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키 170cm 몸무게 44Kg\"...프레데릭 쇼팽 8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6-06-03
2007-11-27 18:59:48
허원숙 조회수 2721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6년 06월 03일 원고.... 프레데릭 쇼팽 (8) “키 170cm  몸무게 44Kg”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아들아, 돈을 쓸 땐 쓰더라도, 항상 일정액수는 남겨두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예비비가 있어야 필요한 때에 쓸 수 있단다. 그리고 시간을 낭비하지 말거라. 타국에서 빈곤에 허덕여 손가락만 빨며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꼭 하거라. 혹시 누구와 함께 쓸 수 있는 집으로 이사하면 어떻겠니. 물론 그 전에 속속들이 잘 살펴보아야겠지. 그리고 유가증권을 사두면 어떨까. 필요할 때 언제라도 팔 수 있으니 말야.”

어떤 아들인지 참... 부모 걱정 많이 시켜드리고 있죠?

 


누구겠어요, 쇼팽이죠.

파리에 정착한 쇼팽은 연주가로서 또 작곡가로서 안정된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음악계, 사교계의 인사들도 많이 알게 되었구요, 귀족들이 연이어 제자가 되었어요.

그러다보니 점점 차림새에도 신경을 많이 쓰게 되었구요, 쇼팽의 과소비 시대가 시작된거죠. 그것을 알게 된 쇼팽의 아버지는 참다 못 해 아껴쓰라는 편지와 함께 은행에 구좌까지 개설해 주게 되었는데.... 소용없었지요.

 


신장:170cm 

눈:푸른 회색

몸무게:97파운드 (44 Kg)

아름다운 치아...

쇼팽의 여권에 나와 있는 신상입니다.

워낙 몸이 약했다는 말은 많이 들었어도 이렇게 말랐을 줄이야....

하지만 이 분 얼마나 멋쟁이였는지 들어보세요.

엷은 회색, 홍자색 그리고 푸른 색의 프록코트. 고급 삼베 셔츠에 비단 목도리.

에나멜 가죽 장화, 회색 빛 새틴 안감이 받쳐진 케이프....

쇼팽은 지출면에 있어서 상당히 무절제한 삶을 살았다고 해요. 향수, 구두, 모자 등 모두가 최고급품이었구요, 여자들한테 보내는 꽃값만 해도 상당했고, 사탕, 장식품의 지출도 만만치 았았다고 해요. 사탕이 뭐 대수냐고 하시겠지만, 안톤 체홉의 <벚꽃정원>의 부잣집 주인의 상징으로 막대 사탕이 등장하는 걸 보면 당시 사탕이 얼마나 비싼 사치품이었는지 잘 알 수 있죠.

아무튼 이렇게 지출이 많은 쇼팽이 그 지출을 다 감당하기 위해서는 돈을 많이 벌어야겠죠. 그렇다면 쇼팽이 할 일은 연주회를 많이 열거나, 작품을 출판사에 파는 일이겠는데....

파리에 정착한 쇼팽은 파리에서의 18년 동안 연주회를 19회밖에 하지 않았구요, 그 중에 독주회는 단 4회밖에 없었대요. 그 이유는 무대공포증 때문이었어요. 친구 티투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연주하기 사흘 전부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고 써 있구요, 리스트에게 한 말을 보면, “저는 연주회 체질이 아닌가봅니다. 사람들은 나를 당황시키죠. 그들의 호흡은 나를 질식할 것 같이 만들고 그들의 호기심어린 눈길은 나를 마비시킵니다. 그 많은 낯선 얼굴들 앞에 서면 나는 벙어리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당신은 연주회를 위해서 태어나신 분 같습니다. 그리고 만일 청중과 함께 호흡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마 이미 그만 두어버렸을 듯 싶습니다.”

 


음악 들을까요?

쇼팽의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그랜드 폴로네즈, 작품 22. (연주시간 12:07)

연주에는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입니다. 1945년 녹음입니다.

 


***********

 


쇼팽은 이렇게 힘든 연주생활은 되도록 가끔씩만 하고자 했대요.

쇼팽의 연주 스타일은 어땠을까...

굉장히 작은 소리로 연주했다죠. 이런 연주 스타일은 빈에 있을 때도 그랬다고 해요. 오죽하면 소리가 잘 안 들리는 베토벤을 위해서 아주 큰 음량의 피아노를 만들어주었던 피아노 제작자가 쇼팽한데, 당신에게도 한 대 만들어드릴까요? 했대죠. ^^::

심지어 어떤 사람은 “병실의 재능”이라는 말로 좋지 않게 평가를 했구요.

하지만 쇼팽의 소리는 단지 음량이 작았다기보다 정말 미세한 부분까지 표현해내는 고도의 테크닉을 겸비했기 때문인데요, 연주회 중에 이렇게 작게 연주하기 시작하면 쇼팽은 완전히 환각상태에 빠져서 연주하기 때문에 청중들의 반응을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죠.

청중들은 리스트 같은 연주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말이죠.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쇼팽의 연주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음악평론가는 이렇게 평을 써서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 잡았다고 하죠.

“쇼팽은 아주 흥미로운 연주를 하여 우리를 즐겁게 했다. 그는 소위 말하는 최고수준의 섬세함을 보여주었는데, 피아노의 현을 해머로 전혀 건드리지 않는 듯한 정말 작은 pianissimo 소리를 냄으로써 청중들은 요정이 여는 연주회에 참석한 것처럼 좀 더 잘 들으려고 조심스레 귀를 기울였다.”

사람들의 편견은 이 비평가의 말로 어느 정도 잡았다고는 하지만, 쇼팽은 집단성을 띄는 대중들을 좋아하지 않았죠. 자기의 예술에 있어서의 필연성에 대해서 사람들이 잘 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끊임없는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이 칭찬하는 말도 믿지 않았구요. 차라리 절친한 예술가들이나 친구들과 함께 소모임 형태의 작은 음악회를 갖기를 좋아했죠. 쇼팽의 친구들이라 하면 말년의 쇼팽의 모습을 유화로 그린 화가 들라크루아, 쇼팽의 발라드의 바탕이 된 시를 쓴 시인 미츠키예비츠 같은 사람들이 포함된 귀족 친구들이었는데요, 워낙 대중과 담을 쌓고 있는데다가, 또 자신의 작품을 헌정했던 사람들도 자기에게 레슨을 받았던 귀족들이었으니 대중적인 명성은 누리지 못하게 되었죠.

그러다보니 자연 쇼팽은 살롱음악가, 여성들의 음악가라는 잘못된 평가를 받게 되었구요. 당시 리스트와 동거하던 마리 다구 백작부인의 편지를 보면, “당신이 내일 와 주시면 무척 고맙겠습니다. 저는 병에 걸렸고 지금도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당신의 녹턴 중 한 곡을 들을 수 있다면 정말 말끔히 나을 것 같습니다.”라는 내용이 있어요.

 


음악 듣겠습니다.

쇼팽의 발라드 제4번 op.52

George Cziffra 의 연주로 감상하시겠습니다. (연주시간 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