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나 미쳤다!\"....프리드리히 굴다 1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6-01-14
2007-11-27 18:51:02
허원숙 조회수 3185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6년 1월 14일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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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드릴 피아니스트로 말하자면, 바로 이분의 말씀을 빌어서,

“Ich bin ein Wanderer" 나는 방랑자이다.

"Ich bin ein Fremdling ueberall" 나는 어느 곳에서도 이방인이다.

이 두 마디로 함축되는 피아니스트인데요,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프리드리히 굴다입니다.

 


프리드리히 굴다라고 하면, 우선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뛰어난 해석으로 기억되는 피아니스트죠. 1930년 빈에서 출생했고, 열두 살 때부터 열일곱 살까지 빈 아카데미에서 부르노 자이들호퍼 (Bruno Seidlhofer)교수를 사사했고, 열여섯이 되던 해에 제네바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그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연주활동을 시작해서 1950년에는 뉴욕 카네기홀 데뷔무대에 성공해서 국제적인 명성을 드날리기 시작한 피아니스트입니다.

이 분의 대표적인 연주라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들 수 있겠는데요, 베토벤 소나타 전곡은 굴다가 피아니스트 활동을 시작하기 한참 전인 학창시절에서부터 즐겨 연주하던 레퍼토리였는데요, 자이들호퍼 교수 문하에서 지도를 받을 때의 이야기가 있죠.

레슨시간에 굴다 차례가 되었는데, 자이들호퍼 교수가 “무슨 곡을 준비해 왔느냐?”고 물으니까, 굴다가 “베토벤 소나타요”라고 대답했대죠. 그래서 “베토벤 소나타 중에서 어떤 곡이냐?” 했더니, 서른 두 개 전부를 다 준비해왔다고 했대죠.

10대 초반의 어린 나이였지만, 베토벤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굴다는 데뷔초반부터 베토벤의 탁월한 해석으로 남다른 명성을 누렸지요. 베토벤 소나타 전곡 녹음을 1950-58년에 걸쳐 한 번, 그리고 1968년에 또 한 차례. 이렇게 두 번에 걸쳐서 베토벤 소나타 전곡 음반을 냈구요, 그 중에서도 1968년에 녹음한 베토벤 소나타 전곡녹음은 정통적인 연주로 평가받는 박하우스나 켐프의 연주와는 또 다른, 젊은 베토벤의 새로운 지평을 연 신선한 연주로서, 현재까지도 베토벤 연주의 기준이 되는 중요한 음반이 되고 있죠.

 


오늘 들으실 곡은 베토벤의 소나타 발트슈타인 op.53 1악장입니다. (연주시간 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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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를 들으셔서 짐작하시겠지만, 성격이 대단히 불같은 사람이죠. 괴짜라고 간단하게 말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사람이었는데, 자신의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 사람이었죠. 개방적인 자신의 음악적 소신과 달리, 클래식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근엄한 태도에 항상 불만을 품고 있었는데, 1969년에는 빈 아카데미에서 수여한 베토벤 반지 (Beethoven Ring)를 욕을 퍼부으며 돌려준 사건이 있었죠.

“욕”이라 하니 생각나는데, 1968년에 amadeo라는 마이너 레이블에서 제작한 베토벤 소나타 전집 녹음 작업 때, 빈의 Paul Gerstbauer 라는 유명한 조율사가 작업에 함께 했대요. 녹음하는 내내 프로듀서랑, 엔지니어, 조율사 이렇게 항상 세 명이 함께 굴다랑 작업을 했는데, 굴다라는 이 분은 어찌나 사람을 욕을 많이 해 대는지, 하루는 프로듀서, 다음날은 조율사, 그 다음날은 엔지니어... 이런 식으로 돌아가며 정말 참기 힘들게 욕을 해대면서 녹음을 했다고 해요. 그 이야기를 해준 조율사 게르스트바우어씨는 굴다 하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고 하죠. 하지만 어쩌겠어요. 그렇게 나온 음반이 정말 세계에서 둘도 없는 소중한 음반이 되었으니, 욕도 때로는 참을만한 가치가 있는 거죠.

 


1981년이 되고, 굴다의 이력에 기행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일이 한 가지 보태지는 일이 생겼는데요, 바로 TV 프로그램에서 생긴 일입니다.

Opus Anders 라는 제목의 굴다의 퍼포먼스 (작품이라고 해도 좋고) 였는데, Anders 라는 말은, “다르다”라는 뜻도 되지만, 굴다의 애인이었던 분의 성함이기도 했지요. Ursula Anders 라는 이름의 성악가였는데, 이 분과 함께 만든 슈만의 CD도 나와있어요. 앞부분에는 슈만의 Liederkreis op.39를 Ursula Anders가 노래하고, 굴다가 반주하고, 뒷부분에는 Schumann의 Fantasiestuecke op.12를 굴다가 연주한 CD인데요, 그 음반 들어보시면 알겠지만, 이 여자분 정말 노래 못하거든요.

그런데 이 Ursula Anders와 함께 만든 작품, Psycho-drama Opus Anders가 탄생한 겁니다.

무대에서는 Anders가 굴다의 반주로 슈베르트의 가곡을 부르기 시작했답니다. 그런데, 제가 말씀드린대로 이 성악가라는 분, 노래를 못해도 이만 저만 못하는 게 아닙니다. 가곡을 부르던 Anders는 이제 과거를 고백하는데, 내가 원래 성악을 했는데 어쩌다 목이 가서 노래를 못하게 되었다, 이 사실이 나를 괴롭게 한다.... 어쩌구 저쩌구 막 괴로워하다가 갑자기 옷을 다 벗더니만 무대 옆에 놓인 드럼 셋트로 알몸으로 올라가서는 드럼을 마구 쳐대고, 그런 와중에 굴다도 옷을 다 벗고 깡충깡충 뛰어다니면서 “나 미쳤다”라는 말을 외쳐대더니 Krummhorn이라는 리코더 비슷하게 생긴 악기를 빽빽 불어대는 싸이코 드라마였대요.

왜 그런 장면을 집어넣었는지 그 이유야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Anders의 마음을 옭죄이던 고민을 훌훌 털어버리는 상징으로서 옷을 벗은 게 아닐까... 제 생각은 거기까지 밖에 미치지 못합니다.

 


아무튼, 이 방송이 나간 후에 기자들은 굴다를 이해하려는 것 보다는 가십거리로 씹어대기 바빴고, 굴다는 기자들이 던진 언어의 오물에 맞아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언론에 대한 반감을 가지기 시작하죠.

 


음악 듣겠습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제 21번 K.467 의 2악장입니다. (연주시간 7:47)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하는 빈 필하모니커의 연주입니다. (197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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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같은 천재음악가 프리드리히 굴다의 이야기 다음 주에도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