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나보다 더 순수한...\"...프레데릭 쇼팽 1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6-04-15
2007-11-27 18:56:40
허원숙 조회수 2741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6년 04월 15일 원고.... 프레데릭 쇼팽 (1) “나보다 더 순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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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슈만이 “여러분들, 모자를 벗으세요. 천재입니다.”라고 말한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누굴까요?

바로 폴란드의 영원한 자존심. 프레데릭 쇼팽입니다.

사실 쇼팽은 순 폴란드 사람은 아니죠. 아버지는 프랑스 사람이었구요, 프랑스에서 살다가 폴란드로 이주해 왔지요. 어머니는 물론 폴란드 사람이었구요. 쇼팽은 20살까지 폴란드에 살다가 그 이후에는 주로 파리에 거주하면서 파리를 중심으로 음악활동을 하였고, 그 곳에서 죽었으니까, 반 이상은 프랑스 사람인 것 같은데, 그래도 우리가 폴란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은, 강한 폴란드의 Zal 이라는 단어로 압축되는 폴란드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기질 때문인 것 같아요. Zal 이라는 말은 독일어의 Sehnsucht 라는 말로 표현되는 ‘그리움’이라는 말인데요, 쇼팽이 가지고 있는 음악 안에 흐르고 있는 독특한 정서를 한 마디로 표현한 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어릴 적의 쇼팽은 어떻게 음악을 시작했을까...

프랑스인이었던 아버지는 폴란드에서 프랑스어 선생님이 되었구요, 어머니는 피아노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는데요, 가족을 중심으로 가정음악회를 꾸미면서 함께 음악을 즐기는 가족의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쇼팽도 피아노와 친하게 되었죠. 아주 어렸을 적부터 엄마가 피아노를 치면 그 밑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신기한 음악소리를 들었구요, 조금 더 커서는 피아노 건반을 만지면서 노느라고 혼을 뺏긴 채 시간을 보냈다고 해요. 그런 동생의 모습을 보고, 누나가 피아노를 가르쳐 주기 시작했는데, 워낙 놀랄 만큼 빠르게 배우는 통에 누나 실력으로는 더 이상 가르칠 수 없었다고 하죠. 6살이 되어서 한밤중에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쇼팽의 모습을 보게 된 가족들은 “안되겠다. 이젠 정식으로 선생님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때부터 지브니 라고 하는 60세의 체코인에게 피아노를 배웠는데요, 그 분은 바흐라든지 모차르트에 대한 열정을 이 어린 쇼팽에게 고스란히 전해주어서, 쇼팽이 평생 자신의 음악에 가장 큰 영향을 모차르트와 바흐에게서 받을 수 있게 해 주었죠.

쇼팽은 죽을 때까지 바흐의 평균율곡집을 거울로 삼아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작곡하였구요, 그 결과로 나타난 곡은 물론 많지만, 대표적으로 24개의 전주곡 op.28이 있지요. 쇼팽이 숨을 거두기 직전에 듣고 싶어했던 곡은 자신의 곡이 아니라, 모차르트였어요.

쇼팽이 숨을 거두기 하루 전에 임종의 성찬을 받았는데, 그 전 몇 년 동안이나 쇼팽은 참회를 하지 않고 종교를 떠나있었죠. 그러다가 드디어 마지막에 폴란드의 승정 알렉산드르 에로비키가 임종의 성찬을 하러 쇼팽을 찾아왔구, 쇼팽은 승정에게 참회를 마치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제 나도 돼지처럼 죽지 않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대요.

친구들은 이제 조용히 연도를 낭송했고, 쇼팽은 마지막으로 음악을 듣고 싶다고 했대요.

당신의 소나타를 들려줄까 하니까, “아니, 내 것이 아니고, 더욱 순수한 음악을.... 내 맥박이 멈추기 전에 내가 가장 존경하는 모차르트의 곡을 쳐 주세요.”라고 했대죠.

 


음악 들을까요?

쇼팽의 곡 중에서 몇 곡 골라봤어요.

쇼팽의 3개의 에코세예즈 op. posth. 72-3과, 즉흥곡 제1번 A flat 장조입니다.

