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요아힘과 전쟁과 아르투르\"... 루빈슈타인 2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6-02-11
2007-11-27 18:52:27
허원숙 조회수 2782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6년 02월 11일 원고....요아힘과 전쟁과 아르투르 루빈슈타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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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슈타인의 두 번째 이야기인데요.

루빈슈타인과 요셉 요아힘과의 인연을 이야기할까 합니다.

혹시 요셉 요아힘이라는 바이올리니스트 아시죠? 브람스의 많은 바이올린 작품을 연주한 요셉 요아힘 말이에요. 이들의 관계는 브람스가 20살이었던 1853년부터 시작해서, 브람스가 말년에 요셉 요아힘, 클라라 슈만 앞에서 자신의 클라리넷 소나타를 사석에서 초연하기까지 평생을 통해 지속되었는데요, 요아힘이 브람스 시대의 사람이니까, 굉장히 옛날 사람인 것 같지만, 사실 루빈슈타인과 바이올린의 거장 요셉 요아힘의 만남을 생각하면 시대가 이렇게 겹쳐가는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지요.

루빈슈타인은 형제가 3남3녀의 막내였는데요, 어릴 적에 피아노를 따로 배우지 않아도 어깨 너머로 누나들 피아노 레슨 받는 것을 보고, 선생님이 가고 난 다음에 피아노 앞에 앉아서는 누나들이 틀린 부분도 다 고쳐서 치고,  악보를 넘기기 위해서 쉬었던 부분은 자기도 한 박자 쉬어가면서 치고 하니까, 삼촌이 “내가 요셉 요아힘을 잘 아는데, 아르투르가 정말 재주가 있는지 테스트를 한 번 해달래자”고 해서 네 살 때 베를린에서 요셉 요아힘 앞에서 모차르트의 론도를 연주했대요. 요아힘은 연주를 듣고, 또 슈베르트의 교향곡을 노래해 주면서 쳐보라고 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놀이를 겸한 테스트를 해보고서는 루빈슈타인의 재능을 인정했더랬어요.

폴란드로 돌아온 루빈슈타인은 개인교습도 받고 바르샤바 음악원에서 수업도 받고 했는데, 집안 형편이 기울면서, 루빈슈타인의 재능이 안타깝게 되었는데, 유명하고 좋은 선생님들에게 루빈슈타인을 보여주면, 다들 비싼 레슨비를 요구하고 해서, 그 집안 형편으로는 음악 공부를 계속하기에는 힘들게 되었대요.

부모는 안타까운 마음에, 물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시 루빈슈타인을 데리고 베를린의 요셉 요아힘에게 찾아갔대요.

루빈슈타인의 연주를 들은 요아힘은 카를 하인리히 바르트 교수를 소개했는데, 이 부모가 레슨비 때문에 걱정을 하니까, 유태인 은행가를 세 명 설득시켜서 교육비의 대부분을 부담하겠다는 약속을 해주었대요.

그리고 루빈슈타인의 어머니에게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는데, 이 아이가 음악적으로 성숙할 때까지는 충분히 교육을 받아야 하므로 절대로 신동을 조급하게 출세시키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죠.

루빈슈타인은 만년에 과거를 회상하면서, “부모님이 이같은 제안을 충실히 지키셨음을 나는 지금도 자랑으로 여긴다”고 했고요.

 


음악 듣겠습니다.

루빈슈타인의 연주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K.467 중에서 제2악장 Andante입니다. RCA Victor Symphony Orchestra 의 연주, 지휘에는 Alfred Wallenstein입니다. (연주시간 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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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아르투르 루빈슈타인이 27살이었을 때, 군에 자원 입대한 이야기를 해 드릴께요. 

1914년이라 하면 1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이 뒤숭숭할 때였지요. 독일이 러시아와 싸우고, 프랑스와 싸우고, 벨기에로 쳐들어가고, 그 다음에는 영국으로, 이렇게 유럽 전역이 전쟁에 휘말려 들어갈 때였어요.

루빈슈타인은 때마침 영국에 어느 후견인 집에 초대받아서 거기에 손님으로 머물러 있었을 때였는데요. 영국도 전쟁에 참전하게 되어서 루빈슈타인이 머물던 집에 관계된 사람들도 전쟁을 피부로 느끼고 있을 때였어요. 누구네 집 아들이 실종되었다더라 등등...

그 때 폴란드에서는 요제프 필스도스키라는 애국자가 군단을 조직하고 있었는데, 당시에 폴란드는 독일과 러시아 두 나라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잖아요. 그래서 같은 나라 안에서 같은 민족끼리, 또는 형제끼리도 지배국인 러시아나, 독일 때문에 싸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필스도스키라는 사람이 군단을 조직해서 폴란드를 독일과 러시아로부터 해방시켜서 독립국으로 만들려고 했는데요.

당시 루빈슈타인은 27살이었는데, 물론 활동이 많은 피아니스트였죠, 폴란드 군단 사령부로 가서 군에 복무하겠다고 신청을 하는데, 루빈슈타인이 유창하게 여러 외국어를 구사하니까, 사관이 “당신은 사병으로 복무하는 것보다 통역으로 복무하는 것이 좋겠다”면서, 연합사령부의 통역으로 근무하도록 지시를 내렸대요.

루빈슈타인은 전쟁 중에 런던, 파리 등지에서 육군 참모부 소속으로 근무했는데요, 그 당시 음악가들은 악보나 악기를 버리고 전쟁에 참전했던 사람들이 많았어요.

작곡가 모리스 라벨은 자동차부대에 들어가 있었고, 바이올리니스트인 프리츠 크라이슬러는 참호 안에 있었다죠. 라벨의 피아노 조곡 <쿠프랭의 무덤>은 전쟁 중에 희생된 여섯 명의 친구들에게 각각 헌정된 것으로도 유명하잖아요?

아무튼, 루빈슈타인은 군 통역 일로 군복무를 하고 있었는데, 정부에서 음악이 군인들 사기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루빈슈타인에게 바이올리니스트 위젠 이자이와 함께 연합군 캠프를 순회 연주하도록 했다는군요.

 


음악 듣겠습니다.

루빈슈타인의 연주로 감상하실 곡은,

라벨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입니다. (연주시간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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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은 끝없이 연습하고 자신을 연마하고 그러다보면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두드러지게 되는데 루빈슈타인의 전쟁에 몸을 아끼지 않고 조국을 위해 바친, 멋있는 이야기를 듣고 나면, 아, 이래서 루빈슈타인의 연주가 깊고 따뜻하고 품위가 있는 이유가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