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나 죽었다!\"....프리드리히 굴다 2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6-01-21
2007-11-27 18:51:30
허원숙 조회수 3125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6년 1월 21일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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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굴다의 나체방송사건까지 말씀드렸죠.

오늘은 그 일로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사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른바, 굴다의 허위 사망 신고 사건인데요.

1999년 3월 28일 신문사의 편집국으로 팩스가 한 통 옵니다.

그 팩스에는 <프리드리히 굴다 뇌졸중으로 사망. 시신은 행방이 묘연함> 이라고 씌여 있었어요. 신문사, 방송국 난리났죠. 뉴스에 나오고, 신문마다 굴다를 추모하는 글이 실리고....

그런데 며칠 후 굴다는 잘츠부르크의 <부활파티>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는, “Aetsch,zu frueh gefreut (약오르지롱. 나 아직 안 죽었네. 너무 좋아들 하지 말라구..).”라고 말한 거죠. 이해가세요?

그런데, 굴다의 이 행동 이면에는 정말 가슴 깊숙한 곳으로부터의 저널리즘에 대한 혐오감이 뿌리박혀 있는 거예요.

굴다 사망 보도가 3월 28일에 있었죠. 그보다 두 달 전 1999년 1월 어느 날, 굴다는 공개서한에서, 자기가 죽고 나면 신문이든지, 방송에서든지 자기에 대한 추모의 글이라든지, 그런 내용으로 기사를 싣지 말고, 간단하게 “굴다 죽었다.” 이렇게만 기사를 내보내달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렇게 요구한 이면에는 여태껏 굴다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다루면서 굴다의 내면을 이해한다거나, 우호적인 기사를 쓰지 않고 씹어대기 좋은 가십거리로 치부해서 자신을 욕되게 만든 언론에 대한 반감이 팽배해 있었던 거예요.

내가 살아있을 때에는 나에게 더러운 오물을 던지더니, 내가 죽고 나니 찬사를 늘어놓겠다구? 어림도 없다. 그냥 “굴다 죽었다”라고만 기사를 내라... 라는 소리죠.

그리고 자신이 허위로 3월 28일 굴다의 사망 사실을 알리는 팩스를 보내고 가만 보아하니, 정말 이 사람들이 추모사를 낭독합네, 추모의 글을 신문에 싣네... 법석을 떠는 모습을 보니 기가 막힌 거죠.

“이것들이... 내가 그렇게 추모사 하지 말랬지....”

그리고는 잘츠부르크에서 <부활파티>에 나타나서는, “약오르지롱, 나 아직 안 죽었네. 너무 좋아들 하지 말라구...” 라고 말한 거예요.

그리고 그 다음해 1월 27일 굴다는 정말로 세상을 떠났구요, 사인은 뇌졸중이 아니라 심장마비였구요.

 


음악 듣죠......

최근에 나온 음반인데요, 굴다의 데뷔 초기 라디오 레코딩 중에서 골라봤습니다.

라벨의 쿠프랭의 무덤 중에서 제1곡 프렐류드와 제6곡 토카타입니다. 1957년 굴다가 27세 때의 녹음입니다. (연주시간 3:31 +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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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을 녹음했을 때부터 사실 굴다의 관심은 클래식에서 재즈로 넘어가고 있었어요. 1956년에 뉴욕의 Birdland에서, 뉴포트 페스티벌에서 재즈를 연주하기 시작했고, 1960년에는 EURO-JAZZ 오케스트라를 창단했구요, 공연예술의 현실과 클래식음악계의 편협함에 대한 반발심으로 전통적인 연주무대에서 물러나게 되었구요, Ossiach에서 국제 음악포럼, Lungau의 Schloss Moosbach에서 프리뮤직축제를 열기도 했죠.

굴다의 연주회는 점차 클래식과 재즈를 접합시킨 형태로 변화하기 시작했는데요, 제가 86년에 빈에서 본 굴다의 연주회를 말씀드리면...

우선 포스터가 눈길을 끕니다.

<Gulda spiet 굴다 연주회. 몇 월 몇 일 몇 시, 어디>

무슨 곡을 연주한다 라든지, 작곡자 이름만이라도 써 놓지 않습니다.

그리고 연주날이 되어 공연장에 갑니다.

공연장 홀로 들어가는 문 옆에서 나누어주는 전단지 같은 것을 펴보면...

연주회를 안내해 주는 제대로 된 팜플렛도 없어요. 복사기 프린터로 뽑은 한 장짜리 조그만 인쇄물에 연주곡목도 안 나와요.... 무슨 곡을 연주한다는 거야 도대체....

같이 연주하는 사람들 프로필, 광고,,, 뭐 그런 것만 써있어요.

그리고 무대 위에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대형으로 펼쳐져 있는 이상한 악기들... 이른바 드럼 세트, 재즈 악기들..... 그리고 피아노 옆으로 자리 잡은 마이크....

연주시간이 되면 무대에 모자를 쓰고 희한한 옷을 입고 운동화를 신은 굴다가 등장합니다.

1부는 거의 솔로 리사이틀.

마이크를 부여잡고, 인사를 시작하죠.

“신사 숙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연주할 곡은.....”

그러면서 한 곡 한 곡 자신이 준비한 음악여행으로 안내하면서 음악회를 이끌어가죠.

그런데 그 프로그램도 기존 프로그램과 다른 게, 우선 드뷔시의 피아노를 위하여 중에서 프렐류드만, 그리고 나서 쇼팽 전주곡 op.24 중에서 2번만, 그리고 드뷔시의 프렐류드 중에서 A 단조, C# 단조, 그리고 다시 쇼팽의 전주곡 op.45 C#단조, 그리고 Ravel 의 Sonatine... 이렇게 조성의 흐름은 A 단조에서 C#단조를 거쳐 F#단조로 아주 유연하게 연결되면서 넘어가죠. 하지만 연주되는 곡들은 낱개로 흩어져서 일반적으로는 하나의 흐름으로 꿰기 힘든 곡들이죠.

 


벌써 20년 전 일이네요.

음악 들을까요?

프리드리히 굴다의 곡으로 Aria (연주시간 5:19), Exercise 9 (연주시간 3:07) 연속해서 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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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피아니스트, 피아니스트 중의 앙팡-테리블.

굴다를 부르는 별명이죠.

1954년 스물 네 살인 굴다는 그의 일기에  

“나의 이상이자 목표는 바하나 모차르트 뿐 아니라 여러 재즈의 거장들이기도 하다”라고 썼어요. 그의 인생을 되돌아보면 결국 대중음악과 진지한 음악 사이를 오가며 스스로, 방랑자이며, 어디서나 이방인이었던 자신의 모습을 갖추게 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