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하고 싶은 일, 하기 싫은 일\".... 루빈슈타인 5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6-03-04
2007-11-27 18:53:49
허원숙 조회수 2735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6년 03월 04일 원고....“하고 싶은 일, 하기 싫은 일”....아르투르 루빈슈타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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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난 시간에 오늘은 루빈슈타인의 결혼이야기를 해 주신다고 했다는데....

(허) 아, 네. 루빈슈타인은 결혼을 늦은 나이에 했어요. 45세였으니까 많이 늦은 셈이죠.

루빈슈타인이 39세였을 때  폴란드의 지휘자 에밀 므리나르스키와 협연한 적이 있었어요. 그 연주회장에는 므리나르스키의 딸 아니에라가 맨 앞줄에 앉아 열심히 음악을 듣고 있었고 연주회가 끝나고 무대 뒤로 와서 루빈슈타인에게 인사를 했었지요.

루빈슈타인은 귀여운 딸에게 관심이 있긴 했는데, 독신의 자유를 결혼의 구속과 맞바꾸고 싶지 않았다고 해요. 연주도 많았고 녹음도 해야하고... 물론 녹음이라면 루빈슈타인이 자신의 연주가 이렇게나 부정확할까 하고 절망에 빠지고 또 자신을 극복하는 좋은 계기가 된 일이었지만.

당시 므리나르스키의 딸의 나이가 15살이었다고 하죠. 루빈슈타인은 39살, 그러니 나이차이가 자그마치 24살이나 차이가 났었구요.

루빈슈타인은 다시 파리로 돌아와서 살면서 언제나처럼 연주회로 바쁘게 지냈는데, 그 사이에 이 여인은 미에치스와프 문츠라는 피아니스트와 결혼을 해 버렸어요.

자기가 결혼하기에는 구속을 받을 것 같아 주저했지만 막상 남과 결혼했다니까 어찌나 마음이 아픈지... 그래도 어쩌겠어요. 그냥 마음을 접었는데...

당시에 루빈슈타인은 정말 연주도 많았었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호텔에서 생활하며 살다보니까 자연 그리운 삶은 안정된 생활이었겠죠. 그러자면 결혼을 해야할텐데...

그런데 루빈슈타인의 마음 속에 그려지는 결혼의 대상은 늘 한결같이 므리나르스키의 딸 아니에라였대요.

그러던 어느날 친구가 아니에라와 문츠가 헤어졌다고 귀띔을 해 주었대요. 이혼한 표면상의 이유는 아니에라가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것이었는데, 사실은 아니에라가 아르투르 루빈슈타인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었다고 하죠.

그 말을 들은 루빈슈타인은 아니에라를 만나서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었어요. 몇 주 후에 굳은 결심을 하고 바르샤바로 떠났고요.

루빈슈타인이 바르샤바로 달려오자 아니에라는 사랑의 고백을 하지요.

“사실 저는 당신이 우리 아버지의 지휘로 협연했던 날부터 당신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당신은 저에게 조금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어요.”

루빈슈타인은 뭐라고 말했을까요?

“내가 그 때는 아직 결혼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이 차이가 큰 것이 염려스러웠지요.”

당시 루빈슈타인의 나이가 45세.

드디어 철 든 루빈슈타인은 아니에라와의 결혼을 결심합니다. 파리에서 살고 있었던 루빈슈타인은 당연히 파리에서 결혼하려고 했죠. 그런데 파리에서 결혼하려면 3개월 이상 그곳에 체류해야 하는 법이 있었대요. 3개월을 어떻게 기다려! 루빈슈타인은 1932년 7월 영국 런던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멋있죠?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식을 하고 나서 루빈슈타인이 잠적해버린 거예요. 도대체 이 사람이 어딜 갔을까.....

영국 애인 위로해주러 갔다죠.

모르겠어요. 이 부분부터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죠.

아무튼 루빈슈타인은 결혼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았고, 앞으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고, 안정적인 생활이 되어 연습도 많이 하고, 가정적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죠.

