 강하게 작용하는데요, 다시 아까 설명했던 <프로메테우스>로 돌아가면....

스크리아빈은 음들마다 각각 거기에 맞는 색깔이 있다고 생각했대요. 예를 들어서 도(C)는 빨강, 레(D)는 노랑, 솔(G)은 오렌지색....

어느 날은 림스키-코르사코프와 한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데 스크리아빈이 자기생각에는 각 조성마다 거기에 맞는 색깔이 있다고 말하니까 림스키-코르사코프도 자기 생각에도 그렇다면서 서로 생각이 통한다면서 얘기하다가 스크리아빈이 나는 E flat 장조는 붉은 자줏빛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니까 림스키-코르사코프가 나는 푸른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대요. 그 장면을 라흐마니노프가 보고 정말 놀랍기도 하고 회의적이기도 하다고 말했다죠 ^.* 생각은 자유!!!

어쨌든, 스크리아빈은 이 <프로메테우스>에 만족하지 않고 이제는 더 나아가 정말 완전한 의미에서의 퓨전 아트이면서 종교의식에 가까운 그런 작품에 도전합니다. 바로 Mysterium 이라는 작품인데요, 이 구상은 히말라야에서 개최할 멀티미디어 콘서트이고요, “아마겟돈, 새 세계의 탄생을 알리는 모든 종류의 예술의 거대하고 종교적인 종합예술”이었다고 하는데, 구상만 하고 실현되지 못했죠.

왜냐면 1915년 4월 27일 스크리아빈이 러시아 연주회를 계획하던 중에 입술에 생긴 종양이 악화되어서 패혈증으로 사망하였기 때문입니다.

 


스크리아빈이 모스크바 음악원을 졸업할 때 작곡은 라흐마니노프에게 밀리고, 피아노는 레빈에게 밀렸다고 첫 시간에 말씀드렸죠?

스크리아빈이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던 당시에 라흐마니노프는 작곡가로서 활약을 하고 있었는데 이 두 사람은 겉으로는 친하게 지냈지만 속으로는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이 둘의 작곡방식이 서로 너무 달랐는데, 예를 들면 라흐마니노프는 러시아 민속음악의 선율을 많이 사용했고, 스크리아빈의 음악은 여러분들도 모두 들으셔서 아시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지요. 그런데 스크리아빈은 마음 속에 라흐마니노프에 대한 경계심, 또 러시아 음악, 러시아 민족이라는 것에 대한 부담감 같은 것이 있었나봐요. 그래서 한 번은 “내가 러시아 테마를 사용해서 서곡이나 카프리치오를 작곡하지 않는다고 해서 러시아 음악가가 아닌 것은 아니잖아요” 하고 출판업자에게 말했다고 하는데 이 말은 라흐마니노프를 겨냥한 말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1911년 스크리아빈의 교향곡 1번을 라흐마니노프가 지휘하면서 둘의 사이는 회복이 되었고, 1915년에 스크리아빈이 사망한 후에 라흐마니노프는 스크리아빈의 작품만 가지고 연주여행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라흐마니노프의 그 연주 여행 당시에 프로코피에프가 20대의 떠오르는 샛별같은 피아니스트로 활약을 하던 시기였는데, 라흐마니노프를 겨냥해서 한 마디를 했대요. 그 내용은 "스크리아빈이 연주하는 피아노소나타 5번은 하늘을 나는 것 같았지만 라흐마니노프는 땅바닥을 기는 것 같다."는 평이었는데, 결국 이 일로 인해서 프로코피에프와 라흐마니노프는 평생 동안 교류가 없게 되었다죠.

 


음악 듣겠습니다.

스크리아빈의 환상곡 op.28입니다. 연주에는 Marc-Andre Hamelin입니다. (연주시간 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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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은 스크리아빈이 모스크바 음악원의 피아노 교수로 있을 때인 1900년에 작곡한 곡인데요 스크리아빈의 아파트에서 Sabaneiev 가 이 곡의 앞부분을 치고 있었대요. 그런데 옆방에서 듣고 있던 스크리아빈이 Sabaneiev에게 오더니 하는 말이, “그 곡 누가 쓴 거야? 귀에 익은데?” 그러더래요. 그래서 “your fantasy"라고 대답했더니 스크리아빈이 뭐라고 했게요? “ What Fantasy?" .... 먼 환상곡? ㅋㅋ

 


스스로 “나는 신이요 세계이며 우주의 중심이다”라고 했던 스크리아빈의 음악이야기, 여기까지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