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5-12-24 글렌굴드2
2007-11-27 18:49:28
허원숙 조회수 2931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5년 12월 24일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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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늘은 글렌 굴드의 무슨 이야기를 전해 주시나요?

 


(허) 이번에 새로 나온 글렌 굴드에 대한 책을 중심으로 글렌 굴드의 음악과 삶을 이야기할까 하는데요, 우선 무엇보다도 굴드의 화려한 데뷔시절 이야기를 해 볼까요?

 


(이) 그래요, 다들 아시는 대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음반으로, 세상 밖으로 나온 피아니스트잖아요?

 


(허) 피아노 교육은 어머니로부터 처음 피아노를 배우다가 캐나다에서 아주 유명한 게레로 라는 칠레 출신 피아노 교수를 사사하기 시작했구요, 열아홉이 되어서는 학업과 연주를 병행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학교를 그만두고 게레로 교수와도 작별한 뒤 홀로 오두막에서 지내며 음악에 몰두했죠.

사람들이 알기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처음 사람들에게 알려졌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 전에 이미 연주 무대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캐나다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고 봐야죠.

하지만 지금 말씀하신대로 데뷔 음반인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비로소 글렌 굴드를 전 세계에 확실히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지요.

1950년 디누 리파티가 백혈병으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고 나서, 컬럼비아 음반사의 녹음부 책임자는 리파티같은 피아니스트를 새로 발견할 수 없을까 하고 바이올리니스트인 알렉산더 슈나이더에게 전화를 했대요.

그랬더니, 이 바이올리니스트가 하는 말,

“그런 사람 하나 있지, 토론토에 있는 글렌 굴드라고.... 안타깝게도 살짝 미치긴 했지만, 피아노에서는 사람들의 넋을 빼앗을 만큼 놀라운 연주를 해 내는 인물이 있는데....”

그 말에, 컬럼비아 녹음부 책임자는 글렌 굴드의 연주회를 보러 갔대요.
바로 저 인물이다 생각에 녹음 계약을 했는데, 글렌 굴드가 제안하는 곡이 골드베르크 변주곡이었대요. 지금은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트랜드이기도 하지만, 당시로서는 연주자나 청중에게 별 매력없던 작품이었고, 어렵고 길어서 연주도 잘 되지 않던 곡이었는데.... 사춘기 시절에 이미 골드베르트 변주곡의 매력에 흠뻑 빠진 글렌 굴드는 이 작품으로 그의 첫 음반을 만들기로 한 거죠.

녹음은 성공적으로 끝났구, 1956년에 출시되자마자 곧 베스트셀러에 올랐구, 이후 한 번도 절판된 적이 없이 오늘날까지도 잘 팔리고 있는 음반이 되었지요.

 


음악 듣겠습니다.

글렌 굴드의 데뷔음반 골드베르크 변주곡 중에서 아리아와 제1변주에서부터 제10변주 푸가타까지입니다. (연주시간 약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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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음반에서 글렌 굴드는 그 전까지 상상하기도 힘든 속도로 연주를 했고, 꾸밈음 같은 것도 바로크 음악 연주의 전통적인 방식을 깨뜨리고 상상력과 자신만의 음악으로 전혀 새로운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선보였죠. 아리아에서만 보더라도 꾸밈음이 악보에 씌여져 있는 것보다 훨씬 간단한 꾸밈음으로 연주되고 있는데, 아마도 하프시코드같은 악기로는 낼 수 없는 음색의 미묘한 차이를 피아노라는 악기로는 충분히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과감하게 꾸밈음을 간단히 처리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무튼, 바로 이 녹음이 있던 날, 글렌 굴드가 나타났는데, 1955년 6월이었는데 외투, 베레모, 목도리, 장갑, 수건, 큰 생수 두 병, 작은 알약병 5개, 접이식 피아노 의자를 들고 나타났지요.

