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최소의 형식, 최대의 음악사상!\"...알렉산더 스크리아빈 2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6-12-30
2007-11-28 10:19:56
허원숙 조회수 3538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6년 12월 30일 원고....알렉산더 스크리아빈  (2) “최소의 형식, 최대의 음악사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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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피아니스트가 되려고 했던 스크리아빈이 작은 체구와 작은 손으로, 거인과도 같았던 피아니스트들과의 경쟁으로 과도한 연습을 하다가 오른손을 다친 이야기를 해드렸죠. 회복 불가능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절망에 빠져 피아니스트로서의 자신의 죽음을 처절하게 노래한 소나타 제1번을 작곡했다는 말씀도 드렸고요.

그런데요, 역시 역사에 남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말씀이 이 스크리아빈에게도 딱 들어맞는 말인데요, 스크리아빈은 오른손은 아프고, 피아니스트는 되어야겠고, 어떻게 뭘 할까 고민하다가 자신의 안 아픈 왼손의 테크닉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고요, 그 열매로 나온 것이 스크리아빈의 왼손을 위한 작품 9입니다.

이 작품 9번은 왼손을 위한 전주곡과 녹턴이라는 제목으로 되어있는데요, 모두 다 스크리아빈의 아픈 오른손 때문에 작곡된 곡이죠. 물론 다른 작곡가들도 왼손을 위한 곡을 쓴 적이 있는데 예를 들어서 라벨이라든지 프로코피에프라든지 생상스라든지.... 그런데 그 곡들은 모두 오른손을 다친 피아니스트를 위해 작곡된 곡인데 반해서, 스크리아빈의 이 작품은 자기 자신을 위한 곡이었다는 것이 흥미롭죠.

아무리 의사가 절망적인 말을 했어도 환자의 의지가 얼마나 굳은지에 따라 환자의 회복도  달라지듯이, 스크리아빈의 오른손은 스크리아빈의 굳은 의지로 인해 점차 회복이 되었구요,  다시 연주 무대에 설 수 있게 되었어요.

스크리아빈의 피아노 연주회 프로그램은 대체적으로 바흐, 멘델스존, 슈만과 리스트였다는데, 그 모든 작곡가의 작품과 함께 스크리아빈이 중점적으로 공부했던 작곡가는 쇼팽이었고요, 그래서 그의 초기 작품은 거의 쇼팽의 전폭적인 영향을 받아서 작곡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프렐류드, 에튀드, 마주르카 같은 곡들이죠.

스크리아빈은 1893년 모스크바 음악원을 졸업한 후, 첫 작품집을 출간했는데요, 이듬해에는 스승 사포노프의 추천으로 후원자 벨리아예프(Belyayev)를 만나게 되는데, 이 사람은 악보를 출판하는 출판사를 경영하는 사람이었는데, 이 출판사에서 소나타 op.6과 에튀드 op.8을 출판하게 되지요. 그리고 또한 벨리아예프는 스크리아빈의 연주회의 매니지먼트까지 맡아서 해주고, 스크리아빈의 작품을 사 주고, 돈도 꿔 주고... 예전에 스크리아빈의 숙모가 응석받이 스크리아빈에게 모든 것을 해 준 것처럼 스크리아빈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모두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기 시작했어요. (벨리아예프가 죽을 때까지!)

스크리아빈이 벨리아예프의 매니지먼트로 개최한 음악회는 페테르스부르크(1895), 베를린, 파리, 브뤼셀, 암스테르담 등지에서 열렸는데, 그 프로그램은 모두 스크리아빈의 작품들로 구성되었다고 하죠.

 


음악 듣겠습니다.

먼저, 스크리아빈의 왼손을 위한 전주곡 op.9-1을 겐리히 네이가우스(리히터, 길렐스의 스승)의 연주로 감상하시고요,
이어서 스크리아빈의 프렐류드 op.11 중에서 2,4,5,9,10번을 블라디미르 소프로니츠키(스크리아빈의 사위)의 연주로 감상하시겠습니다.

