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시련은 누구에게나\" ...루빈슈타인 3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6-02-18
2007-11-27 18:52:55
허원숙 조회수 2790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6년 02월 11일 원고....“시련은 누구에게나”...아르투르 루빈슈타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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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르 루빈슈타인이 참가했던 콩쿠르가 있죠. 1910년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안톤 루빈슈타인 상” 음악 콩쿠르였는데요.

당시에 러시아 정부가 유태인 음악가에 대한 차별 대우를 목적으로 새로운 법을 제정했는데, 유태인이었던 루빈슈타인은 이런 사실을 너무 분개한 나머지 “안톤 루빈슈타인 음악콩쿠르”에 참가함으로써 저항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대요.

폴란드는 당시에 러시아의 억압 하에 있었는데, 만일 루빈슈타인이 이 콩쿨에 이런 저의를 가지고 참가했을 경우 민족 감정까지 작용해서 강제 출국이 될 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그 모든 것들을 각오하고 콩쿠르가 개최되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갔대요.

콩쿠르 첫 날부터 루빈슈타인은 모든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었고, 연주도 가장 훌륭해서 신문에서도 아예 수상자로 단정하는 판에 이르기까지 했는데, 결과는 독일 피아니스트인 알프레드 횐이라는 사람에게로 돌아갔대요.

이 독일 사람은 러시아의 황후 알렉산드라의 동생이란 소문이 나돌았고, 황후의 부친이 쓴 편지를 지참하고 왔다는 얘기도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심사위원들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루빈슈타인은 정치적인 파워게임에 지고, 대신 심사위원들이 주는 특별상을 받게 되었대요. 청중들은 분개해서 소동을 부리기도 했구요.

그런데 전화위복인 결과가 되었는데요, 이 콩쿠르의 결과에 분개한 피아노 제작자 디데를리히가 쿠세비츠키에게 말해서 공연 섭외를 받은 것이죠.

디데를리히는 쿠세비츠키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매니저였는데, 쿠세비츠키가 루빈슈타인의 억울함을 자신이 보상해주겠다면서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심포니 연주회 2회와 러시아 전국 순회공연을 하는 조건으로 콩쿠르 상금과 동일한 금액을 여행비로 선불하겠다고 했던 거죠.

 


음악 듣겠습니다.

루빈슈타인이 연주하는 Chopin Polonaise op.44입니다. 희귀한 음반인데요, Reproducing piano로 하는 연주입니다. 연도는 아마도 1920년대초인 것 같습니다. (연주시간 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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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을 잡고 있다가 놓치게 되면 내 손에 있다가 빠져나간 그 무엇만을 생각하고 안타까워하는데, 사실은 또 다른 무엇을 잡을 수 있는 빈손이 나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생각하고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해요. 루빈슈타인처럼.

 


그런데 루빈슈타인의 젊은 시절은 우리가 보는 노년의 기품있는 노신사의 모습만은 아니었어요. 루빈슈타인을 가리키는 수식어 중어 꼭 들어가는 말이, 와인, 사교, 여인... 이런 말들이 꼭 들어가죠. 그만큼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을 좋아한 사람이었는데요, 제가 첫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재능은 있지만 연습을 안 해서 부정확한 연주를 하는 피아니스트였지요.

젊었을 때의 루빈슈타인은 연주회 수입이 거의 유일한 생활수단이었는데, 항상 생활이 불안정한 가운데 사방에는 빚투성이였다고 해요. 게다가 돈이 생기면 함부로 써버리고 사치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하죠. 돈이 떨어지면 친구나 아는 사람들에게 다급하게 원조를 구하고는, 꾼 돈은 갚는 법이 거의 없었대요.

루빈슈타인이 스물한 살 때 베를린의 한 호텔에서 지낼 때였는데, 호텔 숙박비는 잔뜩 밀렸는데, 가까운 시일에 연주회가 있지도 않고, 이제는 식비도 동이 날 지경이 되었을 때 고향의 돈 많은 선배에게 다급하게 편지를 두 번이나 보냈대요. 그 선배는 그 전에도 여러 번 이런 SOS에 두 말 없이 돈을 보내주곤 했던 사람인데, 이번에는 어찌된 영문인지 아무 소식도 없고, 호텔주인은 돈 내라고 독촉하지, 맨 빵으로 겨우 끼니를 해결하면서 정신도 이상해질 지경이 되어서 아무런 희망이 안 보이자, 결심을 했다죠.

무슨 결심이냐면 자살할 결심이요.

루빈슈타인의 <나의 젊은 시절>이라는 자서전에 보면,

 


“나는 무기도 약도 없었고, 그렇다고 창밖으로 몸을 던진다면 혹시 불구의 몸으로 살아남을런지도 몰랐다. 생각 끝에 목을 매기로 하고 헌 바지에서 허리띠를 풀어 고리를 만든 다음 욕실 천장에 매달았다. 그리고는 의자 위에 올라가 고리를 목에 맨 후 눈을 감고 의자를 발로 찼다. 그 순간 꽝! 하고 나는 욕실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아마 그런 꼴을 지금 텔레비전에서 볼 기회가 있다면 요절복통했을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 쓰러진 채 한 동안 꼼짝을 못했다. 이윽고 나는 반무의식 중에 피아노 앞으로 가서 나의 비장한 심정을 건반에 쏟았다. 음악! 음악은 나의 유일한 애인이며 벗이라는 것을 잊었다니! 우리에게 삶에의 의욕을, 사랑과 열정을 불어넣어주고 마음의 평화를 주며 오늘 같은 수치스런 삶에서 건져주는 다시없는 벗이 바로 음악이 아니었던가! 이같은 각성이 어두웠던 내 눈을 뜨게 해 주었다. 나는 다시금 현실로 돌아왔던 것이다.”

 


루빈슈타인은 그 때 이후 삶을 무조건 사랑하게 되었고 언제나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게 되었다고 해요.

 


음악 듣겠습니다.

루빈슈타인의 연주로 Chopin Barcarolle(뱃노래) op.60입니다. (연주시간 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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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 시간에 이미선 아나운서님이 저에게 “루빈슈타인은 허원숙씨에게 어떤 피아니스트인가요?”하고 물으셨을 때, 제 대답이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라고 했는데, 그 뜻은 다른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들으면 기가 막힐 정도로 완벽하면서 한숨만 나오다가도, 루빈슈타인의 연주를 들으면 편해지는 것이, 왠지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진짜 해 보면 절대로 도달할 수 없도록 가장 먼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피아니스트라는 뜻이었어요.

그런데 그 이유가 사실 참 궁금했었거든요.

이웃집 아저씨처럼 소박하고 푸근하게 치면서 어떻게 저렇게 완벽할 수 있을까....

그 이유는 바로 이렇게 절망과 고통을 웃음으로 회상하고 풀어내는 열린 마음에 있는 게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