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흙과 심장과...\" ...프레데릭 쇼팽 10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6-06-17
2007-11-27 19:00:41
허원숙 조회수 2721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6년 06월 17일 원고.... 프레데릭 쇼팽 (10) “흙과 심장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마요르카 섬에 요양하러 갔다가 병만 도져서 파리로 돌아온 쇼팽은 주위의 관심 속에, 또 상드의 모성애 가득 찬 보호 아래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하고 드디어 창작의 정점에 도달합니다. 파리의 살 드 플레이엘에서 연주회도 다시 시작했고요. 이 시기(1839-1842년까지를 말함)에 쇼팽이 작곡한 작품들은요, 소나타 2번 op.35, 스케르초 3번 op.39, 스케르초 4번 op.54, 폴로네즈 op.44, 폴로네즈 op.53, 발라드 3번 op.47, 발라드 4번 op.52, 환상곡 op.49..... 그 외에도 왈츠, 녹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작품을 작곡했는데요, 쇼팽이 작곡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 본 상드가 쓴 글이 있어요.

 


“그는 언제나 고민에 가득 싸여 일을 시작한다. 끝없는 시도 끝에 주제의 일정한 세부를 잡는다. 그리고 그 부분을 마음의 귀를 기울여 듣는다. 대강 구도가 이루어지면 처음 쓴 원고를 아주 세밀하게 분석한다. 그리고 그것을 정리하는데, 잘 되지 못하면 깊은 시름에 빠지거나 절망의 늪에 빠져 온종일 자기 방에 틀어박혀 이리저리 뛰어다니거나 거위깃털 펜을 내던지기도 한다. 그리곤 그것을 다시 집어 들어 한 박자를 백 번이나 고쳐 쓰고 썼다가는 또 지우고, 이튿날 아침이 되면 또다시 끈질긴 사투를 시작한다. 이처럼 수없이 되풀이한 끝에 그가 택하는 것은 맨처음 구상한 스케치이다.....”

 


그런데 쇼팽도 자신이 쓴 편지에 창작의 과정에 대한 어려움을 표현했는데요. 바로 “시간은 최고의 심판자이며 인내는 최고의 선생이다”라는 말이에요. 현재는 청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작품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흐른 후 남지 않으면 최고의 작품이 될 수 없고, 최고의 작품으로 남으려면 끊임없는 인내심을 가지고 도전해야 한다는 말이겠죠.

 


음악 들을까요?

쇼팽의 창작의 절정기에 만들어졌다는 환상곡 op.49.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의 연주로 감상하시겠습니다. 1957년 런던 Royal Festival Hall 에서의 실황연주입니다. (연주시간 12:43)

 


*************

 


쇼팽은 조르주 상드와 거의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함께 살았는데요, 그 시기에 정말 많은 대표작을 내 놓았지요. 그렇다면 조르주 상드가 내조를 아주 잘 해 주었겠구나 하고 생각하실텐데요, 사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해요.

얼핏 생각하기에 쇼팽은 허약한 몸을 가지고 곡을 쓰기에 바빴을 거고 살림은 상드가 도맡아서 했을 것 같은데...

사실은 쇼팽이 개인교습과 작곡료로 번 돈으로 상드도 살았다죠. 상드의 두 아이들도 쇼팽이 진심으로 사랑하며 키웠다고 하고요.

1846년 6월 상드는 프랑스 신문에 <루크레치아 프로리아니>이라는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는데요, 그 내용을 보고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는 정말 “신같은 기교로 써 나가는 소설 속에서 내 친구 쇼팽을 난폭한 방법으로 비난하고 있구나”라고 했다죠.

내용인즉슨, 연약하고 천사와 같은 미모의 청년과, 6살 연상의 여인의 사랑 이야기인데요, 소설에 나타난 주인공 설정이 이름과 직업만 바꾸었다 뿐이지, 쇼팽과 상드의 모습 그대로이구요,  이야기가 진전되면서는 남자 주인공이 질투의 화신이면서 속 좁은 사나이로 표현되고요 거듭되는 싸움과 또 침묵의 냉전 끝에 여자주인공이 비탄에 빠져 견딜 수 없어 갑자기 죽는다는 내용이었대요.

