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완전시끌, 완전신동\"... 요셉 호프만 1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6-09-16
2007-11-28 10:09:24
허원숙 조회수 3898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6년 09월 16일 원고.... 요셉 호프만 (1) “ 완전시끌, 완전신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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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음악 역사상 가장 완벽한 재능을 갖춘 신동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피아니스트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1912년에 성 페테르부르크에서 연달아 21번의 음악회를 가졌는데, 프로그램이 한 곡도 겹치지 않고 도합 255곡을 연주한 피아니스트......

기가 막히죠? 누굴까?

이 분은 1909년에 러시아 연주여행 때에는 자기가 연주해야 할 곡을 모르는 채로 연주장에 가서는  프로그램에 브람스의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고 눈썹을 한 번 찡그리고는 주저 없이 그 곡을 연주했는데요, 그 곡은 이 분이 2년 반 전에 연주한 이래로 한 번도 다시 치거나 악보를 들여다본 적이 없었던 곡이었다고 하죠.

소름끼치죠? 도대체 누굴까...

1876년 폴란드의 크라카우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피아니스트 요셉 호프만의 이야기입니다.

요셉 호프만은 아버지로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서 6살 때에는 벌써 공개 연주회를 가졌고요, 9살에는 베를린에서 한스 폰 뷜로의 지휘로 베토벤 협주곡 1번을 연주했고요, 11살 때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의 데뷔연주회에서 청중들을 경악하게 하는 대성공을 거두는데요, 그 연주회가 1887년 11월 29일이었는데, 그 연주에 이어서 바로 12월 1,3,6,13,15,22,27,31일, 1월2,18,21,25일 그리고 2월 1,8,15,18일.... 이렇게 10주간에 걸쳐서 총 52회의 연주회를 가지게 됩니다.

요셉 호프만의 아버지 Casimir Hofmann (카시미르 호프만)은 작곡도 하고, 지휘도 하고, 피아노도 치는 음악가였는데, 또 꽤 능력 있는 프로모터였다고 해요. 그래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자기 아들의 음악회가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로 인기가 좋게 되니까 탐욕스럽게도 매니저와 한 몫 잡으려고 약장사처럼 11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를 엄청 혹사시켰다는 말을 듣게 되었죠.

이렇게 어린 꼬마에게 너무 많은 연주회 일정이 잡히고 광고가 나가니까, 뉴욕 아동학대방지협회에서는 어린아이가 혹사되는 것을 우려해서 연주회 횟수를 주당 4회까지만으로 제한하고 그 규정을 잘 지키는지 감시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요셉 호프만은 이 규정보다 훨씬 더 많은 음악회에 출연했고요, 급기야 뉴욕 아동학대방지협회 회장은 뉴욕 시장에게 고소장을 보내고, 어떤 피아니스트는 어린 요셉 얼굴을 보니까 눈 주위에 다크써클도 생기고 안색이 창백하다면서 이 어린 아이가 800~1000페이지에 달하는 악보를 암기해야 하는 부담감, 무대 위에서 훌륭한 연주를 하기 위해서 얼마나 섬세한 감각을 소진하는지, 또 얼마나 정상적인 아동기를 박탈당하고 있는지 등등 어린 요셉을 염려하는 진정서같은 편지도 보내고 그 편지가 신문에 실리기도 하고, 음악계가 떠들썩하게 되었다고 해요.

그러자 요셉 호프만의 아버지는 돌연 자기 아들의 건강을 해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앞으로의 모든 음악회 일정을 취소했는데요, 사실은 뉴욕의 자선가로부터 요셉 호프만이 18살이 되기 전에는 무대에 절대로 세우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5만 달러를 기부받았기 때문이었죠.

그러니 이 사실을 알게 된 매니저는 계약위반이라면서 요셉 호프만의 아버지에게 5만7천달러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했고요, 그 소송 때문에 실시된 건강검진에서는 요셉 호프만이 ‘정신착란’증세가 있다는 진단이 나와서, 그 매니저는 소송을 취하했는데, 요셉 호프만의 열성팬들의 성화에 못 이겨 소송을 취하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요.

