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잘있거라, 가여운 나의 손이여\"...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4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6-11-04
2007-11-28 10:13:48
허원숙 조회수 3900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6년 11월 04일 원고....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4) “잘 있거라, 가여운 나의 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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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러시아에서는 10월 혁명이 일어나고 3주 후에 라흐마니노프는 스톡홀름에서 연주 요청을 받고 가족과 함께 러시아를 떠나 망명길에 오르고, 스톡홀름에서 12번의 연주회를 해서 번 돈을 빚을 갚고 1918년 미국에서 살기 위해 피아니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하였다고 말씀 드렸죠.

피아노, 작곡, 지휘 세가지일을 고르게 잘 했다는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 연주에 치중한 삶을 살게 되면서는 많은 곡을 작곡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1923-4년 사이에 첫째 딸 이리나가 피오뜨르 볼콘스키 왕자와 약혼을 하게 되었고 드디어 결혼까지 하게 되었지만 1년도 못 살고 남편이 죽는 바람에 졸지에 과부가 되어 버리죠.

남편을 잃은 딸 이리나와 그 밑의, 둘째 딸인 타티아나를 위해서 라흐마니노프는 파리에 출판사를 차려줍니다. 이름은 TAIR 였는데요, 타티아나와 이리나의 이름 첫 두 글자씩을 따서 만든 이름이었죠. (그런 예는 라흐마니노프의 별장이름이데 있는데요, Senar 라는 별장이죠. Senar = Sergei + Natalya + Rachmaninoff) 그 출판사에서는 러시아 작곡가의 작품, 특별히 라흐마니노프 자신의 작품을 출판하였다고 해요.

연주에 골몰하던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의 연주회에 곡목을 하나 더 추가하기로 마음을 먹고 1926년부터 다시 작곡을 시작했는데 그 곡이 1926년 작곡해서 연주한 피아노 협주곡 제4번 (op.40) 이었고요, 그 후에 1931년 피아노 솔로 작품인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 있고, 34년에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36년에는 <교향곡 3번>, 그리고 40년에는 <교향적 무곡>이 탄생하지요.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파가니니 랩소디, 교향적 무곡....

이 곡들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멜로디가 있는 것 혹시 아세요?

“파-미-파-레-미-도-레”

이 멜로디는 레퀴엠의 두 번째 곡으로 나오는 dies irae 인데요,

라틴어로 “진노의 날”이라고 번역이 되는 성가로 죽음의 모티브를 나타내는 곡이지요.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변주곡 중에서 dies irae가  두드러지게 나와 있는 제7변주~제10변주까지를 감상하시겠습니다.

라흐마니노프가 1934년에 연주한 음반 중에서 들려드립니다.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연주입니다. (연주시간 1:00 + 0:33 + 0:31 + 0:50 = 약 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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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Saens 나 Liszt 에 의해서 죽음의 무도라는 제목으로 작곡된 곡들에서도 이 모티브가 많이 나타나고요 또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에도 이 모티브가 등장하는데요, 라흐마니노프는 그의 말년의 작품에 이 모티브를 많이 집어넣었죠.

그 중에서 오늘 라흐마니노프의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작품 42 (1931)를 소개해드린다면...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라는 이름으로 되어있는 이 작품의 첫머리에 나오는 주제는 사실 코렐리가 작곡한 곡이 아니라 스페인의 민속무곡 La Folia 에서 따와서 코렐리가 자신의 작품에 인용한 주제인데, 라흐마니노프는 그 사실을 알고 나중에 이 코렐리라는 이름을 제목에서 빼기를 원했지만 이미 코렐리 변주곡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상태였지요.

이 작품에도 죽음과 이별이 표현되어 있는데 그것은 아까 말씀드린 dies irae가 주제인 la Folia 와 동등하게 취급되면서 이곡의 핵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죠.

 


그럼, 음악을 듣겠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라흐마니노프가 1931년 10월 몬트리올에서 초연한 이 작품은 음반을 찾을 수가 없어서 다른 사람의 연주로 감상하시겠습니다.

라흐마니노프의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작품 42>

연주에는 장 이브 티보데입니다. (연주시간 약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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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스 이레. 찾으셨어요?

생상이나 리스트의 작품에 나타난 디에스 이레는 겉으로 잘 드러나도록 배치를 하였지만 라흐마니노프의 코렐리 변주곡에서는 워낙 많이 변형이 되어있어서 찾아내기가 쉽지 않아요. 하지만 디에스 이레가 들어있는 곡은 라흐마니노프의 말년의 작품 뿐 아니라 그전의 작품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요, Vocalise op.34-14가 바로 그것이죠.

원래는 성악을 위한 곡이지만, 오늘은 라흐마니노프의 오케스트레이션으로 된 작품으로 감상하시겠습니다.

연주에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지휘에는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입니다.(1929 연주)

(연주시간 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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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의 작품 뿐 아니라 1912년에 작곡한 vocalise에도 디에스 이레의 선율이 포장되어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라흐마니노프의 삶 자체가 죽음을 위한 준비였는지도 모르겠네요.

1942년 라흐마니노프는 이제 1942-43의 Season을 마지막으로 자기의 연주생활을 접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 온 이래로 라흐마니노프는 몸을 혹사하는 연주회 일정 때문에 항상 요통과 관절염, 극심한 피로에 시달렸는데요. 1943년 1월 연주여행 도중 건강이 악화되었고 늑막염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연주회 일정을 계속하다가 1943년 2월 17일의 연주를 마지막으로 병석에 눕고 말았죠. 이어 1달 후 3월 28일 캘리포니아의 비버리 힐즈에서 세상을 떠나는데...... 병명은 암이었죠.

로스앤젤레스의 병원에서 자신의 임종이 가까웠음을 알았을 때 자신의 그 커다란 손(왼손:도-미-솔-도-솔)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라흐마니노프가 한 말이 있어요.
“나의 사랑하는 손, 잘 있거라, 가여운 나의 손이여”

그동안 피아노 치느라 수고 많았다. 내 손아... 라는 뜻이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