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너무 짧다.ㅠ.ㅠ.\"...디누 리파티 1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6-09-02
2007-11-28 10:08:26
허원숙 조회수 2612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6년 09월 02일 원고.... 디누 리파티 (1) “너무 짧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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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917년 루마니아 부카레스트에서 태어나 1950년 제네바에서 백혈병으로 33살이라는 짧은 생을 마감한,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바로 Dinu Lipatti 인데요, 리파티의 이름 Dinu는 세례명을 짧게 줄인 거라고 하죠.

리파티의 아버지는 사라사테와 칼 플레쉬에게 바이올린을 배운 바이올리니스트였고 어머니는 훌륭한 피아니스트여서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음악과 접하게 되었구요, 에네스쿠는 리파티의 대부(代父)로서 어린 시절의 리파티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해요.

세 살 건강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듯이, 짧은 인생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던 리파티는 어린 시절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해요. 조금만 힘들어도 병이 나는 그런 건강상태로는 남들처럼 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에 리파티의 부모는 가정학습을 하기를 권했고요, 비록 학교에는 다니지 않았지만, 집에서 체계적으로 탄탄한 수업을 받을 수 있었죠.

피아노는 처음에는 음악가인 부모에게서 배우다가 부카레스트 음악원에 들어가서는 Floria  Musicescu 를 사사하게 되었는데, 1934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빈 국제 콩쿠르에 출전해서 2등을 하게 됩니다.

처음 나간 국제 대회에서 2등. 잘 했죠?

그런데 그게 그런 게 아니었나 봐요. 심사를 맡았던 알프레드 코르토는 어떻게 이런 사람을 1등이 아닌 2등을 줄 수 있냐면서 강력하게 항의를 하고 결국은 심사위원직을 사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해요.

알프레드 코르토는 카잘스, 티보와 함께 트리오 연주로도 명성을 떨쳤고, 또 지휘자로서도, 음악교육자로서도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긴 사람이었는데요. 1919년에 파리에 에콜 노르말 드 뮈지크 라는 음악학교를 세운 분이었죠.

리파티는 비록 빈 콩쿠르에서는 2등밖에 수상할 수 없었지만, 이렇게 자기 편이 되어준 훌륭한 스승을 얻게 되어서 파리로 갑니다. 그리고 파리에서는 이름만 들어도 훌륭한 가르침이 될 것 같은 스승들을 많이 만나게 되고요. 우선 피아노는 알프레드 코르토, 이본느 르페뷔르(Yvonne Refebure), 지휘는 샤를르 뮌슈(Munch), 작곡은 폴 뒤카(Paul Dukas), 나디아 블랑제 (Nadia Boulanger),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같은 스승들이었죠.

 


음악 듣겠습니다.

파리에 간 리파티의 작곡 스승이 된 나디아 불랑제와 함께 녹음한 리파티의 첫 레코드 중에서 골랐습니다. 1937년 녹음해서 38년에 발매된 브람스의 네 손을 위한 왈츠, 작품 39 중에서 1,2,5,6,10,14,15번입니다. 연주에는 20살의 디누 리파티와 나디아 불랑제입니다. (연주시간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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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토의 초청으로 파리에 간 리파티는 좋은 스승과 음악적인 환경을 접하면서 독일과 이태리에 까지 그의 명성을 떨치게 됩니다. 그렇지만 2차 대전이 일어나게 되었고, 리파티는 다시 루마니아로 돌아오게 되죠. 그리고 1943년까지 루마니아에서 지내다가 전쟁이 심해지자 후에 그의 아내가 될 Madeleine Cantacuzene (마들렌 칸타쿠젠)과 함께 전쟁을 피해서 제네바로 잠시 몸을 피합니다.

전쟁은 끝이 났고, 이제 다시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얻게 되고 사랑하는 마들렌과 결혼도 하고 또 제네바 콘서바토리의 교수도 되고 새롭게 다시 음악활동을 시작하자 리파티가 얻은 게 또 하나 있습니다.

백혈병.

가뜩이나 몸도 건강한 편이 아닌데 백혈병까지....

할 수 없이 미국과 호주 연주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또 유럽에서의 연주도 대부분 취소하면서 리파티는 33살에 숨질 때까지 6년간을 이 백혈병과 싸우게 되는데요.

투병에만 모든 힘을 다해도 모자랄텐데, 리파티는 1946년부터 죽는 해 1950년까지 4년 동안 자신의 남은 생을 음반작업에 바칩니다. 우리가 흔히 들을 수 있는 리파티의 음악은 대부분 이 때에 제작된 것인데요, 스튜디오에서 혹은 부분적으로는 리파티의 집에서도 작업을 했다는 이 음반들은 정말 완벽함, 투명함, 절제와 정열이 모두 들어있는,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소중한 음반이 되었습니다.

 


이제 들려드릴 음악은요, 두 곡인데요.

우선 리파티의 대부이면서 정신적으로 많은 힘과 영향을 주었던  Geroge Enescu 의 음악을 먼저 들으실 텐데요, 에네스쿠 피아노 소나타 3번 D 장조, 작품 25중에서 1악장 Vivace con brio. 디누 리파티의 1943년(26살때)의 녹음이구요.

바로 이어서 모리스 라벨의 모음곡 <거울> 중에서 Alborada del gracioso 어릿광대의 아침노래입니다. 1948년 디누 리파티의 31세 때의 녹음입니다.

(연주시간 5:06+ 5:41= 약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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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결정체같은 음악이죠.

완벽주의자였던 리파티에게 클라라 하스킬이 한 말이 있어요.

“내가 얼마나 당신의 재능을 부러워하는지 알아요? 왜 당신에게는 그렇게 재능이 많고 나에게는 이렇게 조금밖에 없는지.... 세상에 이게 공평한 것 같아요?”

하지만 클라라 하스킬의 이 말과 달리 리파티가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했던 피아니스트는  클라라 하스킬이었다고 해요. Dear Clarinette 로 시작되는 편지도 있구요.

Clarinette? Clara의 축소형이면서 깨끗한 음색을 낸다고 지은 악기 이름, 클라리넷 이기도 하지요.

일화가 하나 있어요.

리파티 독주회에 클라라 하스킬이 왔다는 말을 듣고 연주를 취소했다는 말.

그만큼 클라라 하스킬을 위대한 피아니스트라고 생각했고, 그 앞에서 연주한다는 것이 두렵고 창피했던 거죠.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