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신과 운명에 대항하여 울부짖다\"...알렉산더 스크리아빈 1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6-12-23
2007-11-28 10:19:24
허원숙 조회수 2966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6년 12월 23일 원고....알렉산더 스크리아빈  (1) “신과 운명에 대항하여 울부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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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겨울과 정말 잘 어울리는 남자, 크리스마스에 태어나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하던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누굴까요? 

바로 알렉산더 스크리아빈입니다.(1872~1915)


스크리아빈은 1872년 1월 6일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는데요, 이 1월 6일은 러시아 구력 (Julian Calendar)으로는 크리스마스라고 하죠. 독일 달력에서도 1월 6일은 Drei Koenigstag 이라고 동방박사 세 사람의 날이라고 되어있는데, 바로 이 크리스마스와 일맥상통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음악가적인 혈통으로 말한다면, 법률가였던 아버지보다는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았을 것 같은데요, 스크리아빈의 어머니는 St. Petersburg 콘서바토리의 레세티츠키의 문하생이면서 안톤 루빈슈타인의 총애를 받던 피아니스트였었죠. 하지만 스크리아빈을 낳고 1년 후에 폐결핵으로 숨집니다.

아버지는 영사관으로 대부분의 생을 터키에서 보냈고 (결국 스크리아빈보다 1년 먼저 1914년에 터키에서 사망) 그러다보니 어린 스크리아빈은 숙모, 할머니 같은 친척들의 손에서 자라게 됩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 숙모님들이 어찌나 스크리아빈을 예뻐했던지, 갖은 응석 다 받아주고, 버릇없이 키워서 스크리아빈은 훗날 바로 이 사람의 성격의 특징이 되어버린 괴팍함, 자기중심주의, 그리고 나약하고 유약함 같은 특이성격의 소유자가 되게 되죠.

 


스크리아빈의 숙모는 스크리아빈이 5살에 되자 피아노를 배우게 했고, 그 당시의 귀족 자제들이 그랬던 것처럼 스크리아빈도 1882년 10살이 되자 모스크바의 학생군사교련단에 들어가서 15살까지 교육을 받습니다.

그러면서도 피아노 공부는 계속했고요, Zverev에게서 피아노를(즈베레프:라흐마니노프가 기숙하면서 배웠던 선생님), 16살이 되면서는 모스크바 음악원에 들어가 Savonov의 피아노 제자가 되고, Taneyev에게서는 이론과 작곡을 배우다가 후에는 Arensky에게 작곡을 배우는 제자가 됩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음악 공부를 정식으로 하게 된 스크리아빈은 이 시기에 벌써 피아노곡과 오케스트라곡이 상당히 많이 작곡하였다는데요, 대부분은 없어져버렸고 몇 곡만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음악 외에도 시를 좋아하고 많이 썼다고 하는데요, 그런 연유인지 스크리아빈의 작품을 보면 제목에서부터 <시>, <법열의 시> 같은 문학적인 작품이 많이 나오게 되지요.

 


오늘 감상하실 곡은요, 어리지만 조숙했던 스크리아빈의 16살 때의 작품을 감상하시겠는데요, 많이 알려진 작품입니다. 스크리아빈의 에튀드 op.2-1입니다.

연주에는 에밀 길렐스입니다.(연주시간 약 2분 3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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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리아빈의 곡을 보면 화음이 음과 음 폭이 넓긴 한데 다른 손으로 대신 짚어도 될 수 있게 만들어놓은 곡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손이 작은 사람도 손 크기에 있어서만은 별 어려움이 없이 곡을 연주할 수 있는데요, 그렇게 곡을 쓴 이유는, 바로 스크리아빈 본인의 손이 겨우 옥타브만 닿았기 때문이랍니다.

사실, 스크리아빈은 키가 아주 작은 편에 속했다고 해요. 당시의 피아니스트들을 보면, 키나 손이 너무 큰 사람들이 많았었는데, 예를 들어 라흐마니노프, 레빈, 메트너 같은 사람들이 활약을 하던 시기였죠. 그러니 스크리아빈이 그 큰 덩치의 피아니스트들과 경쟁하면서 작은 손에서 오는 불편함을 극복하려고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겠어요.

1892년의 스크리아빈의 일기장을 보면요,

"내 나이 스무살. 내 생애의 가장 처절한 사건. 내 손에 문제가 생겼다.

영광이며 명예로 생각해 왔던 나의 최고의 목표에 장애가 발생했다.

처음으로 맞는 내 인생의 진짜 패배. 나는 기도했고, 교회에도 갔다.

하나님께 울부짖었고 내 운명에 외쳤다.

나의 첫 번째 소나타를 장송곡으로 작곡했다."

스크리아빈이 그의 일기장에 기록한 것처럼 1892년은 스크리아빈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해였는데요, 졸업시험에서 피아노 부문에서는 라흐마니노프에게 황금대상 메달을 빼앗기고 자신은 작은 금메달에 만족해야 했고요, 작곡 부분에서는 심사위원인 아렌스키가 반대해서 졸업장도 없이 학교를 떠나야 했고요, 게다가 당대 비르투오조였던 요셉 레빈과의 경쟁을 의식해서 피아노를 너무 맹렬히 연습하다가 오른손을 다쳤어요. 치료하던 의사는 다시는 회복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고요...

그 당시에 스크리아빈이 연습했던 곡은 발라키레프의 <이슬라메이>와 리스트의 <돈 주앙의 회상>이었는데 손을 다친 이후로는 이 곡을 절대 다시 치지 않았다고 해요.

졸업시험에서 피아노는 라흐마니노프에게 밀렸지, 작곡은 아예 졸업시험에서 떨어져서 졸업못했지, 그래서 라흐마니노프에게 밀렸어도 피아니스트가 되어 보려고 했는데 무리한 연습으로 손도 다쳤지...그러니 피아니스트로서의 성공마저 불투명해진 상태였잖아요.

그런 스크리아빈의 삶을 그대로 담은 곡이 있는데요, 바로 스크리아빈 피아노 소나타 제1번 작품 6입니다.

스크리아빈 자신의 스무해 삶의 초상과도 같은 이 소나타는 1892년에 작곡되어 그 이듬해 출판되었는데요, 전체가 네 악장으로 구성된, 발라드적인 성격이 강한 곡들이구요,  네 개 악장 모두 하나의 테마 (상승하는 F단조 음계)로 엮어져 있습니다.

제1악장에서는 운명에 대항하며, 신에게 대항하는 스크리아빈의 외침이 끊임없이 분출하는 에너지로 표현되어 있고요, 제2악장에서는 자신만의 고백이 담긴 기도가, 흐느끼며 하강하는 반음계에 담겨 있습니다.

악마적인 죽음의 무도를 연상케 하는 제3악장은 완성되지 못한 채 작은 레시타티보를 통해

제4악장인 장송행진곡으로 빨려들어갑니다. 운명과 신을 원망해 보며 결국 자기 자신을 절망에 묻어버리고야 마는 스크리아빈은 장송행진곡 중간 부분의 천사의 합창을 의지하고 통한의 심정을 나타내보지만 스무살의 청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슬픔과 절망에 다시 처절한 비탄에 잠긴 장송행진곡에 몸을 싣고 끝을 맺습니다.

그러면, 스크리아빈이 스스로 “신과 운명에 대항하는 울부짖음”이라고 말 한 작품, 피아노 소나타 제1번 op.6의 전곡을 감상하시겠습니다.

연주에는 Marc-Andre Hamelin입니다. (연주시간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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