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피아노만으로는 모자라...\" 요셉 호프만 2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6-09-23
2007-11-28 10:10:21
허원숙 조회수 3262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6년 09월 23일 원고.... 요셉 호프만 (2) “피아노만으로는 모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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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역사상 최고의 신동이었다는 요셉 호프만.

지난 시간에 요셉 호프만이 11살 때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데뷔 연주회에서 엄청난 성공을 한 후에, 곧바로 이어서 10주간에 걸쳐서 52회의 연주회를 하게 된 이야기를 해 드렸죠.

아동학대방지협회로부터 주의 경고를 받고, 또 소송에 휘말려서 결국은 어떤 독지가로부터 5만 달러의 후원금을 받고 18세가 될 때까지 공개연주회를 가지지 않겠다는 서약을 한 후 무대에서 사라진 이야기도 해 드렸는데요, 1887년에 5만 달러가 도대체 얼마나 되는 금액이었을까 궁금해서 찾아보니까요, 당시에는 3인 가족을 거느린 가장이 1년에 500달러를 벌면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고 해요. (그렇다면 자그마치 100년치 수입????)

그 많은 돈을 받고 요셉 호프만의 아버지는 자기 아들의 다음 연주회 스케줄을 모조리 취소했고요, 온 가족과 함께 독일로 가서 모리츠 모스코브스키와 안톤 루빈슈타인에게 가르침을 받고 마침내 약속한 열여덟 살이 되어서 함부르크에서 첫 연주회를 가졌고 그 이후로는 1차 대전 때까지 베를린에 살면서 수많은 연주활동을 하게 되는데요.

 


한 번은 트빌리시(現 그루지아 공화국의 수도)에서 연주회를 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 그곳에는 요셉 레빈이라는, 또 다른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교직에 몸담으면서 살고 있었대요.

요셉 호프만은 자신의 독주회 당일 오후에 레빈 부부의 집을 방문했는데, 그 집에서 집주인 요셉 레빈이 피아노를 치는데, 호프만도 모르는 곡을 연주하는 것이었어요.

“이게 무슨 곡이예요?” 요셉 호프만은 레빈에게 물었구요, 그 곡이 리스트의 “로렐라이”라는 곡이라는 대답을 듣고서는, “한 번만 더 쳐주세요.”했대요.

그리고는 호프만은 레빈 부부와 함께 저녁 식사를 했고, 그리고 함께 연주회장으로 갔어요. 물론 호프만의 독주회죠.

환상적인 독주회를 마치고, 열성적인 환호에 보답하는 뜻으로, 앵콜곡을 연주하러 무대에 나온 호프만이 갑자기 레빈 부부를 보고 윙크를 하더래요. 그리고 나서 앵콜곡을 연주하는데, 조금 전에 레빈에게 무슨 곡이냐고 물었던 그 “로렐라이”를 레빈이 연주한 것과 똑같이 연주했다고 하죠.

 


호프만과 Godowsky는 절친한 사이였는데, 하루는 호프만이 Godowsky의 연습실에 우연히 들렀다가 Godowsky가 연주하는 <박쥐>를 입을 벌리고 열심히 들은 적이 있었대요. 1900년 경이라니까 20대 때의 일이죠.

그리고 나서 호프만의 아버지가 Godowsky한테 달려와서 따지면서 말하기를, “도대체 당신이 어떻게 했길래 우리 아들이 온종일 쉬트라우스 왈츠만 치고 있는 거요?”.

그리고 나서 1주일 정도 지난 후에 호프만은 Godowsky 집에 와서 다시 고도브스키가 편곡한 쉬트라우스의 <박쥐>를 음 하나 빠뜨리지 않고 연주했는데, 고도브스키의 그 곡은 아직 악보로 기보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해요.

 


음악 듣겠습니다.

요셉 호프만의 연주로,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제3번 B 단조 op.58 중에서 1악장 Allegro maestoso입니다.

1935년의 녹음입니다. (연주시간 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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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만은 “오른손 피아니스트”를 경멸했다고 해요. 오른손 피아니스트라는 말은 오른손 멜로디만 중점적으로 들리게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라는 뜻인데요, 그것처럼 자신은 오른손 뿐 아니라 왼손의 베이스라인이 환상적인 연주를 들려주고 있죠.

그리고 또 같은 곡을 여러 번 녹음했는데 한 번도 같은 스타일로 녹음하지 않았다고 해요.

 

 

 

호프만의 일생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물론 많지만 아주 특별한 사람과의 인연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그 분은 바로 발명왕 에디슨입니다.

1887년 호프만이 뉴욕 데뷔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해에 발명왕 에디슨은 11살 밖에 되지 않은 호프만을 자신의 연구실로 초대합니다. 당시에는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한지 겨우 10년 밖에 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고 해요.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호프만은 에디슨의 연구실에서 실린더에 음악을 녹음하게 되지요. 그때 만들었던 실린더를 1차 대전 때까지 가지고 있었는데 1차 대전 때 베를린에 있었던 호프만의 집이 폭격에 전소될 때 함께 없어졌다고 해요.

피아니스트이면서 발명가였던 호프만은 그 후로도 계속 에디슨과 연락을 하면서 지냈는데, 에디슨에게 여러 가지 좋은 의견을 주었다고 해요. 예를 들어서 드라이브 메카니즘을 향상시킬 수 있는 의견 같은 것들....

호프만은 진정으로 연습이 필요 없는 몇 사람 되지 않는 피아니스트 중의 한 사람이었고,  연주여행을 앞두고도 단 한 시간정도만 연습했다고 지난시간에 말씀드렸었죠?

그렇다면 그 많은 시간을 무엇을 하면서 지냈나....

차고에서 지냈다고 해요. 뚝딱뚝딱 뭔가 만들면서...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것들 중에 호프만의 발명품도 있어요.

뭔지 아시나요?

그것은 바로 자동차의 와이퍼인데요, 놀라셨죠? 자동차의 와이퍼를 발명한 사람이 바로 호프만인데요, 그 아이디어를 메트로놈의 원리에서 따왔다고 하죠.

 


음악 들겠습니다.

베토벤의 소나타 18번, 작품 31-3 중에서 제2악장 Scherzo와,

쇼팽의 왈츠 A플랫 장조, 작품 42입니다.

요셉 호프만의 1935년 녹음입니다. (연주시간 4:11+3:34 = 약 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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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시간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