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바르샤바여 안녕\"...프레데릭 쇼팽 4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6-05-06
2007-11-27 18:58:08
허원숙 조회수 2862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6년 05월 06일 원고.... 프레데릭 쇼팽 (4) “바르샤바여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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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쇼팽이 폴란드 정부의 무관심, 냉대 속에 빈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고 폴란드로 돌아갔다고 말씀드렸죠.

1830년 쇼팽은 이제 폴란드에서도 대단한 성공을 거둔 피아니스트가 됩니다. 언론에서는 쇼팽의 음악에 폴란드의 민속적인 성격을 지닌 테마가 있다는 둥, 애국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작품이라는 둥 칭송이 자자하게 되었지요. 그 명성과 인기의 여세를 몰아서 약삭빠른 악기상인은 쇼팽에게 초상화를 인쇄해서 팔자고 제의를 했는데, 쇼팽의 답은?

“나는 버터를 싸는 종이 쪽지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한국 버전으로 다시 말씀드리자면, 난 붕어빵 봉투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ㅋ ㅋ

돈과 인기라면 명예와 체면도 다 버리는 사람들에 비하면 정말....

쇼팽이 친구 티투스에게 보낸 편지에 보면,
“나는 이익을 위해 음악을 하는 게 아니야. 극장에서도 나는 큰 보수를 받지 못했어. 내가 부 번에 걸친 연주회에서 받은 것은 경비를 제하고 3천 플로린도 채 안 됐어”라고 되어있죠.

(그러니, 만일 돈을 위해서라면 초상화를 찍어 팔았어야 하는데, 예술이 아닌 저급한 행위로 물질을 취하지는 않는다는 예술가의 자존심이 오늘날의 쇼팽을 만든 거죠.)

 


계절은 가을을 지나 이제 겨울의 문턱에 들어섰고, 이제 쇼팽은 폴란드에서의 마지막 연주회를 마치고 친구들과 파티를 했는데, 친구들은 그 유명한 폴란드의 흙을 은술잔에 담아 쇼팽에게 선사했죠. 그렇지만 누가 알았겠어요. 이 흙이 마흔 살도 못 된 쇼팽의 무덤에 뿌려지는 흙이 될 줄...

쇼팽은 자신의 운명을 예감이라도 한 듯, 티투스에게 편지를 썼죠.

“나는 바르샤바를 영원히 떠나는 것 같이만 생각이 되어서 못 견디겠어. 다시는 집에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아! 자기가 태어난 땅이 아닌 이국에서 죽는다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 일일까!

내 임종의 병상에는 내가 사랑하는 가족 대신 무심한 의사나 돈으로 고용된 하인이 입회하게 될 것인데, 어찌 참을 수 있겠나.”

사실 이런 걱정이 과장이 아닌 것이, 유럽 대륙은 혁명이 일어날 것 같은 불길한 기운에 휩싸여있는 시점이었거든요.

 


그래도 자신의 음악 세계를 위해서 바르샤바를 떠나 세계를 향한 무대로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걱정 저 걱정, 나라 걱정, 자신의 미래에 대한 걱정, 그리고 계속되는 연주 등등으로 계속 날짜를 뒤로 미루게 되죠. 날짜를 미루던 여러 이유 중에 진짜 속마음은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던 콘스탄티아를 떠나기 싫은 마음 때문이었다고 해요.

사실 쇼팽이 내성적이긴 해도 자신의 마음을 나타내는 행동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예요.

쇼팽의 음악은 정말 아름다운 노래로 가득 차 있는데요, 쇼팽 자신은 가곡은 딱 질색이었다죠.

그러던 쇼팽이 콘스탄티아에게 노래 불러달라고 말하려고 가곡을 몇 곡 쓰기도 했다는 거예요.

 


음악 듣겠습니다.

쇼팽의 가곡을 리스트가 편곡한 작품입니다.

Chopin-Liszt: Return Home (귀향) (연주시간 1:24)과 The Maiden's Wish (소녀의 소망) (연주시간 2:39)을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연주로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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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요? 멋있죠?

언젠가 읽은 적이 있는데, 음악을 문학으로 연결시켜 해석하는 것은 저급한 해석이라고 쇼팽이 말한 적이 있었대요. 그러니, 한가지 선율에 천가지 만가지 내용이 담겨있는 아름다운 선율에 단 하나의 가사만을 붙여서 부르는 가곡이 싫을 수도 있었겠죠.

이 가곡은 쇼팽이 생전에는 출판하지 않았어요. 당연하죠. 자기가 싫어하는 장르이고 또 이런 목적으로 쓰여진 곡들인데....

그런데 쇼팽의 친구 폰타나가 이 곡들을 발견해서 출판했대요. 쇼팽이 가곡을 싫어했어도 17곡을 썼다는데 그 중 11곡이 바로 콘스탄티아한테 불러달라고 하려고, 그래서 같이 연주하는 기회를 만들어보려고 나름대로 노력하면서 대쉬를 했던 곡들이래요. ^.^

 


사실은 콘스탄티아때문이면서,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자꾸 출발 날짜를 지연해 가던 쇼팽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드디어 11월 2일 쇼팽은 일행과 함께 바르샤바를 떠나 마차를 타고 빈으로 달려갑니다.

한 한시간 쯤 달려갔을까...어디서 합창 소리가 들려오는 거예요.

그곳은 제라소바 볼라 라는 곳이었는데, 쇼팽이 태어난 곳이었는데, 바로 거기서 바르샤바 음악원 교수였던 엘스너 교수가 음악원생들을 데리고 대기시키고 있다가 역마차가 볼라 라는 곳에 다다랐을때 이별의 노래를 합창하게 된 거예요.이 노래는 엘스너가 폴란드를 떠나는 쇼팽을 위해서 작곡한 칸타타였는데요, 가사 내용은

“어서 가라, 친구여!

폴란드의 흙으로 키워진

그대의 영예,

세계에 울리기를 바라노라”

 


이 합창이 쇼팽을 위해서 조국에서 불리워진 마지막 합창이 된 거죠.

영화같은 장면이죠?

굳이 장면을 보지 않아도, 상상이 가죠?

엘스너 선생님은 미소지으면서, 쇼팽이 안 보는 사이 훅 훅 한숨을 몰아쉬었을 테고, 쇼팽은 눈물을 쏟았을 테고...

쇼팽이 바르샤바를 떠나면서 가지고 간 가방에는요, 협주곡 2곡, 자작곡 악보 몇 개, 그리고 콘스탄티아가 준 예쁜 리본이 들어있었는데, 그 리본은 나중에 티투스가 보낸 편지를 묶어두는 리본이 되었다죠.

이 가방 안에 들어있는 것들이 사실 그 시절 쇼팽이 가장 아끼던 것들이에요.

협주곡은 미완성인 채로도 정말 즐겨서 연주를 했던 곡이었구요, 자신이 자랑스럽게 내어놓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했죠. 한 악장씩도 연주를 많이 했었구요.

 


음악 듣겠습니다.

쇼팽의 협주곡 제1번 op.11 중에서 2악장 라르게토 (8:28)

예프게니 키신, 드미트리 키타엔코가 지휘하는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입니다. 1984년 모스크바 실황이니까 키신이 12살때의 연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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