 


옷을 껴입고 다녔던 것은 지난 시간에도 말했듯이 병에 걸릴까봐 그랬지요. 글렌 굴드는 상체에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팔 어깨 입 목 가슴이 조금만 아파도 난리가 났었죠. 조금만 기침을 하게 되면 감기 걸렸나봐, 폐렴이 되면 어쩌지... 뭐 그런 걱정들이 가득 찼었구요.

어릴 적에 학교 친구가 아파서 쓰러진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그 애를 빙 둘러싸고 도와주거나 구경하던 사람들을 보고서, 나도 아파 쓰러지면 사람들이 날 저렇게 구경거리 난 것처럼 쳐다보겠지 하는 불안감에, 나는 절대 아프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을 해서는 조금만 아파도 이 약, 저 약 먹어대기 시작했대요. 그래서 약병을 달고 다녔고요,

접이식 의자는 아버지가 글렌 굴드 어렸을 때 만들어주신 건데, 등받이에 나뭇잎 모양의 조각이 있는 피아노 의자였어요. 바닥에서부터 14인치 (약 36cm) 높이였구요, 각 다리가 따로 따로 높이를 조절할 수 있게 만들어졌어요. 그 의자에 앉으면 팔의 높이가 피아노 건반과 일치되는 자세가 돼요. 그 자세는 알베르토 게레로 선생님으로부터 전수받았는데 피아노 음색이 가장 좋은 소리가 나는 자세라고 해요.

어쨌든 글렌 굴드는 이 의자를 죽을 때까지 연주할 때 마다 공연장마다 들고 다녔는데, 나중에는 쿠션도 다 떨어져서 너덜거렸는데도 전혀 고칠 생각도 하지 않고, 매니저가 만들어준 새 의자도 어디로 치워버리고 이 의자만 들고 다녔다고 해요. 쿠션만 떨어진 게 아니라, 아예 의자 뼈대만 남아서 네모난 틀과 정 가운데 가로 지르는 나무토막만 남았는데도, 그 위에 앉아 연주를 했다고 해요. 그러니 엉덩이가 얼마나 아팠겠어요. 그래서 또 병원 갔죠. 엉덩이에 큰 병이라도 있는 줄 알고. 전립선염, 직장 검사....

 


엄살이 많았긴 해도, 사실 글렌 굴드에게 병이 있긴 했어요.

등의 통증이었는데, 10살 때 척추를 다쳤는데, 그 이후로 쭈욱 지압치료를 받았구, 연주할 때에도 등이 아파서 다리를 꼬고 앉은 적도 많았다고 해요.

연주회 직전에 만성 근육통이 재발해서 통증이 심하고 긴장되면서 손과 팔이 둔해지는 일도 있었는데, 그런 일이 있은 후 부터는 아예 중요한 연주회 직전에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무대 나가기 30분 전에 뜨거운 물에 팔을 담가 근육을 풀어주곤 했죠.

흔히들 굴드의 이런 행동들은 그를 괴짜 피아니스트로 보이게 만들었는데, 사실 속 내용을 알고 보면 정말 가슴 절절히 그러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평생 가지고 다녔던 접이의자가 다 망가져가는데도 고치지 않은 것은, 아버지가 손수 만들어주신 가장 중요한 물건을 훼손시키지 않고 싶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드네요.

 


음악 듣겠습니다. 많이 듣지 않는 곡으로 감상하시겠습니다.

리하르트 쉬트라우스의 피아노 소나타 B 플랫 단조, op.5 중에서 Adagio cantabile입니다. (연주시간 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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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요? 굴드의 또 다른 매력을 느끼실 수 있죠?

감정을 확 드러내는 곡은 아니지만, 정말 가슴 속에 담아둔 진실한 마음을 솔~솔~ 다 풀어내는 곡이죠. 글렌 굴드의 진짜 마음은 아마도 이런 곡에 담겨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정말 좋은 음악과 함께 시간 가는 줄 모르겠네요.

다음 주에도 글렌 굴드의 또다른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