연주에는 미카일 플레트네프입니다. (2:1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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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평생을 존경과 연구의 대상으로 간직했던 두 작곡가, 바흐와 모차르트를 전수해준 선생님 지브니의 교수법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것은 바로, 이 천재 꼬마 음악가에게 공개연주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서, 음악적인 경력을 처음으로 쌓게 해 주는 것이었어요. 협연과 독주 등을 통해서, 좋은 반응을 얻은 쇼팽은 8살이었을 때 자신이 작곡한 폴로네즈를 출판하기도 했는데요, 바르샤바 레뷰 1월호에 난 기사를 보면,

“바르샤바 신학교에서 불어와 문헌을 가르치는 니콜라스 쇼팽의 아들은 진정코 음악의 천재이다. 그는 무척 어려운 피아노곡을 가볍고도 우아하게 칠 뿐 아니라, 전문가와 비평가들이 놀라워하는 춤곡과 변주곡들을 여러 곡 작곡하였다.... 만일 그가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태어났더라면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년이 되었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천재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기억시키고자 한다”라고 되어있어요.

 


8살 때 쇼팽은 제1회 독주회를 했는데, 엄마가 만들어준 흰 칼라에 검정 빌로드 반바지, 흰 양말을 신고 연주를 했는데요, 엄마가 그날 아파서 연주회에 참석하지 못했대요.

연주를 잘 마치고 집에 돌아온 쇼팽에게 엄마가, “사람들이 우리 아들 무엇을 가장 칭찬했니?”라고 물으니까, 쇼팽은 “엄마가 만들어 주신 이 하얀 칼라였어요.”라고 말했대요. 어린 것이 속 깊기는.....

 


쇼팽이 10살이 되었을 때엔 이미 너무 유명해져서 왕실에서도 쇼팽의 연주를 들으려고 했지요.

폴란드의 황제의 형인 콘스탄틴 대공은 벨베데르 궁전에 살면서 잔혹하고 난폭한 성격으로  사람들의 미움과 공포의 대상이 되었는데요, 그 콘스탄틴의 기분을 진정시킬 방법은 쇼팽의 연주를 들려주는 것이라는 것을 부하들이 알아차리게 되었대요. 그래서 부관이 급하게 마차를 타고 쇼팽을 데리러 오면 쇼팽은 그 마차를 타고 궁에 가서는 콘스탄틴 대공 앞에서 연주를 했대요.

그러면 그 난폭하던 대공은 몇 시간이나 쇼팽의 음악에 귀를 귀울였다고 해요.

그리고는 너무 신기하다는 듯이 쇼팽에게 물어보죠.
“얘야, 무슨 연유로 너는 허공을 바라보곤 하느냐?”

“너는 천정에서 음악을 읽느냐?” ^.^

 


쇼팽의 전기를 보면 평생토록 친구관계를 유지한 사람들이 몇 명 나오죠. 티투스 보이체호프스키, 보드친스키 가족, 폰타나, 슬로바키... 등등

이 친구들은 쇼팽의 아버지가 신학교에서 교수직 맡을 때 그 기숙학생들이었어요. 그 중에 폰타나라는 이름은 쇼팽의 원전 악보를 보면 많이 등장하는 이름이에요. 폰타나 악보에는 이렇게 등등...

쇼팽은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서 레슨을 많이 했는데요, 친구이자 제자인 율리우스 폰타나에게 가르쳐줄 때에는 자신의 악보를 놓고 거기에 새로 첨가하거나 바꾸면서 가르쳤고, 또 다른 제자 미쿨리를 가르칠 때에는 또 다른 표시를 첨삭하였구요, 그래서 저마다 다른 원전 악보가 여러개 나타나게 되었죠.

그리고 티투스 보이체호프스키는 여성적인 쇼팽이 소심해서 표현하지 못하는 첫사랑에 대한 감정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유일한 친구였구요, 쇼팽과 대조적으로 아주 남성적인 조숙한 친구였지요. 이 사람과 얽힌 이야기들도 많은데, 다음 시간에 해 드릴께요.

음악 듣겠습니다.

쇼팽의 마주르카 op.17의 2번, 3번, 4번입니다.

윌리엄 카펠의 연주 1951~2년의 녹음으로 들으시겠습니다.  (1:51+4:32+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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