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메피스토펠레스의 변신\"... 프란츠 리스트 1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6-06-24
2007-11-27 19:01:09
허원숙 조회수 6208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6년 06월 24일 원고.... 프란츠 리스트 (1) “메피스토펠레스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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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메피스토펠레스에서 수도사로 변신한 위대한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누굴까...

“그의 입은 양끝이 올라가 있어서 미소를 지을 때면 가장 교활하고 메피스토펠레스적인 표정을 띠게 된다. 그의 외양과 태도는 일종의 제수이트적인 우아함과 평온함이 흠뻑 배어있다. 그는 온전히 정신적이지만 반은 조롱하는 정신이랄까.... 그는 내게 무엇보다도 먼저 옛시대의 마술사를 생각나게 했다. 그리고 나는 그가 자신의 지팡이로 우리를 건드리면 우리 모두를 변신시킬 수 있으리라는 느낌을 받았다.”

리스트가 말년에 가르친 제자 아미 페이가 한 말입니다.

젊은 시절 리스트가 연주를 할 때면 여인들은 꽃다발 대신 보석을 무대 위로 던졌다고 해요. 흥분해서 비명을 질러대다가 기절하기도 했구요. 연주가 끝나면 무대로 돌진해서 리스트가 피아노 위에 놔두고 간 장갑을 서로 가지려고 무대가 아수라장이 되었다고 하고, 심지어는 리스트가 피우다 버린 시가의 꽁초까지도 가슴에 품고 다닌 여자도 있었다고 하죠.

이렇게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연주자. 단순히 연주만 잘 한다고 사람들을 이렇게 흥분시키지는 못 할 텐데, 리스트에게는 악마의 마력이 있었던 게 분명해요. 청중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 원하기만 한다면 모든 청중을 울릴 수 있었고, 또 흥분의 극치에까지 몰고 갈 수 있는 괴력이 있었던 거죠.

그런 그가 1847년 (36세)에 남러시아의 엘리자베스그라드에서의 마지막 공개연주를 끝으로 무대를 떠나 수도원으로 들어갑니다.

왜 그랬을까...

리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적인 삶과 또 이렇게 수도사로서의 삶을 구분짓게 한 사람이 있었는데요, 카롤리네 자인-비트켄쉬타인 공작부인이었어요. 리스트가 사랑하던 많은 여인 중의 하나라고 볼 수도 있겠는데, 이 공작부인을 만나고부터는 여행하는 비르투오조의 생활을 청산하고 이 여인과 함께 살면서 작곡에 몰두하고 종교에 귀의하게 되는데, 이 공작부인의 별거하고 있던 남편이 이혼을 해 주지 않아서 리스트와 비크켄쉬타인 공작부인의 결혼은 이루어지지 않게 되자, 리스트는 드디어 수도원으로 들어가 버린 거죠.

1865년에 리스트는 로마 가톨릭의 수도사가 되었습니다. 성직에는 일곱 가지 지위 (degree)가 있는데 그 중에서 네 가지 degree를 받았다고 해요. 그러니까, 미사를 집전할 수 없고, 고해성사를 해 줄 수도 없고,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지 성직을 떠날 수 있는 자유를 보장 받았다고 해요. 원한다면 결혼도 물론 할 수 있었고요. 하지만 그 외 네 가지 degree는 유효한데, 문지기, 낭독자, 복사(服事), 그리고 구마사(Exorcist)의 신분을 얻었다고 하죠. 전직이 메피스토라 마귀도 잘 물리칠 수 있게 되는 건지....하하.....

그리고 명예 수사신부 (honorary canon)이기도 했구요, 1879년에는 알바노의 수사신부로 승격되어서 자주빛 수단 (soutane) 을 입을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었지만, 한 번도 그의 권리를 행사하지는 않았다고 하죠.

리스트가 가지고 다닌 지팡이에는 아씨시의 성 프란체스코와 그레첸, 메피스토펠레스의 머리 세 개가 조각되어있었다는데, 그것은 바로 리스트의 ①영적인 동경과 윤리적 욕구 ②여성에 대한 사랑과 숭배 ③냉소적 악마주의를 단적으로 상징하는 것이라고 해요.

그러니, 대중의 스타로서 온갖 화려한 영예를 누리고, 많은 여성들과 화려한 연애행각을 벌이다가, 많은 희생과 의무가 따르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중요 관심사를 전혀 방해받음없이 성직 서품을 받은 것은 가장 리스트적인 행동이었다고 볼 수 있죠.

 


음악 듣겠습니다.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 중에서 2,3악장과 코다입니다.

크리스티안 침머만의 피아노,

세이지 오자와가 지휘하는 보스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입니다.

(8:19 + 4:23 + 1:44 =  약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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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허영심, 관대함, 호색, 종교성, 속물근성, 서민기질, 문학적인 갈망과 환상.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말들이 어쩌면 이 한 사람 안에 다 들어있는지....

그래서 사람들은 리스트를 메피스토펠레스이며 동시에 성 프란시스라고 했나 봐요. 일생동안 예술에 대한 욕구와 또 종교에 대한 갈망, 그리고 육肉의 욕망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추구했고요, 그래서 그 작품 안에는 악마주의도 있고, 종교에의 열망도 있고요, 정신성과 육욕, 도덕심과 속물적인 허영심이 묘하게 공존하고 있죠.

카롤리네 자인-비트켄쉬타인 공작부인과의 일 때문에 수도사가 되긴 했지만, 리스트는 어릴 적부터 이미 종교적인 체험을 했구요, 젊었을 때 2년간 수도원에서 보낸 적도 있었다고 해요. 리스트에게는 자신의 깊은 철학의 바탕이 된 교회, 신앙의 참된 초상이 될 음악을 작곡하는 야심이 강해서 종교음악도 많이 작곡했어요.

흔히 리스트의 생애를 ①유년기 ②파리 시기 ③바이마르 시기 ④로마시기 이렇게 4단계로 나누는데, 바이마르시기와 로마시기에는 정말로 많은 작품이 종교와 연관된 작품들이었지요.

리스트가 로마에 온 시기가 1861년 (50세) 이었는데, 돈도 명성도 career도 모두 버리고 한동안은 신앙에 관한 생각밖에 없었다고 하죠. 하지만 낭만주의 기질이 너무 강해서 웬만큼 투쟁하지 않고는 종교적인 겸양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해요. 결국은 수사가 된 이후에도 이른바 올가 자니나 에피소드라고 불리우는 코사크의 백작부인과의 스캔들 때문에 낭패스러운 일도 있었구요.

하지만, 친구였던 몬시뇰 호헨로에 라는 추기경의 배려로 티볼리의 에스테 별장 (villa d'Este)에서 살게 되면서 아름답고 좋은 종교적 성향이 짙은 작품을 많이 작곡하게 되는데요, 이 별장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세습재산인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별장이라고 해요. 매일 이 곳에 산 것은 아니지만, 일생의 마지막 20년을 적어도 1년에 몇 달 간씩은 이곳에 머물면서 작품 활동에 몰두했죠.

 


오늘은 이 아름다운 별장의 분수를 묘사한 리스트의 작품 <에스테 별장의 분수>를 들으시겠는데요, 리스트의 <순례의 해, 제 3년>의네 번째 곡이죠.

연주에는 Mikhail Rudy입니다. (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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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작품 그 자체로도 가치 있지만, 인상파의 초석을 놔 준 작품으로 유명하죠. 후에 라벨이 <물의 유희>라는 작품을 작곡하게 되는데, 그 계기를 마련해 준 작품이 바로 리스트의 <에스테 별장의 분수>입니다.

 


다음에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