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너의 이름은 악마\"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2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6-11-18
2007-11-28 10:15:27
허원숙 조회수 2474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6년 11월 18일 원고....블라디미르 호로비츠  (2) “너의 이름은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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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어릴 적 호로비츠는 작곡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었는데 먹고 살기 위해서 할 수 없이 피아니스트의 길을 선택했다고 했죠. 먹고 살기 위해서 라는 말이 사실 피아니스트와 어울리기엔 거리감이 있는 말이긴 한데요, 호로비츠가 18살 때 카르코프에서 15번의 독주회를 개최했는데, 그 때 받은 개런티가 음식과 옷이었다는 것을 보면 얼마나 당시의 생활이 절박했는지를 알 수 있죠.

1922년 피아니스트로 데뷔를 하고 1928년에는 토마스 비첨 경과 함께 뉴욕 데뷔 연주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호로비츠에게, 그의 생애를 바꿔 놓는 사람이 이제 등장합니다. 누굴까요?

바로 토스카니니인데요.

1933년에 토스카니니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베토벤 연주회 시리즈에 호로비츠를 초대합니다. 이 때 함께 한 연주는 베토벤의 협주곡 5번 “황제”였구요, 그리고 그 해에 토스카니니의 딸 완다와 결혼을 하게 되지요. 결혼을 하게 되니 이제 결혼으로 호로비츠의 생애가 바뀌었구나 하고 생각하시겠지만, 사실 호로비츠의 생애를 바꾸어놓은 사람은 완다가 아니라 아버지인 지휘자 토스카니니였는데요, 이 토스카니니의 영향으로 호로비츠가 무대를 떠나게 되는 일이 벌어진 거죠.

이른바 호로비츠의 첫 침묵시기에 돌입하는 사건인데요. 토스카니니를 만나기 전까지의 호로비츠의 연주는 탁월한 기교와 강한 음향을 특징으로 했는데, 이탈리아의 대 지휘자를 만나고서 호로비츠는 자신의 탁월한 기교 외에 더 음악적으로 중요한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 일에 몰두하게 됩니다. 이 시기가 1936년부터 39년까지의 3년간의 침묵수행인데요, 표면적인 은퇴이유는 건강상의 문제였다고 하는데, 각고의 노력 끝에 3년 후 호로비츠는 파리에서 재기 연주회를 가졌고, 이제는 기교 위에 내면성이 더해졌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다시 무대 위에 서게 됩니다.

기교에 내면성까지 더해졌으니 얼마나 훌륭한 연주를 했겠어요. 그래서 바로 이 시기를 호로비츠의 전성기라고 사람들이 말을 했는데, 1953년이 되자 호로비츠는 다시금 은퇴 선언을 합니다. 이번에도 표면적인 이유는 건강상의 문제였는데요, 지난 번처럼 3년정도의 은퇴기간이 아니라 이번에는 자그마치 12년간을 공개연주를 하지 않고 지내게 되지요. 그런데 호로비츠가 처음부터 12년간을 은퇴하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해요. 조금 쉬었다가 재기하려고 망설이다보니까 1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침묵하게 되었다는데요, 사실 더 완벽한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 침묵하였다는 것보다는 무대공포증.... 대가도 지나칠 수 없다는 무대공포증 때문이었죠. 왜냐면 그 기간 동안 음반 녹음은 가끔 했었으니까요.

 


음악 듣겠습니다.

사위 호로비츠(37세)와 장인 토스카니니(74세)가 NBC Symphony Orchestra 와 함께 하는 연주로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op.23 중에서 제2악장 Andantino semplice 와 3악장 Allegro con fuoco입니다.

1941년 카네기홀에서의 연주입니다. (연주시간 5:47 + 6:07 = 약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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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와 요셉 호프만이 전 세계의 피아니스트를 대변하던 시기가 있었듯이 호로비츠가 명성을 누리고 있을 시절에도 호로비츠와 비교되면서 대조를 이루고 있던 피아니스트가 있었죠. 바로 아르투르 루빈슈타인인데요.

안정감있고 인생을 즐기던 루빈슈타인에 비해서 호로비츠는 정서적으로도 불안하고 정신적 신체적으로도 문제가 있었던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호로비츠가 지니고 있었던 것은 가장 화려한 기교와 천둥소리와도 같은 거대한 울림이었죠.

서로 경쟁관계에 있었던 루빈슈타인과 호로비츠는 둘다 자존심이 대단해서 서로 멀리하다가 다시 만나고 하는 불편한 친구사이였다는데요, 루빈슈타인은 자서전에 호로비츠가 더 나은 피아니스트라고 시인은 했지만, 속으로는 자기가 더 훌륭한 음악가라는 믿음으로 스스로를 위로 했다고 하죠.

루빈슈타인의 연주회는 항상 편안함과 따뜻함이 가득찼었는데, 그에 반해서 호로비츠의 연주회에는 악마적인 섬뜩함이 있었다고 해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전율적인 느낌이 연주회장을 감돌았다는데 무대에 걸어나오고 들어갈 때에는 어눌하기도 하고 편한 모습이지만 일단 연주에 돌입하면 연주장 안에 고압선의 전류가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고 하죠. 어떤 사람은 호로비츠가 연주를 하면 건반에서 연기가 나는 것 같았다고 해요.

그러던 호로비츠가 돌연 무대에서 사라졌고 가끔씩 음반은 나오는데 무대에는 나타나지 않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호로비츠의 재기를 기다렸겠어요.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호로비츠의 재기 무대는 1965년 5월 9일에 있었는데 그보다 13일 전인 4월 25일. 날은 춥고 비도 내리는데 카네기홀 매표소에는 이른 아침부터 물통이랑 담요를 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해서는 자정 때에는 278명, 다음날 아침 일곱시에는 1500명으로 불어나서 10시에 매표소가 열리기만을 기다렸었다고 하죠.

<역사적 귀환>이라고 불리는 이 호로비츠의 재기 음악회는 앙코르 요청만 15회, 커튼 콜에만 60여분이 걸렸다고 하는데 <기교와 표현의 일치>라는 찬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음악 듣겠습니다.

호로비츠의 12년만의 <역사적 귀환> 연주회 실황 중에서 쇼팽의 발라드 제1번 op.23입니다. (연주시간 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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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로비츠 음악회의 청중의 절반 이상은 피아니스트들이었는데 호로비츠의 연주를 주의깊게 듣고는 집에 가서 호로비츠 연주를 흉내낸 사람이 정말 많았다고 해요. 당시 미국 음악회장에서는 호로비츠의 프로그램을 그대로 들고 나와서 호로비츠의 버릇을 흉내내는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많았는데, 흉내낸다고 호로비츠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음악회마다 잘못 흉내낸 끔찍한 소리들로 채워졌고 음악을 아는 청중들은 호로비츠를 흉내내는 설익은 연주에 몸서리를 쳤다고 하네요. 우하하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