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내일 공연은 힘들 것 같구나\"... 클라라 하스킬 3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6-08-26
2007-11-28 10:07:53
허원숙 조회수 2741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6년 08월 26일 원고.... 클라라 하스킬 (3) “내일 공연은 힘들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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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부터 스위스의 Montreux-Vevey에서는 클라라 하스킬의 이름을 딴 클라라 하스킬 피아노 콩쿠르를 개최합니다.

클라라 하스킬은 스페인계 루마니아 사람인데 왜 스위스에 그의 콩쿠르가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클라라 하스킬이 스위스로 망명해서 1960년 숨질 때까지 그곳에서 스위스 국적의 피아니스트로 활동했기 때문인데요.

하스킬은 파리 음악원에서 음악공부를 했고 그 이후에도 그곳에 거주하다가 전쟁이 나고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하게 되면서 남 마르세이유의 시골로 피난을 가게 되지요. 그런데 1942년에 독일이 남프랑스도 점령하게 되어서 이제는 어느 곳도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었어요. 유태인이고 또 몸은 불편하지... 가까스로 스위스로 도피를 했는데 중립국이었던 스위스에서는 비교적 안전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 곳에서 1949년 드디어 스위스 국적을 취득하고 언니와 함께 여생을 보내게 되었던 거죠. 그러니 그의 스위스로의 망명 뒤에는 잔인한 유태인 학살로부터의 처절한 몸부림이 깔려있는 겁니다.

그러던 어느 날, 네덜란드 impresario (흥생사)가 그녀를 발견하게 되지요. 이런 보물이 있다니.... 흥분한 흥행사는 그녀의 능력을 확신하고 네덜란드에서 3개의 음악회를 주선했는데, 그 연주회가 모두 성공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소식은 빠른 속도로 유럽 전역에 퍼져나갔고 54살의 나이든 피아니스트는 새로운 스타로 재탄생하게 되었구요, 그 후 루체른, 프라드, 몽트뢰 같은 주요 페스티발에 독주자로 또는 협연자로 참여하게 되었어요.

 


유명한 이야기가 있는데요.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타티아나 니콜라예바가 처음으로 서유럽에 잠시 음악 공부를 하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떠나기 전 러시아의 음악인 친구들은 니콜라예바에게 “서방에 가거든 카라얀이라는 지휘자의 콘서트에 꼭 가보도록 해. 그는 새로운 토스카니니로 알려져 있어”라고 조언했습니다. 때마침 잘츠부르크에서 카라얀의 모차르트 연주회가 있어서 니콜라예바는 이 연주회에 참석했습니다. 프로그램은 모차르트의 교향곡과 협주곡으로 되어있었는데, 당시의 협연자가 클라라 하스킬이었지만, 니콜라예바에겐 클라라 하스킬이란 이름은 전혀 생소한 사람이었는데요, 니콜라예바가 쓴 글에 보면 얼마나 하스킬의 연주가 감동적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1부에서는 오케스트라가 교향곡을 연주했는데, 특별히 훌륭하달 수는 없는 연주였대요. 그렇지만 인터미션이 끝나고 2부에 클라라 하스킬이라는 피아니스트가 나오는 협주곡을 들으려고 다시 객석에 앉았대요.

“무대로 걸어나오는 그녀의 몸은 구부러져 있었고, 잿빛 머리카락은 온통 헝클어져 있어서 마치 마녀처럼 보였다. 공연이 시작되고 오케스트라가 도입부를 연주했다. 별 다른 감흥도 없었지만, 그래도 잘 하는 연주였다. 드디어 피아노 솔로가 시작될 부분이 되어서 클라라 하스킬의 두 손이 건반 위에 놓여졌고 음악이 흐르는데, 내 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내가 이 음악회에 온 이유는 새로운 토스카니니를 보기 위함에서였는데.... 내 눈 앞에는 그보다 훨씬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모차르트의 전문가가 있다. 얼마나 확신에 찬 음악인지, 얼마나 강한 흡인력인지... 피아노솔로가 지나고 나서 다시 오케스트라가 투티를 받았는데 그 순간에 모든 것은 마술처럼 다 변해있었다. 카라얀이 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클라라 하스킬이 10개의 손가락과 가슴으로 지휘하고 있었다. .. 내가 경험한 가장 아름다운 연주회였다.”

 


음악 듣겠습니다.

들려드리고 싶은 곡은 클라라 하스킬이 연주하는 슈만 피아노 협주곡 A 단조 중에서 3악장 Allegro vivace입니다. Paul Kletzki 가 지휘하는 Het Residentie Orkest의 연주, 1953년 7월 네덜란드 페스티벌 실황음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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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하스킬은 말년에 아르투르 그뤼미오와 환상의 모차르트 콤비로 연주회를 많이 했지요. 그뤼미오 외에도 카잘스, 이자이, 에네스쿠 같은 쟁쟁한 연주자들과도 연주를 함께 했는데, 클라라 하스킬이 유독 이렇게 현악기와 호흡을 잘 맞출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 피아노와 함께 바이올린을 배울 수 있었고 또 피아노보다 먼저 바이올린으로 상을 받을 정도로 바이올린에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라죠. 바이올린은 겨우 3년간 배웠지만, 그리고 연습도 하지 않고 레슨 받는 날만 한 번 해보고 레슨을 받았지만, 정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전쟁이 나서 피난 갈 때에도 바이올린을 꼭 껴안고 갔다고 하는데, 바이올린을 하지 않게 된 것은 병이 나고 신체적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라죠.

 


음악 듣겠습니다.

1957년 9월 브장송에서의 실황연주로 모차르트의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E 단조 K. 304를 감상하시겠습니다.

1악장 Allegro, 2악장 Tempo di Minuetto (연주시간 10:53)

연주에는 클라라 하스킬(62), 그리고 바이올린에 아르투르 그뤼미오(36)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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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12월 6일 하스킬은 언니 릴리와 함께 브뤼셀로 기차를 타고 여행을 했습니다. 벨기에의 바이올리니스트 아르투르 그뤼미오와 함께 연주여행을 하기 위해서였는데요.

브뤼셀 역에 도착한 하스킬은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지면서 머리를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혔습니다. 의식불명 상태로 실려간 그녀는 병원에서 잠시 의식을 찾았을 때 파리에서 달려온 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내일 공연은 힘들 것 같구나. 그뤼미오씨에게 죄송하다고 전해주렴...”

이것이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이 되어버렸고요.

그리고 다시 혼수상태로 빠진 하스킬은 다음 날 이른 아침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파리의 몽빠르나스에 가면 하스킬의 무덤이 있는데요, 세 자매, Lili, Clara, Jan (Jeanne)가 한 무덤에 합장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