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저는 피아니스트입니다.\"...알프레드 코르토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6-10-07
2007-11-28 10:11:29
허원숙 조회수 2848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6년 10월 07일 원고.... 알프레드 코르토  “저는 피아니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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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해 드릴 피아니스트는요, 클라라 하스킬과 디누 리파티의 스승이면서 파리의 에콜 노르말 음악학교를 설립한 피아니스트입니다.

누굴까...

프랑스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인, 알프레드 코르토이지요.

코르토는 1877년 스위스 Nyon (니용)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에는 누나들에게서 피아노를 배우다가 9살에 되던 1886년 파리로 가서 파리음악원에 입학하여서, 처음에는 쇼팽의 마지막 제자 Emile Decombes(에밀 데콩브), 그 후에는 리스트의 제자 Louis Diemer (루이 디에메)를 사사하고 1898년에 1등으로 졸업합니다.

코르토는 재능도 훌륭한 학생이었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이었고요, 음악원 재학 시절에는 생상스로부터 솔페지와 화성학 수업을 받았는데, 한번은 생상스가 복도를 지나가다가 학생들에게 무슨 악기가 전공인지 물었대요. 코르토 앞에 다가와서 생상스가 묻기를, “그리고 너, 어린 학생. 무슨 악기를 연주하지?”했더니 코르토가 대답하기를, “저는 피아니스트입니다.”... 그 말을 듣고 생상스가 “얘야, 우리 너무 자신을 과장하지 말자”라면서 다독거렸다고 하죠.

10대 때에 한번은 안톤 루빈슈타인이 파리를 방문했는데, 코르토가 베토벤의 소나타 <열정> 1악장을 안톤 루빈슈타인 앞에서 연주했었대요.

코르토의 연주를 듣고난 안톤 루빈슈타인이 해 준 말은, “얘야, 지금 내가 이야기하는 것을 명심해라. 베토벤 음악은 열심히 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란다. 베토벤의 정신이 살아있도록 재창조해야만 베토벤이라고 할 수 있지.”

그 말을 명심한 코르토는 정신이 살아있는 주관 있는 연주자의 길을 걷게 되는데, 음악원을 졸업한 후에 1901년 바이로이트로 가서 Hans Richter 의 부지휘자가 되었고요 프랑스로 귀국해서는 파리에서 바그너의 “신들의 황혼”을 파리 초연했고요, 트리스탄과 이졸데도 지휘했는데, 대단한 바그너 숭배자로서 바그너 오페라 전부를 외우고 있었고 그 곡들을 전부 피아노로 옮겨서 연주할 수 있었다고 하죠.

코르토, 카잘스, 티보의 피아노 트리오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요, 1917년에는 파리음악원의 Superior 과정의 교수가 되어서 클라라 하스킬, 이본느 르페뷔르(Yvonne Lefebure), 유라 겔러(Youra Geller), 마그다 탈리아페로(Magda Tagliaferro) 같은 피아니스트를 길러냈고요, 에콜 노르말 음악원을 창설해서는 그곳에서 디누 리파티, 상송 프랑수아(Samson Francois), 이고르 마르케비치(Igor Markevoch), 디노 치아니(Dino Ciani) 같은 명피아니스트들을 길러냈지요. 그의 명성에 걸맞게 코르토가 강의한 매스터클래스에는 한번에 신청자가 800명이나 되었다고 하죠.

 


음악 듣겠습니다.

리스트의 연주회용 연습곡 중에서 제2번 La Leggierezza (가벼움, 경쾌? 1930년 녹음)과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 11번 A 단조 (1925년 녹음!!!!!)

알프레드 코르토의 연주로 보내드립니다. (연주시간 4:22+4:06 = 8분 2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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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연주죠?

