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늦었구나 생각될때\"....루빈슈타인 4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6-02-25
2007-11-27 18:53:25
허원숙 조회수 2590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6년 02월 25일 원고....“늦었구나 생각될 때”....아르투르 루빈슈타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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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루빈슈타인과 파블로 피카소의 이야기를 해 드릴께요.

루빈슈타인이 좋아하던 여인이 있었는데요, 폴란드의 지휘자인 므리나르스키의 딸 아니에라였어요. 당시 루빈슈타인의 나이가 39세, 그리고 아니에라 므리나르스키가 15세. 그러니 그 둘의 나이 차이는 띠동갑, 그것도 두 바퀴 돌아서 24살이었지요. 루빈슈타인은 어린 소녀였던 이 여인을 마음에만 두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 여인이 다른 피아니스트랑 결혼을 해 버린 거예요.

실망한 루빈슈타인은 파리로 돌아와서 다시 마음을 잡고 피아노와 친구들에게 마음의 위안을 찾곤 했는데요, 친구들을 좋아하던 루빈슈타인은 산책을 하거나, 차를 타거나 하면 그 종착지는 종종 파블로 피카소의 스튜디오였대요.

루빈슈타인이 피카소의 스튜디오에 가서 보면, 피카소는 항상 병, 테이블, 기타, 발코니 난간의 쇠막대.... 뭐 이런 것들을 그리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몇 달이 지나도 똑같은 것만 계속해서 그리고 있으니까, 루빈슈타인은 궁금해서 “맨날 똑같은 것만 그리면 싫증 나지 않아?” 하고 피카소에게 물어봤다죠.

그랬더니 피카소는 화가 난 듯, 퉁명스럽게, 무슨 바보같은 소리를 하고 있냐면서, 내가 그리고 있는 것은 항상 같은 것 같지만, 사실은 그릴 때마다 광선의 상태가 변하기 때문에 매번 다른 것을 그리고 있는 거라고 말했죠.

루빈슈타인은 피카소의 말이 피아노에도 적용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똑같은 음악, 똑같은 악기로 똑같은 음악가의 손에 의해서 항상 똑같이 연주되는 일은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음에도 새로운 표현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이고 싶었죠.

 


그럼, 우리도 이 사실을 확인해 봐야겠죠? ㅎ ㅎ

루빈슈타인의 연주로 슈만의 아라베스크 듣겠습니다. (연주시간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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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요? 단색의 물체에서 무지개빛 광채가 나는 것 같죠?

그리고 연주 뒤의 박수소리도 일품이죠? 연주곡의 분위기에 맞는 박수소리....

 


1961년에 루빈슈타인이 카네기홀에서 1달 동안 가진 연주회가 몇 번인 줄 아세요? 자그마치 10번이었어요. 물론 매번 다른 프로그램으로요. 그런데 당시 루빈슈타인의 나이가 74세. 놀랍죠? 이쯤되면 노익장을 과시한다라기 보다는, 초인의 경지에 들어섰다고 봐야겠죠.

하지만 도대체 무엇이 루빈슈타인을 젊은 사람도 도전하지 못하는 강행군의 프로그램으로 몰고 갔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죠. 무슨 이유에서 이런 연주회를 했을지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돈? 

사람들은 말했대요.

돈에 눈이 멀었다... 카네기홀에서 돈을 긁어가려고 연주회를 이렇게나 많이 한다....

그런데 진짜 이유는요....

리히터 때문이었어요.

리히터가 때마침 뉴욕에서 한 씨즌에 연주회를 7회나 했대요. 리히터는 당시 루빈슈타인에 비하면 러시아 촌구석에서 온 이름없는 피아니스트였는데, 7번에 걸친 연주회는 매번 매진이었구요, 정말 커다란 센세이션을 일으킨 사건이었죠.

그런데, 리히터를 뉴욕으로 불러와 연주회를 개최한 매니저가 겅교롭게도 바로 루빈슈타인의 매니저였구요, 루빈슈타인의 질투심이 발동한 거죠.

내 연주가 돈 때문이라구? 루빈슈타인은 1달동안 10번의 카네기홀 연주회를 계획하면서 자신이 돈 때문에 연주회를 그렇게나 많이 한꺼번에 계획했다는 소문을 불식시키려고, 연주회 수익금을 전액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고 약속을 했대요. 그리고 정말로 그 약속은 지켜졌구요, 그 중에는 유색인종단체 뭐 그런 단체도 있었다고 하죠.

 


오늘 들으실 음악은요, 1961년 한 달 동안 10번의 연주회를 가진 루빈슈타인의 카네기홀 실황 중에서 골라봤어요. Albeniz의 Navarra입니다. (연주시간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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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요? 젊음이 넘치는 청년의 연주같죠?

신기한 점은, 이런 대 피아니스트 루빈슈타인도 주변의 다른 피아니스트의 자극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명성은 누리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에요.

지금 들으신 음반에서처럼 74세의 나이에 한 달 동안 한 공연장에서 10회의 연주회를 가진 것도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의 자극이 없었다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구요.

더 중요한 사건은 이제껏 안이하게 연주를 해 왔던 자신의 모습을 뉘우치고 피나는 노력 끝에 음악에서나 테크닉에서나 자신을 갈고 닦아서 새롭게 태어나게 된 일이었는데, 그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피아니스트는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였었죠.

호로비츠의 연주를 루빈슈타인이 처음 들었을 때는 루빈슈타인의 나이가 55살이었구요, 호로비츠는 자기보다 15살이나 젊었었죠.

호로비츠의 연주를 듣고 충격을 몹시 받은 루빈슈타인은, 내가 현재모습 그대로 2류 피아니스트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55세의 늦은 나이이지만, 새롭게 다시 공부해서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될 것인지를 결단하는 기로에 서게 되었고요.

여름기간 동안 프랑스의 시골 마을에 들어가서  마을 전체에 한 대 밖에 없다는 업라이트 피아노를 빌려서 창문도 없는 방에 놓고 정말 피나는 노력을 했대죠.

이 두 가지 이야기만 들어보아도, “이제 늦었구나”라고 생각될 때는 사실 아직 늦지 않은 때라는 말이 실감이 나지요.

 


(아나운서) 그런데, 루빈슈타인이 좋아했다던 그 여인, 아니에라 므리나르스키는 어떻게 되었어요?

 


(답) 아, 그 여인 말이죠, 다른 피아니스트와 결혼했다가 헤어지고, 결국은 루빈슈타인과 재혼했어요. 이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