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약속은 지켜야 한다\"...디누 리파티 2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6-09-09
2007-11-28 10:08:55
허원숙 조회수 2728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6년 09월 09일 원고.... 디누 리파티 (2) “약속은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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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았지만 빛났던 그 분 생애의 종점이었습니다. 그 분은 2개월 뒤인 12월 2일, 33세의 나이로 죽을 운명에 놓여 있었습니다. 병이 아주 깊었는데도 그 분은 브장송 연주의 약속을, 그 계약을 지키고 싶다고 했습니다. 주치의가 설득하여 중지시키려고 했으나 헛수고였지요. 그만큼 ‘약속을 어기고 싶지 않다’는 리파티의 결의가 굳었던 것입니다. 콘서트는 음악에 대한 그 분의 맹세였습니다. 그 일을 그 분은 ‘중대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음악을 통해 자기 연주를 듣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 분은 아주 쇠약해져서 걱정할 만한 상태로 연주회 날 저녁 브장송에 도착했기 때문에 피아노 연습을 하러 연주회장에 가는 것조차 힘겨울 정도였습니다.

호텔에 돌아오자 그 분의 충실한 벗인 주치의가 연주회를 중단해야겠다고 만류할 정도로 병세가 악화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리파티는 완강하게 ‘나는 약속했다, 나는 연주해야 돼“라고만 되풀이 할 뿐이었습니다.

그 분은 기운을 차리기 위해 주사를 연거푸 몇 대나 맞았습니다. 그리고는 자동 인형처럼 옷을 갈아입고 연주회장으로 데려다 줄 자동차가 있는 데까지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계단을 오르는 일이 그 분에게는 정말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러 가는 발걸음과 같았습니다. 숨이 막혀 실신하지나 않을까 하고 염려될 정도였습니다....”

 


백혈병에 걸려서 투병하는 6년 동안, 병마와 싸우면서도 연주와 녹음을 계속했던 디누 리파티의 부인이 자기 남편의 마지막 연주회를 회상하면서 한 말인데요.

브장송 연주회 날에 리파티는 병세가 너무 악화되어서 기절했다가 각성제를 맞고서야 겨우 깨어났다는데요, 그러면서도 청중들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연주를 꼭 해야 한다는 고집 때문에 각성제 주사를 한계량까지 맞고 무대에 올랐다죠. 백혈병 투병의 마지막 단계라 팔도 퉁퉁 부어오른 상태였다는데....

그날 프로그램은요. 바흐 파르티타, 모차르트 소나타, 슈베르트 즉흥곡에 이어서 쇼팽의 왈츠 14곡을 연주하게 되어 있었는데, 마지막 왈츠 (no.2)는 결국 힘이 다해서 연주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2개월 후 리파티는 숨지게 되는데....

하지만 죽음을 불사하고 강행한 연주회였기 때문인지 1950년 9월 16일 브장송에서 있었던 마지막 리사이틀 실황을 녹음한 음반은 레코드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감동적인 명반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쇼팽의 왈츠를 감상하시겠습니다.

12, 13, 8, 1번 (op.70-2, 70-3, 64-3, 18)

디누 리파티의 마지막 연주, 브장송 페스티벌 1950년 9월 16일 실황입니다.

(연주시간 1:20+1:49+2:40+4:08=약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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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대 왈츠 작품 18 이 사실은 마지막에서 두 번째 곡인데, 한 곡을 남겨두고 피아노에서 힘겹게 일어선 리파티에게 사람들은 아낌없는 갈채를 보냅니다.

미소도 지을 수 없을 정도로 온 몸이 굳어서 피아노에서 일어난 리파티에게 사람들은 울먹이면서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다고 하고요.

한참 지나고 나서 박수가 거의 끝나고 녹음실에서는 녹음기도 껐을 무렵에 리파티는 마지막 곡을 연주하는데요, 그 곡은 전에 못 다한 마지막 왈츠 2번이 아니고요, 바흐의 코랄 “Jesu bleibt meine Freude 예수는 나의 기쁨”이였는데, 안타깝게도 프로듀서 월터 레그는 리파티의 진짜 마지막 연주가 된 그 연주를 듣느라고 녹음 버튼을 미처 누르지 못했다고 해요.

 


디누 리파티를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정서와 사상이 균형있게 조화를 이룬 피아니스트라고 하는데요, 당대의 기교파 피아니스트들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규범을 일깨워준 피아니스트라고 하죠.

그의 스승이었던 알프레드 코르토의 말을 빌리면, “모차르트, 바흐, 베토벤, 쇼팽.... 그 어느 작품이나 단순한 음표를 초월하여 그 정신의 의미를 표현할 수 있는 확실한 이해력을 가진 피아니스트”였다는 리파티는 작품의 건축적인구성과 정신을 연결시키는 탁월한 중재자라는 평가를 받는 순수파 피아니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리파티 자신은 “저는 인생 경험이 부족해서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음악을 듣겠습니다.

M.Hess가 편곡한 바흐의 칸타타 Herz und Mund und Tat und Leben 중에서 "Jesu bleibet meine Freude"(예수는 나의 기쁨) BWV 147과

Busoni가 편곡한 바흐의 코랄 프렐류드 "Ich ruf' zu dir, Herr Jesu Christ"(내가 예수 그리스도 당신께 부르짖나니) BWV 639,

그리고 Kempff가 편곡한 바흐의 Siciliana BWV 1031를

디누 리파티의 연주로 감상하시겠습니다. 1950년 리파티가 숨지던 해의 녹음입니다.

(연주시간 3:23 +2:55 +3:04=약 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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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2월 2일. 리파티가 죽기 30분 전, 베토벤의 현악4중주곡 f 단조를 음반으로 듣고 있다가 아내에게 말했대요.

“여보, 저런 음악을 작곡하려면 위대한 작곡가가 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만이 저런 음악을 작곡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