코르토의 연주하는 모습을 실제로 보면 어디엔가 홀린 듯한 기분이 되었다고 해요. 루바토와 적절한 몸동작을 사용해서 템포를 착각하게 만들기도 하고요, 관객의 심리를 꿰뚫고 있는 연주자였다고 해요. 그래서 코르토의 연주를 단 두 단어로 표현하라면 루바토와 색채라고 말한다는데요....동의하시죠? :)

음악전공자들을 위한 코르토의 업적 중에, 참고서 악보가 있는데요, Editions Salabert (잘라베르 에디션)에서 출판한 쇼팽과 리스트, 멘델스존의 악보인데요, 여기에는 모든 곡의 테크닉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연습방법에서부터 손가락번호 같은 것들이 빼곡이 쓰여있는 참고서라고 할 수 있는 악보이죠. 쇼팽의 연습곡을 연습하는 방법 같은 것은 보기만 해도 질릴 정도로 많은 방법이 소개되어 있지요.

 


자신의 독주회, 자크 티보, 파블로 카잘스와의 피아노 트리오 연주, 매스터 클래스, 다양한 저술활동, 콩쿠르 심사위원, 음반 작업... 이 많은 일들을 어떻게 다 소화해 낼 수 있었을까?

도대체 연습은 어떻게 했을까? 궁금하시죠?

정답은... “연습을 못 했다” 입니다.

연습시간이 모자란 코르토는 항상 실수 투성이였고, 연주 도중에 잊어버리기 일쑤였다고 하죠. 그래서 농담처럼 사람들이 말하기를, 다른 연주자들과 달리 선명한 선율, 핵심을 찌르는 날카로움, 루바토, 지성적인 연주가 돋보이고 게다가 틀리는 음까지 있으면 그것은 분명히 코르토의 연주가 분명하다는 말이죠.

 


코르토는 어린 시절에 너는 무슨 악기를 연주하니 라고 물었던 생상스의 질문에 “저는 피아니스트입니다.”라고 대답했던 것처럼, 야망이 넘치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같은 반 친구였던 앙드레 베노아 (후에 유명한 반주자가 된 사람) 는 “코르토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며 그의 목표는 명성과 권력이었다”고 말했는데요.

함께 연주했던 카잘스도 코르토의 야망 때문에 코르토에게 후에 슬픈 사태가 벌어졌을 것이라고 했는데요, 그 슬픈 사태라는 것은 무엇이냐면 나치가 1940년에 파리를 점령했을 때 공개적으로 협력했고, 나치 점령 지역과 독일에서 연주를 한 사실들이죠.

그 일 때문에 1944년에 프랑스가 자유를 회복하고 나서는 프랑스에서 살 수 없어서 스위스의 Lausanne(로잔)으로 이주했는데, 1946년에 활동재개를 허락받아서 조금씩 연주 여행을 다니다가 1950년대부터는 다시 프랑스에서도 가끔씩 연주했고 녹음도 했다고 해요. 그런데 그렇게 프랑스에서 다시 연주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코르토가 자신의 과거를 부끄러워하고 공개적으로 이 전력에 대해서 사과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고 하는데요, 1958년에는 관계를 회복한 카잘스의 요청으로 프라드 음악제에서 카잘스와 듀오로 연주도 했는데 이미 코르토의 화려한 전성기는 지나 있었다고 하죠. (은퇴할 시기를 놓쳤다고도 말하죠). 그리고 나서 1962년 85세를 일기로 로잔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습니다.

 


음악 듣겠습니다.

코르토의 감각이 돋보이는 쇼팽의 전주곡을 감상하시겠는데요, 코르토는 쇼팽의 24개의 전주곡의 각 곡마다 자신의 독창적인 부제를 붙여놓았어요. 물론 쇼팽의 의도와는 다른 제목들이지만 나름대로 작품에 자신의 주관이 뚜렷이 들어가면서 곡의 해석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제목들입니다. 그 중에서 오늘 감상하실 17번부터 24번까지의 제목을 소개하면요.

 

17.그녀가 내게 말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18.저주

19.아! 사랑하는 이여, 당신에게 날아갈 날개가 있다면

20.장례

21.고백의 땅에 외로이 돌아오다

22.반역

23.장난치며 노는 요정

24.피, 열정, 죽음.

알프레드 코르토의 연주(1933년 녹음)로 쇼팽의 전주곡 op.28의 17~24번까지 감상하시겠습니다. (연주시간 약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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