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나는 할 수 있다\"...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3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6-10-28
2007-11-28 10:12:49
허원숙 조회수 2535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6년 10월 28일 원고....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3)  “나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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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라흐마니노프(1873~1943)가 스파르타 교수법으로 유명한 즈베레프 선생님의 심한 간섭을 견디다 못해 그 선생님과 헤어지고 자신의 사촌형이면서 피아노 교수인 실로티에게 배우게 되고, 이 실로티에게 자신의 처녀작인 작품번호 1번인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헌정한 이야기를 해 드렸지요?

 


오늘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나는 할 수 있다!”

무슨 말이냐고요?

라흐마니노프가 24세 때 작곡해서 발표한 교향곡이 실패하고 나서 충격을 받고 한동안 신경쇠약에 걸려서 창작활동을 하지 못하고 우울증에 시달렸는데, 그 때 Nikolai Dahl 박사의 도움으로 이 슬럼프를 극복하고 작곡가로서 재도전을 할 수 있었어요.

그 Dahl 박사가 실의에 빠진 라흐마니노프를 치료한 방법은 암시요법이라는 것이었는데요, 매주 Dahl 박사의 연구실을 찾아오는 라흐마니노프에게 “당신은 이제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대단히 훌륭한 작품이 될 것이다”라는 말로 용기와 확신을 주는 말을 반복함으로써 자신감을 얻게 만든 방법이었다죠.

덕분에 라흐마니노프는 다시 재기의 용기를 얻게 되고 비애와 억눌린 분노, 격정, 애수, 섬세함, 따스함이 듬뿍 담긴 작품을 작곡하게 되는데요, 바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작품 18이 그 곡입니다.

이 곡은 1901년 라흐마니노프가 정신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작곡해서 10월 27일 모스크바에서 자신의 연주로 초연하고 큰 성공을 가져다준 곡이고요, 당연히 그 성공의 은인 Nikolai Dahl 박사에게 헌정되었죠.

그러니 이 곡을 접하다보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고독함과 또 무언지 모를 큰 힘을 주는 이유가 바로 이런 어려움을 극복한 끝에 나온 곡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죠.

 


음악듣겠습니다.

라흐마니노프가 연주하는 그의 피아노 협주곡 2번 op.18 중에서

제1악장 Moderato:Allegro 를 Leopold Stokowski 가 지휘하는

The Philadelphia Orchestra 의 협연으로 보내드립니다. (연주시간 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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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장애는 자신의 마음의 장애라는 말이 있죠. 그처럼 자기 확신의 결여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무서운 내면의 적인데요, 이런 거장도 약해지는 시절이 있고, 또 그것을 극복해낸  방법이 일상생활에서 우리들도 끊임없이 되뇌이는 “할 수 있다”라는 자기암시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큰 일도 사실은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죠.

 


1906년 라흐마니노프는 독일의 드레스덴으로 거주지를 옮기고 작곡과 연주 (자신의 곡을 연주하는 일)에 몰두하게 되고 1909년이 되어서는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작곡합니다. 그리고 그 해 가을에 미국을 처음 방문해서 뉴욕에서 이 곡을 초연하고 이어서 전 미국을 여행하면서 이 곡을 선보이게 되죠. 이 3번 협주곡은 2번 협주곡보다 표현이 훨씬 더 강해졌구요, 이 곡을 처음 발표했을 때에는 “연주불가”한 곡라는 평을 들었을 만큼 피아노 솔로 파트가 피아노로 표현할 수 있는 극치점으로 치닫게 된 곡인데요, 가장 절친한 친구이면서 그 시대에 존재하는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요셉 호프만에게 헌정했지요.

 


라흐마니노프는 미국을 정말 싫어했는데요, 협주곡 3번을 발표하던 1909년 뉴욕 연주 때 라흐마니노프는 뉴욕에서 자기 집으로 편지를 보냅니다.

“... 알다시피 이 정떨어지는 나라에는 미국인들만이 들끓고 죽을 때까지 일만 할 것인지 사업, 사업 하면서 사람을 옴짝달싹  못하게 붙잡아 놓고 강행군을 시킨다. .... 나는 너무 바쁘고 지쳐있다. 내가 뇌이곤 하는 기도는 “하나님, 저에게 힘과 인내를 주시옵소서”이다.  모두가 나에게 친절하게 잘 해주지만 그런  모든 것들이 끔찍할 정도로 지겹다. 내 성격이 여기서 많이 나빠졌음을 느끼고 있다....”

 


본인은 이렇게 미국에서 연주여행의 강행군에 벌써부터 지쳐서 신음하고 있었지만, 사실 연주는 정말 큰 성공을 거두었구요, 보스톤 교향악단에서 상임지휘자 제의를 받게 되죠. 하지만 그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라흐마니노프는 고국으로 돌아와서 유럽 순회연주에 나섰고 러시아 음악계의 우상이 되어서 1917년까지 러시아에서 활동을 했었는데요, 그러던 라흐마니노프의 운명을 갈라놓는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러시아 혁명이었지요. 10월혁명이 일어나고 나서 3주 후에 라흐마니노프는 스톡홀름에서 연주요청을 받고 가족과 함께 러시아를 떠나 망명길에 오릅니다. 스톡홀름에서 12번의 연주회를 해서 번 돈으로 빚을 갚고 나서 보니, 앞으로 살아갈 일이 아득했다는데....

 


자신의 작품을 연주하기 위해 피아노연주도 많이 했고, 또 지휘도 많이 했었는데, 사실 작곡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웠고, 교통수단이 덜 발달했던 옛 시절에는 지휘자로서도 생활도 어렵고, 남을 가르치는 일도 좋아하지 않으니 교수를 택할 수도 없고....그러다보니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하나 ... 고민 끝에 친구인 요셉 호프만의 권유로 피아니스트가 될 결심을 그 때 했다고 하죠.

 


과거의 직업을 접고 피아니스트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아무리 훌륭한 연주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레파토리의 재정비가 필요했죠. 그 때까지는 자기가 작곡한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연주한 것이 전부였으니까 레파토리도 모두 라흐마니노프의 작품 뿐이었는데, 이제는 베토벤도 연주하고 쇼팽도 연주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죠. 그 때 라흐마니노프의 나이가 45세.

직업 피아니스트라면 지난 번 호프만 때에도 말씀드렸지만 21번의 연주회 동안 작품이 한 곡도 겹치지 않을 만큼 레퍼토리가 다양해야 하지 않겠어요? 이제 그렇게 되기 위해서 두문불출 연습에 몰두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보스톤 교향악단에서 30주동안 110회의 연주회 지휘를 맡아달라는 제의를 해왔어요.

라흐마니노프의 답변은?.... No!

그리고 나서 신시내티 교향악단에서도 제안이 왔는데 또 거절하고....

그리고 전문 피아니스트로서의 탄탄한 준비를 거쳐 다시금 피아니스트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음악듣겠습니다.

라흐마니노프의 연주로 Chopin의 Ballade 3번 op.47입니다. 1925년(52세)의 녹음입니다.

(연주시간 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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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