(연주시간 합해서 약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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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리아빈은 1895년의 독일, 스위스, 이태리, 벨기에 연주에 이어서, 1896년에는 파리, 브뤼셀, 베를린, 암스테르담, 헤이그, 로마 연주회를 성공적으로 마쳤는데요, 그 연주 여행 도중에도 쉬지 않고 계속 작곡을 했다고 해요. 앞서 들으신 전주곡 op.11은 모두 24곡으로 되어있는데 곡 제목이나 개수나 또한 조성의 배열에 이르기까지 쇼팽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죠. 그 곡 외에도 역시 프렐류드 작품 13,15,16,17 같은 곡들, 그리고 피아노 소나타 2번을 작곡했고요, 모스크바로 돌아와서는 피아노 협주곡 작품 20을 작곡합니다.

1897년에는 피아니스트 베라 이바노브나 이사코비치(Vera Ivanovna Issakovich)와 결혼하게 되는데, 이 여인은 모스크바 음악원을 1등으로 졸업한 피아니스트이고요, 스크리아빈과 스크리아빈의 음악에 열광하는 열성팬이었죠. 결혼한 후에 스크리아빈은 파리에서 부인과 조인트 연주회를 가졌고요, 거기에서는 그 당시 방금 작곡한 소나타 2번 일명 <환상 소나타>를 스크리아빈 자신의 연주로 초연하기도 했습니다.

이 해에 스크리아빈은 '마주르카 작품3'과 '알레그로 작품4'로 글링카상도 수상하게 되고 1898년 스승 사포노프의 초청으로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피아노과 교수로 자리도 잡고, 또 작품으로는 이제는 피아노만을 위한 작품에서 오케스트라 작품으로 자신의 관심을 조금씩 옮겨가기 시작했고 개인적인 삶에서는 자식도 낳기 시작해서 네 명의 아버지가 되지요.

이렇게 보면 참 행복한 삶을 산 사람이라고도 볼 수 있겠는데요, 개인이 느끼는 삶은 그렇지만은 않았나봐요.

1898년 스크리아빈은 소나타 3번 (작품 23)을 작곡합니다. 그런데 이 소나타에 붙인 스크리아빈의 부제가 있어요.

“심-리-상-태”

부제 치고는 좀 뭔가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어하는 그런 제목인 것 같은데요, 소나타 1번이 손을 다친 스크리아빈의 신체적 위기를 담은 소나타라고 하면, 이 소나타 3번은 결혼의 위기를 담은 정신적 고민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죠.

아니나 다를까, 스크리아빈의 4번 소나타 작품 30에 이르러서는 드디어 그 정신적 고민의 실체가 드러나게 되는데.... 궁금하시죠?

1903년은 스크리아빈이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직을 버리고 작곡에만 몰두한 해인데, 생활비를 벌어야 되니 자연 작품을 많이 쓰게 된 해가 되었고, 또한 새로운 영감을 많이 주는 여인, 타티아나 쉴뢰저와의 사랑이 깊어지는 사건이 있기도 해서, 스크리아빈의 작품 30에서 43에 이르는 많은 분량의 곡을 작곡한 해이기도 합니다. 하하, 아셨죠?

 


음악 듣겠습니다.

스크리아빈이 “나의 목표는 최소의 형식 속에 수납된 최대의 음악 사상이다”라고 말하고 그 보기로 들었던 피아노 소나타 제 4번, op.30과 시곡 (Poem) 작품 32-1입니다.

먼저 시곡 작품 32-1을 들으신 후에 소나타 4 번을 계속해서 듣겠습니다.

연주자는 미리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들으시면서 맞춰보세요. *.*

(시간: 2:20 + 7:30 = 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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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리아빈의 시곡 op.32-1을 허원숙의 연주회실황음반으로,

소나타 4번 op.30 전곡을 안드레이 가브릴로프의 연주로 감상하셨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