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모든 것 다 버리고\"... 프란츠 리스트 2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6-07-01
2007-11-27 19:01:33
허원숙 조회수 2594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6년 07월 01일 원고.... 프란츠 리스트 (2) “모든 것 다 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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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리스트. 피아노 음악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사람이죠.

우선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피아노 독주회를 시작한 장본인이구요.

전에 쇼팽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지만, 쇼팽은 연주를 많이 하긴 했어도 자기 작품만 연주했는데, 리스트는 자기 작품 뿐만 아니라, 바흐, 베토벤, 슈베르트, 쇼팽, 슈만, 바그너, 멘델스존 같은 작곡가들의 광범위한 작품을 연주했구요. 리스트의 피아노 작품을 보면 원래 피아노를 위한 곡만 있는 것이 아니라, 베토벤의 교향곡에서부터 바그너 오페라, 베르디 오페라곡, 슈베르트의 가곡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의 편곡이 있는데요, 그것은 리스트가 오케스트라나 큰 연주단체가 오지 못하는 작은 마을, 작은 홀에서 그 마을 주민들을 위해서 오케스트라 곡을 연주해주면서 생긴 곡들이라고 해요. 리스트의 연주를 들으면 오케스트라보다도 더 깊고 웅장한 소리를 냈다고 하죠.

우리가 리스트를 비르투오조 피아니스트라고 알고 있는데, 리스트는 단순히 비르투오소가 아니라, 연주해석 Interpretation 이라는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는 사람이었다는데요, 쇼팽이 쓴 편지를 보면, “지금, 리스트가 나의 연습곡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내 연습곡을 연주하는 그의 연주법을 훔치고 싶은 심정입니다.” 라고 썼는데, 이것은 리스트의 기교가 아니라 interpretation이 너무 훌륭하기 때문이라고 해요.

지난 시간에 리스트가 1847년 (36세) 카롤리네 자인-비트켄쉬타인 공작부인을 만나게 되면서부터 피아니스트의 생활을 접게 되었다고 말씀드렸죠. 피아노를 완전히 그만 둔 것은 아니고요, 돈을 받고 하는 직업적 연주가의 길을 포기했다는 말이지요. 리스트는 그 후 40년 가까이 간혹 자선음악회에서나 연주할 뿐, 일반 대중 앞에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요. 물론 당시의 비트켄쉬타인 공작부인의 사건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작곡에 전념하고자 하는 열망이 진짜 요인이었는데요.

리스트의 말을 빌리면, “1847년 이래 나는 연주 교수, 지휘 등에 의한 수입이 한 푼도 없었다. 오히려 내 시간과 내 돈이 들었을 뿐이다.”고 하는 것처럼, 성직에 들어온 이후로는 절대로 돈을 받고 가르치는 법이 없었다고 해요. 연주회도 그렇고 피아노 레슨도 완전히 무료였다고 하는데요.

리스트가 30대 중반까지는 세계 정상의 화려한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면서 러블레이스(Lovelace, 난봉꾼의 대명사)로 불리다가, 수도사의 청빈한 삶을 택할 수 있었다는 것을 보면, 지난 시간에 제가 농담처럼 무늬만 수도사라고 했지만, 사실 대단한 사람이었던 거죠.

리스트는 성품이 관대하고 사심이 없고 겸손했다고 해요. 연주회, 피아노 레슨 같은 일을  모두 무료로 봉사했고요, 다른 사람들을 위해 거액의 기금을 모으기도 했다고 해요.

최소한의 생활비만 가지고 생활을 했구요, 커피나 술도 가장 싼 것으로 마셨다고 해요. 사치라고는 전혀 몰랐구요, 시가를 참 좋아했는데, 정말 좋은 시가를 선물로 받게 되면 그것은 다른 사람한테 주고, 자신은 싼 걸 사서 피웠다고 해요.

기차를 탈 때에도 1등실은 이용하지 않았는데, 과시용으로 그렇게 한 게 아니라,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와서 그렇게 했다고 해요.

 


음악 듣겠습니다.

리스트의 초절기교연습곡 중에서 Harmonies du Soir (밤의 하모니)입니다. 연주에는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 1988년 Schleswig-Holstein Musik Festival 의 Live Recording입니다. (연주시간 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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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의 피아노 레슨은 어땠는지 궁금하시죠?

지난 번에도 말씀드렸던 에미 페이라는 제자가 쓴 편지에 보면, “리스트는 기술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해 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공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라고 쓰여있는 것처럼, 리스트는 테크닉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은 듯합니다. 테크닉을 가르쳐달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나는 피아노 선생이 아닙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 보통이었다고 전해지죠.

리스트가 가르치려고 했던 것은, 음악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파악하게 해 주는 것이었구요, 어떻게 인터프레테이션을 구성하는지, 프레이징이나 액센트나 표현을 어떻게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나타내는지 하는 그런 공부였습니다. 말하자면 테크닉의 문제가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하는 공부죠.

말년의 제자였던 에미 페이가 쓴 편지에 보면요,

“바이마르에서는 모두 그를 숭배하고 있고 여성들은 아직까지도 그에게 완전히 열중하고 있다고 사람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걸어갈 때에는 모든 사람이 마치 왕에게 대하듯이 인사를 합니다. 그 분처럼 기분이 좋은 선생님은 없습니다. 그와 함께 있으면 편안한 기분이 되며, 그는 마음속에 있는 음악의 정신을 발달시켜 줍니다. 그는 조금도 잔소리를 하지 않으며 내가 나 자신의 음악에 빠져들도록 해 줍니다. 때때로 비평을 하거나, 일부분을 쳐 주기도 하면서 짧은 말로 평생토록 생각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것을 가르쳐 줍니다.

리스트는 확실히 마술사입니다.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흥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얼굴은 작품의 조성이 바뀔 때마다 변하니까요,

그를 위하여 악보의 페이지를 넘겨주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치고 있는 곳보다 훨씬 앞을 읽고 있으며 한꺼번에 5마디를 봐 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어떤 연주든지 리스트 앞에서는 공허하게 울립니다. 그의 연주는 생명이며 시(詩)가 인격화되어 숨쉬고 있는 것이며, 열정, 우아, 재치, 매력, 대담, 부드러움, 그 밖에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한의 우아함 그것입니다. 아아, 그 사람이야말로 모든 점에서 훌륭한 존재입니다. 짧은 말로 표현한다면 그는 인간의 감정의 모든 등급을 대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많은 면을 가진 프리즘으로 광선을 모든 색채로 반사시킵니다.”

 


음악 듣겠습니다.

리스트의 <Harmonies poetiques et religieuses 시적이고 종교적인 조화> 중에서 제7곡 Funerailles(퓌네라이)입니다. 흔히 장송곡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장례식이라고 해야 맞다고 하죠. 연주에는 Georges Cziffra입니다.(연주시간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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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