 


음악 듣겠습니다.

루빈슈타인의 연주로 슈만의 환상소곡집 op.12 중에서 제3곡 Warum? 과 제5곡 In der Nacht 를 감상하시겠습니다. 1962년 녹음이니까 75세의 연주입니다. (3:11+3:47초)

Warum?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질문 속에 사랑의 감정이 녹아있고요,

In der Nacht는 슈만이 클라라에게 못 이룰 사랑 때문에 번민하면서 바다를 헤엄쳐 애인에게로 돌진해가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작곡했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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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빈슈타인은 1년에 평균 연주회를 120회 가졌는데, 연주자가 이동하는 거리, 리허설 작업 등을 생각하면 매일 연주회를 한 거라고 볼 수 있죠.

그런데 루빈슈타인이 연주회를 하지 않은 곳이 있어요. 그건 바로 독일인데요, 루빈슈타인의 명성이 자자하니까 당연 독일에서도 연주회 초청이 왔겠죠. 그런데 응하지 않았대요.

그 이유는 다 아시겠지만, 루빈슈타인은 유태인인데, 유태인을 학살한 나치로 대변되는 독일에서 내가 어찌 연주회를 한단 말인가.... 그런 이유죠.

당시에 독일 연주회를 주선하고자 하는 흥행사가 한스 슐로테라는 사람이었는데요,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독일 사람 전부가 다 히틀러를 찬양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히틀러에 반대한 독일 사람도 많이 있다고 아무리 설득을 시키려도 전혀 듣지 않고....

그래서 아이디어를 냈지요.

독일에서 연주회 하는 것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그렇다면 독일 국경에 가장 가까운 다른 나라에서 하자는 아이디어요. 그래서 독일 국경에 가까운 네덜란드의 나이메헨이라는 곳에서 연주회를 계획했어요.

연주회를 알리는 포스터는 당연히 독일에다 붙이고, 루빈슈타인의 연주를 듣고 싶은 사람이라면 나이메헨 정도면 멀지도 않고 갈 수 있을 것이다 라는 생각과 함께.

루빈슈타인은 연주회를 수락하는 조건으로, 연주회의 수익금이 국제적십자사에 보내진다면 연주해도 좋다고 허락을 했는데요, 이 뉴스가 나가자 독일에서는 많은 물의를 일으켰다죠.

기자들은 인터뷰를 통해서 “당신은 네덜란드에서는 독일 사람들을 위하여 연주하면서, 독일에서는 왜 독일 사람들을 위하여 연주하지 않습니까?”라는 질문 공세를 폈고,

루빈슈타인은 “우리들 유태인은 감수성이 예민한 국민입니다. 베를린에서 내가 연주하면 독일인에게 살해된 우리 친척들은 도대체 어떻게 느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라고 반문했다죠.

그런데 네덜란드의 나이메헨이라는 도시는 2차대전 중에 독일군과 격전이 벌어졌던 곳이래요. 루빈슈타인의 연주회 광고가 나자, 입장권의 태반이 독일에서 팔리게 되었거든요. 그러니 나이메헨이라는 곳은 이미 독일군을 지겹게 겪었던 곳인데, 아무리 음악애호가들이 음악회보러 온다고 하더라도 일단은 독일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이 온다는 것은 그렇게 반가운 일만은 아니었나봐요. 안절부절, 전전긍긍.....

독일 신문에는 루빈슈타인이 독일에서의 연주회를 거부하는 데 대한 분노를 나타낸 사설이 실렸고요, 이러다가 연주회 큰 일 나는 거 아냐?......

하지만 연주회 당일에는 천 명이 넘는 독일 사람들이 나이메헨에 몰려와서는 루빈슈타인의 연주에 열광했다고 하죠.

 


음악 듣겠습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 op.18 중에서 제1악장입니다.

루빈슈타인의 연주이고요, Fritz Reiner 가 지휘하는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입니다. 1956년이니까, 루빈슈타인이 69세 때이군요.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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