그 내용을 상드는 쇼팽과 그의 친구이자 화가인 들라크루아 앞에서 읽어주었는데요, 들라크루아는 너무 황당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는데, 쇼팽은 소설 잘 썼다고 칭찬만 했대요.

둘 만의 이야기를 그것도 여자 주인공이 죽는 결말로 소설로 만든 상드가 너무한 건지, 그 소설을 읽고도 화를 내지 않고 아무 동요도 하지 않는 쇼팽이 너무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드의 말에 의하면 쇼팽은 마음 속 이야기를 뚜렷이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해요. 고뇌를 말로 표현한 적도 없고 오로지 작품을 통해서만 말을 했다고 해요.

쇼팽 입장에서 보면 상드는 프랑스 사람이라, 폴란드의 피가 흐르는 자신과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의 공감대가 없다는 게 큰 불만이었구요, 함께 살기 시작한 지 1년 후부터는 그나마 남아 있던 사랑의 감정이 다 사라져버렸다고 하는데, 상드의 딸의 결혼 문제를 가지고 다투다가 완전히 헤어지게 되었죠.

하지만 친구한테 쇼팽이 쓴 편지에 보면 “나는 이전에 어떤 사람도 저주한 일이 없었는데 지금은 내 괴로움을 참을 수 없어 상드를 저주하고 있어, 그녀도 괴로워하고 있을 거야. 시간이 가면 한층 더하겠지”라고 되어있고요, 또 쇼팽이 마지막 죽어가면서 단 한 사람 상드가 와 주기를 애타게 기다렸다는 것을 보면....

안타까워요. 대충 살지... 싸우지 말고...

상드와 헤어지고 나서 쇼팽은 런던으로 갔는데, 영국 사람들이 쇼팽의 음악을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냥 살기 위한 연주를 했다고 하고요, 기침과 각혈이 심해지고 건강이 너무 나빠져서 개인교습은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연주 무대에 자주 섰는데, 그 일이 죽음을 재촉했다고 하죠.

건강이 더 악화되자 연주도 할 수 없고 곡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쇼팽 곁에는 쇼팽의 누이 루드비카가 쇼팽을 돌보고 있었는데, 1849년 9월 1일 루드비카에게 조르주 상드는 드디어 편지를 보냅니다.

“ .....프레데릭이 어떤지 알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어떤 분은 심상치 않다고 하는 나쁜 소식을 전해 주었고 또 어떤 사람은 늘 그렇듯이 쇠약하여 고생만 하고 있다는 말 전해 들었습니다. 아무쪼록 진상을 알려주십시오.....”

이 편지를 한 1년 정도 일찍 보냈다면 쇼팽이 그렇게 빨리 죽지 않았을 거라는 말도 있는데, 이 편지를 본 루드비카는 쇼팽에게 이 편지를 전해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1849년 10월 17일 쇼팽은 숨을 거두었고, 장례식에는 <쇼팽의 장송행진곡>이 울려퍼졌고, 하관식을 할 때 친구들이 폴란드의 흙을 담은 은잔을 기울여 관 위에 조국의 흙을 뿌렸고요, 쇼팽의 심장은 유언대로 황금 항아리에 담겨져 조국 폴란드로 보내졌고 바르샤바의 성 십자 교회에 안치되었습니다.

“제가 죽은 뒤에 만일 쓰다 만 작품이 발견되거든 불에 태워서 없애버려주세요. 저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 노력은 깨끗하게 끝을 맺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제 그것을 마저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제가 아무런 가치도 없는 작품을 남겨두었거나, 또 그런 작품이 널리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저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습니다. 저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실망을 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저의 이 부탁을 꼭 들어주세요”

쇼팽의 걱정과 당부와 상관없이 쇼팽의 유작은 사후에 출판되었구요, 그 작품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았습니다.

음악 듣겠습니다.

쇼팽의 작품 중 유작으로 남겨진 3개의 연습곡을 들려드립니다.

보리스 베레조브스키의 연주입니다. (2:41+2:10+1:50=약 7분)

 


************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