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6 개월 비자, 61년만의 귀향\"...블라디미르 호로비츠 5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6-12-09
2007-11-28 10:18:12
허원숙 조회수 2807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6년 12월 09일 원고....블라디미르 호로비츠  (5) “6개월 비자, 61년만의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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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의 호로비츠를 생각하면, 무엇보다도 먼저 떠오르는 것은 1986년에 모스크바에서 있었던 귀향 연주회일 거예요.

어릴 적에는 작곡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호로비츠가 러시아 혁명 때문에 가족들의 재산이 몰수당하게 되자 생계를 위해서 피아니스트의 길로 들어섰다고 말씀드렸죠. 1922년에 열 여덟의 나이로 하르코프에서 성공적인 데뷔를 했고, 1924년 경에는 레닌그라드에서만 25회의 음악회를 가질 정도로 피아니스트로서의 입지를 굳혔던 호로비츠는 1925년 스물 한 살이 되자 모스크바를 떠납니다.

당시에 호로비츠는 국경의 경비대 사람들까지도 호로비츠를 알아 볼 정도로 유명했었는데요, 호로비츠가 베를린으로 연주여행을 떠나기 위해 국경을 지나는데, 국경 경비대 중의 한 명이 호로비츠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어느 곳에 가 있든지 너의 모국을 잊지마라”로 하면서 구두 벗어보라는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보냈대요. 그 때 호로비츠가 신었던 구두 밑창에는 지금 돈 200만원이 숨겨져 있었는데 그 돈은 베를린에 연주하러 가기 위한 돈이었다고 해요.

6개월 비자만을 받아가지고 독일로 간 호로비츠는 베를린에서의 성공을 기점으로 뉴욕으로 자리를 옮겼고요, 정말 대성공을 했고, 최고의 위치에서 은퇴와 재기를 4번이나 반복하면서 61년이나 지난 후 82세의 고령이 되어서 1986년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에서 61년만의 귀향연주회를 가집니다.

1986년이라면 고르바초프와 레이건이 냉전시대를 종식하고 문화개방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한 때였죠. 호로비츠의 귀향 연주회는 어느 무엇보다 미국과 소련의 화해 무드의 상징이 되었고요. 더군다나 호로비츠가 러시아 국적이 아닌, 과거의 적국이었던 미국의 국적으로 자기 조국으로 찾아갔으니 사람들의 기대와 흥분이 얼마나 컸겠어요.

Horowitz in Moscow 라는 음반과 영상물 (당시에는 LD로 출시되었죠) 을 보면, 첫 장면에 호로비츠가 편지를 읽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르코프에 있는 조카가 쓴 편지인데요, “볼로디야(블라디미르)! 여기에 온다니 정말이야? 공항에 마중나갈게.... 만나게 되다니 정말 기뻐. 난 항상 삼촌이 무대에서 연주하는 것을 듣는 꿈을 꿔왔어.... 그리고 그 꿈이 이제 이루어지네! 기다릴께!” 라는 내용을 읽으면서 호로비츠가 내가 조카를 마지막 본 게 조카가 아홉 살때였는데 이제 70살이라네 라고 말하는 장면으로 시작해서는 뉴욕에서 피아노를 공수해 오는 장면, 음악회에 들어가려고 연주회장 앞에서 난리를 치는 사람들, 경찰 호송대... 호로비츠를 찾아온 과거의 지인들이 얼핏 눈시울을 적시는 장면도 나오고요, 스크리아빈의 딸 (할머니가 된..) 과 만나는 장면도 나오고요.. 호로비츠가 무대에서 연주하자 청중들의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요...

 


음악 듣겠습니다.

라흐마니노프의 전주곡 G 장조 op.32-5와 G#단조 op.32-12

스크리아빈 연습곡 C#단조op.2-1과 D#단조 op.8-12를 호로비츠의 모스크바 귀향 연주회 실황 중에서 듣겠습니다. (연주시간 2:49+ 2:33 + 2:39 + 2:09 =약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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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로비츠의 귀향 연주회는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모스크바 음악원의 벽에 간단한 포스터가 붙으면서 시작되었는데요, 거기에는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미국) 의 연주회가 열립니다.”라고만 적혀있었는데, 그 간단한 포스터 한 장이 소련 전역을 전기 쇼크로 몰아넣을 만큼 큰 충격을 주었다고 해요. 그리고 연주회장은 1800석이었는데 단 400석만이 일반 청중을 위한 좌석이었고 나머지는 정부 고위관리나 정치인 같은 사람들을 위한 자리였다고 해요. 그러니 400석밖에 안 되는 일반 좌석을 얻으려고 사람들이 매표소 앞에서 밤을 새운 것은 당연하겠죠.

연주회는 당연히 일요일 오후 4시에 열렸고요, 그날도 비가 왔는데, 연주회장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이 수 백명은 되었다는데, 집으로 돌아가지도 않고 우산 쓰고 연주회장 문 앞에서 자기들이 이렇게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면서 서 있었다고 하죠.

 


그런데 그 귀향 연주회를 할 당시 호로비츠가 모스크바에서 머물던 곳이 어디였는지 아세요?

호로비츠라면 연주회마다 자신의 피아노를 공수해가고, 또 개인 요리사를 대동하고, 또 먹는 물까지 가지고 가는 사람이었던 것 말씀드렸죠?

그렇게 까다로운 성격의 소유자가 러시아의 호텔에 머문다? 글쎄요...

러시아의 호텔이라면 지금이야 많이 좋아졌겠지만, 그 당시에는 시설이 정말 열악했다고 해요. 그러니 호로비츠의 매니저가 걱정이 얼마나 되었겠어요?

그래서 생각해낸 게, 호텔에 묵지 않고 미국대사관저에 묵는 거였어요.

당시 러시아 주재 미국대사는 Arthur Hartman이라는 분이었는데, 글쎄요, 우리나라에서 대사로 가장 중요한 외교관은 미국대사로 보내겠죠? 그처럼 미국에서는 가장 중요한 외교관을 러시아대사로 보낼 텐데, 그렇다면 이 Hartman이라는 사람은 대사 중의 최고 대사인 셈인데...

호로비츠의 귀향 연주회를 주관한 주최 측에서 러시아 주재 미국 대사인 Hartman에게 “호로비츠씨가 모스크바에서 연주회를 해야 되는데, 혹시 모스크바의 미국대사관저의 방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하고 물었대요.

그랬더니 이 Hartmann 대사님은, 펄쩍! 뛰면서 좋아했다고 해요. ^^

그 대사님이 흔쾌히 허락을 하니까, 이쪽에서 걱정이 되어서 또 부연 설명을 하는데, “호로비츠씨에게 그저 방과 침대를 내어 주는 정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호로비츠씨가 쓰실 방을 공사를 해야 할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도배도 새로 해야 하고요, 커튼도 호로비츠씨가 원하는 것으로 새로 바꾸어야 합니다. 물론 그 비용은 전적으로 호로비츠씨가 부담하시죠.”라고 말했대요. 결론은 정말로 단 며칠 쓸 방을 그렇게 요란스럽게 공사를 하고 호로비츠는 그곳에 머물었구요.

고기를 먹지 않는 호로비츠는 생선 중에서도 주로 넙치를 좋아했는데, 거기 머무는 동안 영국대사관에서 넙치를 공수해줬다고 하네요.

 


음악 듣겠습니다.

리스트가 편곡한 슈베르트의 Soirees de Vienne:Valse-Caprice no. 6 (연주시간 6:33)

호로비츠의 모스크바 귀향 연주회 실황 중에서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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