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45세에 피아니스트가 되겠다고?\"...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1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6-10-14
2007-11-28 10:11:52
허원숙 조회수 2794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6년 10월 14일 원고....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1)  “45세에 피아니스트가 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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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45세 때 무슨 일을 새로 시작하셨어요?

제가 너무 무례한 질문을 드렸지요?

사실 45세라는 나이는 무엇을 새로 시작하기에는 겁부터 나는 그런 나이죠. 저는 45세에 무엇을 시작했나... 고작해야 늙어서 고생하지 않으려고 운동을 해볼까 생각하는 정도? 앗, 그러다 보니 내 나이가 들통나려구래...헉!

오늘 소개해 드릴 사람은요.... 나이 45세에 직업 피아니스트가 되겠다고 작심을 하고 비로소 많은 레퍼토리를 연마하기 시작한 사람인데요.

궁금하시죠?

이 사람은 바로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입니다.

우리는 흔히 라흐마니노프라면 당연히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라고 생각을 하고 있지만, 라흐마니노프가 직업 피아니스트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45세 때의 일입니다. 그 때까지는 작곡이 최우선이었고, 그 다음은 지휘였고, 피아노는 자신이 작곡한 곡을 소개하기 위해서 연주하는, 제3의 자리에 머물었었지요. 그러던 라흐마니노프가 피아노로 방향을 돌리게 된 것은,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지휘자인 것보다 피아니스트로서 훨씬 수입이 많았기 때문이었어요. 지금은 교통수단이 많이 발달해서 오케스트라가 해외로 원정공연을 가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라흐마니노프가 활동하던 시기에만 해도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연주하기란 힘든 상황이었다고 해요. 피아니스트는 아무래도 혼자만 움직여도 되니까 기차타고 이곳 저곳을 돌면서 자주 연주를 할 수 있었고요.

 


라흐마니노프는 지지난 시간에 소개해 드린 요셉 호프만과 함께 1930년대의 현존하는 최고의 피아니스트 2인방이었는데요, 호프만과는 여러 면에서 대조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지요.

한번은 호프만이 라흐마니노프에게 “나는 연주하기 전에 곡을 어떻게 구성해서 연주해야겠다고 계획하는 사람이 아닌데, 연주하게 되면 어쩌다가 그런 소리가 나기도 해”라고 말했다는데, 그처럼 무의식 가운데 가장 자연스럽고 거침없이 연주하는 피아니스트가 호프만이라고 한다면, 라흐마니노프는 완벽한 논리에 따라 형상화시키고 아름답게 건축하고 완벽하게 연주하는, 세월이 흘러도 한결같은 아름다움을 지닌 이성적인 완벽주의자라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흔히들 호프만을 채색주의자 Colorist 라고 하고, 라흐마니노프를 피아노 건축가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문학작품에 비유한다면 호프만은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로미오의 혈기 왕성한 친구 Mercutio로 비유되고, 라흐마니노프는 사색적인 Hamlet 으로 비유되기도 하지요.

 


음악 듣겠습니다.

라흐마니노프의 연주로 들으실 곡은....

Gluck-Sgambati 의 Melodie (Orfeo ed Euridice 중에서) 1925년 녹음

Schubert-Liszt 의 Das Wandern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중에서) 1925년 녹음

백조의 노래 중에서 Serenade (Staendchen) 1942년 녹음

(연주시간 3:26+1:38+4:22=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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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들으신 세레나데는요, 성악가들이 라흐마니노프의 이 연주를 듣고 노래부르는 법을 배워야 할 정도로 리트를 부르는 성악가들보다 노래가 뛰어난 연주라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이런 대 피아니스트의 유년시절은 어땠을까...

 


라흐마니노프는 1873년 4월 1일 (3월20일이라고도 합니다. 러시아 달력이 달랐다는군요) Semyonovo(세미요노보)에서 태어났는데요, 라흐마니노프의 가문은 유서 깊은 러시아 귀족이었고, 할아버지, 아버지, 외할아버지 모두 군인이었다고 해요. 라흐마니노프의 아버지는 퇴역한 육군 장교였고, 어머니는 장군의 딸이었대요. 그런 가문에서 태어났으니 자연스럽게 육군 장교가 될 운명이라고 볼 수도 있었는데...

라흐마니노프의 아버지가 재산을 늘여보겠다고 하다가 잘못되는 바람에 재산을 다 잃고 단 하나 남은 할아버지의 영지인 노브고로트 근처의 Oneg라는 곳으로 가서 얹혀서 살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빚을 마저 갚느라고 Oneg라는 곳의 집도 팔고 St.Petersburg로 이주했는데, 계속되는 부모님의 불화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누이가 디프테리아로 숨지자 부모님은 급기야는 이혼을 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아버지는 가족을 버리고 떠나갔어요.

그런 집안의 사건이 사실 이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길이었던 군인의 길에 미련을 두지 않고 음악으로 몰입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하게 된 거죠.

라흐마니노프는 St.Petersburg 음악원 출신인 어머니에게서 4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는데, Petersburg로 이주해서는 Petersburg 음악원에 다녔고, 부모님이 이혼하게 되자 그 소용돌이 속에서 어린 라흐마니노프는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었는지 낙제를 하게 되고요, 장학금이 취소되어서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되었지요.

고민 끝에 사촌형인 Alexander Siloti의 추천으로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Nikolay Zverev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되었는데요, 이 선생님은 스파르타 교육으로 유명하신 분이었는데, 그 선생님 아파트에서 또 다른 학생들 2명과 함께 기거하면서 엄격한 훈련과 같은 교육을 받았다고 해요. 매일 아침 연습을 새벽 6시에 시작했고요, 교향곡을 공부하기 위해 4-hand 피아노로 편곡된 악보를 공부했고요, 음악회에도 많이 다니고 또 매주 일요일 오후 Zverev 선생님댁에서 모이는 음악가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Anton Rubinstein, Taneyev, Arensky, Safonov, 그리고 Tchaikovsky 와도 알게 되었구요.

모스크바 음악원에 들어가서는 화성학은 Arensky에게서, 또 대위법은 Taneyev에게서 배웠는데, Zverev 선생님이 엄격하다못해 너무 지나치게 간섭하는 바람에 불화가 생겨서 그만 Zverev 선생님을 떠나서 사촌형인 Siloti에게서 피아노를 배우게 되지요. Siloti는 Zverev에게서 피아노를 배우고 리스트에게서도 피아노를 배웠고 1890년부터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가 된 사람인데요, 라흐마니노프는 1890년부터 그 다음해에 걸쳐 작곡한 자신의 처녀작 작품번호 1번인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이 사촌형이면서 자신의 피아노 스승인 실로티에게 헌정합니다.

 


음악 들을까요?

라흐마니노프가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1번 op.1 중에서 1악장을 유진 오만디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함께 감상하시겠습니다. 1939-1940에 걸쳐 녹음한 음반입니다. (연주시간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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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