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당신은 이틀 기다렸나요?\"...블라디미르 호로비츠 4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6-12-02
2007-11-28 10:17:11
허원숙 조회수 2374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6년 12월 02일 원고....블라디미르 호로비츠  (4) “당신은 이틀 기다렸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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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 드릴까요...

1965년 5월 9일 뉴욕 카네기홀에서 가진 호로비츠의 12년만의 연주회, 이른바 <역사적 귀환>이라는 연주회의 표를 사려는 사람들이 담요며 따뜻한 물통같은 것들을 가지고 밤새울 준비를 단단히 하고 카네기홀 매표소 앞에서 이틀 동안이나 줄을 섰었다고 말씀드렸죠. 비도 오고 추운 날씨였다는데...

그 때 호로비츠의 부인이자 토스카니니의 딸인 완다 호로비츠가 사람들이 음악회장 앞에서 비를 맞고 서 있다는 소리를 듣고 너무나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서 택시를 타고 달려갔대요.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100잔이 넘는 커피를 매표소 앞 커피숖에서 사다가 돌렸는데요.

표를 사려고 기다리던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완다에게 와서 투정을 부리면서, “내가 호로비츠 연주회를 들으려고 여기서 이틀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대요.

그랬더니 호로비츠의 부인, 완다가 커피를 주면서 하는 말.

“당신은 이틀 기다렸죠? 나는 이 연주 들으려고 12년 기다렸어요.”

이 말에는 뼈가 있는데요, 호로비츠의 부인 완다는 호로비츠가 남편으로서 부인인 자신을 사랑해 주길 바라고 결혼한 게 아니었어요. 남자도 아닌 사람을 남편으로 맞은 부인의 속마음은 오로지 이 사람이 이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이었다고 하죠.

부인이라기보다는 보호자, 또는 철없는 아들을 둔 어머니의 심정이었을 완다에게 유일한 낙이라면 소위 남편 호로비츠가 피아니스트로 세상에 이름을 떨치기만을 바랐을 텐데, 그런 자기 마음은 알아주지도 않는 호로비츠는 연주도 하지 않고 12년을 집에서 버텼으니 그 부인 속이 얼마나 타 들어갔겠어요.

그래서 “나는 이 연주 들으려고 12년을 기다렸어요”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된 것이었죠.

 


음악 듣겠습니다.

호로비츠의 연주로 <역사적 귀환> 음반 중에서

Scriabin Poem op.32-1 (3:26)

Moszkowski Etude  A flat 장조 op.72-11 (1:28)

Schumann Träumerei (2:58) 세 곡을 들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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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로비츠의 연주회에서는 항상 마지막 앵콜로 이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했는데요, 이 곡이 나오면 마지막 앵콜곡이라는 일종의 싸인이었대요. 그렇지만 계속 연주를 듣기를 원하는 청중에게 호로비츠가 보여준 제스추어는?

피아노 뚜껑 닫기 ^^.

 


호로비츠라는 피아니스트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뭐라고 말할까요?

색채를 만들어낸 사람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영국의 평론가 네빌 카르더스 경은요, 30대 초반의 호로비츠의 연주를 듣고 신문에 평을 썼는데, 자기가 들어본 피아니스트 중에서 가장 훌륭한 연주였다고 썼대요.

그 당시는 박하우스, 라흐마니노프 같은 사람이 활발한 활동을 하던 시기였는데, 그런 대가들을 다 젖혀놓고 고작 30대 초반의 호로비츠의 연주가 가장 훌륭한 연주라고 하니, 그 사람의 평에 반발하던 사람들이 많았다는데요, 어떤 사람은 당신이 얼마나 많은 연주가들의 연주를 들었길래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면서 다른 사람의 연주도 보고나서 그런 말을 하라고 했나봐요.

그런 일이 있고나서 다음 해에 이 네빌 카르더스 경은 다시 신문에 글을 썼는데요,

“내가 작년에는 호로비츠가 여지껏 내가 들어 본 피아니스트중에서 가장 훌륭한 피아니스트라고 했었다. 그런데 나는 그 때 나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이제 확실히 알게 되었다”..... 라고 하면서 그 뒤에 이어지는 말로, 호로비츠가 내가 들어본 피아니스트 중에서 가장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 않은 피아니스트를 모두 다 포함해서 호로비츠가 가장 훌륭한 피아니스트이다”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고 하죠.

또 어떤 평론가는 말했대요.

“만일 귀가 안 들리는 사람이 단 한 시간동안 귀가 들리게 된다면 호로비츠의 음악을 듣는 게 가장 낫다” 라고요.

 


1965년의 <역사적 귀환>이라는 연주회를 가진 이후에도 호로비츠는 많은 연주를 하지는 않았는데요, 1년에 10번이 절대 넘지 않도록 연주회를 했다고 하는데, 하지만 호로비츠의 연주회 한 번 개런티는 당시 루빈쉬타인의 5~6배였다고 해요. 음악 역사상 가장 높은 개런티를 받은 연주자라고도 하죠.

그런 호로비츠가 개런티 없이 음악회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요, 1978년에 뉴욕 필하모니를 위해서 자선연주회를 가진 것이었죠. 호로비츠는 오케스트라 협연을 즐겨 하지 않았는데 1953년도에 마지막으로 협연을 하고서 25년만에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게 되었는데 그 연주가 바로 유진 오만디와 함께 연주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자선연주였어요. 라흐마니노프 3번 협주곡을 연주하고 연주회 수입은 모두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위해서 기증했다는데요, 그 연주회가 음반으로 제작되면서 그 음반 수익은 모두 호로비츠가 챙겼다고 하네요. (베니스의 상인 *.~)

흔히 연주회 취소를 잘 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미켈란젤리를 떠올리는데, 호로비츠도 그에 못지 않았다고 하죠. 아니 더 심했다고도 하고요. 연주회 취소하는 사유는 건강, 컨디션, 기분...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는데, 호로비츠 자체가 워낙 자유롭고 즉흥적인 사람이라, 오래 전부터 약속을 해 놓고 그대로 지키는 일은 별로 적성에 맞지 않았나봐요.

독주회도 오래 전부터 계획된 연주를 하는 게 아니라, 갑자기 연주하겠다고 하면, 연주회장이 마련되고 일요일 오후 4시의 독주회가 준비가 되는데,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단체가 함께 움직여야 하니까 그렇게 기분에 따라서 즉흥적으로 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호로비츠의 음악회나 레코딩에는 협주곡이 별로 많지 않게 되었는데, 녹음된 협주곡도 10곡이 채 못 됩니다. 베토벤의 황제,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3번, 브람스 1,2번, 모차르트 정도가 음반으로 나와있어요.

 


오늘은 그 중에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중에서 1악장을 들려드릴께요.

아르투르 토스카니니가 지휘하는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연주입니다 (1940년 카네기홀 녹음) (연주시간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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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