 

 

 

음악 듣겠습니다.

 


Chopin의  Andante Spianato e Grande Polonaise, op.22를 요셉 호프만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 데뷔 50주년 기념음악회 실황 (1937) 중에서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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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1888년 3월 28일 요셉 호프만의 가족들은 유럽으로 가는 배를 타게 됩니다.

이런 인생도 기구하다고 해야 하는지...

그런데 요셉 호프만은 후에 이 일을 회상하면서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요.

 


“나는 대중 앞에서 계속 연주했어야 했다. 6년 동안의 은둔생활은 친절하고도 관대한 클라크씨가 5만 달러의 기금을 내놓음으로써 가능했다. 나의 가족 역시 호의로 받아들였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그 세월의 대부분은 허송세월이 되고 말았다. 대중 앞에 선다는 것은 야심을 향한 박차이다. 만약 어떤 어린 아이가 직업적인 음악가가 될 것이 확실하다면 전문적인 평가를 통해 더 좋은 음악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동종요법의 치료방식처럼 말이다. 그리고 건강관리도 신중했으면 될 것 아닌가 말이다. 대중 앞에서의 출연은 일종의 시험이자 본인이 얼마나 진보하고 있는가를 파악할 수 있는 척도이다.... 생각해보면 은둔은 나에게 전혀 불필요한 것이었다. 나는 정말이지 병을 앓고 있지도 않았고 6개월이면 충분히 건강을 회복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6년이란 세월은 오히려 나의 야심을 맥빠지게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유년시절 음악회에서 연주할 때마다 아주 행복했었다고 말했대요.

그러니, 평범한 어른의 시각으로 봤을 때에는 혹사인지 모르지만, 이 신동 피아니스트에게는 연주회장이 아주 재미난 놀이터였던 거죠.

 


유럽에 간 요셉 호프만과 가족들은 독일에 정착하게 됩니다. 우선 베를린에서 모스코프스키와 공부를 하고요, 1892년부터는 드레스덴에서 안톤 루빈슈타인의 유일한 제자가 되지요.

안톤 루빈슈타인은 변덕스러운 선생님이었지만, 언제나 핵심을 찌르는 강의를 했다고 해요. 그렇지만 레슨 받을 때에 같은 곡을 한 번 이상 가져오는 것은 금지했다는데 그 이유가 궁금해서 요셉 호프만이 여쭤보았대요.

그랬더니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지난 시간에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잊어버리기 때문에, 혹시나 내가 이번 시간에 지난 시간과 완전히 다른 개념의 이야기를 해서 너를 혼란시키게 될까봐 그런다”고 했다죠.

아무튼, 이 위대한 스승 안톤 루빈슈타인과의 배움을 졸업하는 의미로 루빈슈타인은 요셉 호프만의 데뷔연주회를 주선하게 됩니다. 1894년 함부르크에서 안톤 루빈슈타인의 지휘로 루빈슈타인 협주곡 D단조를 연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어서 시작된 그의 연주회는 아까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한 번도 곡이 겹치지 않은 21회의 연주회, 미리 알지 못하는 프로그램으로의 연주회 같은 상상하기도 힘든 연주회들인데요, 신기한 것은, 요셉 호프만은 한 번 손에 익힌 곡은 영원히 잊어버리지 않았다고 해요. 그리고 정말로 연습이 필요 없는 몇 안 되는 피아니스트에 속했고요, 연주여행을 앞두고는 고작 하루에 1시간 정도 연습했다고 하죠.

 


음악 듣겠습니다.

요셉 호프만의 연주로 1937년도(61세)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 데뷔 50주년 기념 연주회 실황 중에서 Beethoven-Rubinstein: Turkish March (터키 행진곡)과,

Moszkowski: Caprice Espagnole(스페인 기상곡), op.37을 보내드립니다.

(연주시간 2:04+5:18= 약 7분 3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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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