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5-12-17 글렌굴드1
2007-11-27 18:48:55
허원숙 조회수 3305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5년 12월 17일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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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굴드하면, 그 사람 연주도 특이했지만, 피아니스트로서의 인생도 정말 특이했던 사람이었죠. 리히터처럼, 온 세계가 전쟁 중이었던 시절도 아니었고, 아버지가 처형되었다던지 뭐 그런 역사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살았던 사람이 아닌데도, 글렌 굴드의 삶은 독특했었는데요, 무엇보다도 무대에서 연주하지 않고 음반으로만 세상과 소통하는 피아니스트였다는 점에서 가장 독특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이) 도대체 왜 무대에서 연주를 하지 않았던 거죠?

 


(허) 한 마디로 말하면... 엄마 때문이었어요. 무대를 떠난 것도 엄마 때문이고요, 약에 의존하다가 50살의 한창 나이에 세상을 뜬 것도 사실 엄마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고요.

 


(이) 도대체 무슨 말씀이죠?

 


(허) 글렌 굴드의 성격은 정말 이상했어요. 신체적으로도 잔병치레가 많았던 사람이었는데, 어릴 적에 사고로 척추가 어긋났대요. 그 이후로 건강에도 자신이 없고, 항상 건강 걱정이 끊이지 않았는데 사실 약한 체질이라기보다는 건강염려증이었던 사람이었어요.

부르노 몽생종과 인터뷰 작업을 할 때, 마이크에 살짝 부딪히는 일이 있었대요. 그런데 글렌 굴드는 의자에 쓰러지듯 앉더니 “이걸 어쩌나, 뇌진탕이야” 하더니, “나 이제 두 시간만 지나면 이런 증상이 나타날 거고, 네 시간 지나면 저런 증상, 그리고 열 두 시간 지나면.....” 그런 소리를 해서 몽생종이 기가 막혔다고 하더라구요.

한 여름에도 감기 걸릴까봐 외투랑 목도리랑 몸을 꼭꼭 싸고 다녔구요.

글렌 굴드의 어머니는 잔소리가 심한 사람이었는데, 이거 해라, 이거 하지 마라에서부터 사람 많이 모이는 박람회 같은 데는 가지도 마라, 병 옮는다. 친구도 특출한 친구는 사귀지 마라. 그저 평균적인 친구만 사귀어라... 그러다 보니까 평생을 괴롭혔던 불안감 초조증 같은 것이 어린 시절 어머니의 잔소리로부터 시작되었던 거였어요.

자기에게 평생의 동반자라고 할 수 있는 음악이라는 선물을 준 사람도 어머니였고, 또 자신의 음악을 가장 잘 이해하고 높은 수준의 음악적 견해를 가진 사람도 어머니였는데, 이렇게 잔소리와 참견이 심하다보니까 어머니에게로의 분노의 감정이 폭발할 지경에 이르렀대요. 그런데 어느 날 정말 화가 나서 폭발하다 보니까, 자기가 어머니에게 무슨 극단적인 행동을 저지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다음부터는 모든 감정을 억누르고 절제하는 삶을 살았다고 해요.

 


(이) 그런데 무대를 떠난 것과 어머니가 무슨 상관이죠?

 


(허) 완벽주의자 기질을 만들어 준 게 어머니였으니까요.

사실 글렌 굴드가 1955년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을 만들고, 다음해 한 해 동안 공개연주를 51회나 했었어요. 그러던 그가 1964년에는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자기는 천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래요. 무슨 말이냐면,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물론 자기는 천재였는데, 메뉴인처럼 그런 천재, 무대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연주할 수 있는 천재는 아니었다고 해요. 더구나 독특한 음악해석 뿐 아니라 특이한 연주 방법, 왼손이 쉬고 있을 때에는 손을 흔들어대면서 노래하기도 하고, 낮은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피아노를 치기도 하니 얼마나 좋은 구경거리였겠어요. 그런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객석의 수백, 수천 개의 눈동자가 너무 부담스러웠고, 청중이 군중으로 인식되면서부터는, 청중을 아예 적대시했구요, 무대에 오르기 전 안정제를 복용하는 습관이 생겼지요, 아는 사람이 객석에 앉아 있으면 연주를 잘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아는 사람들은 음악회에 오지 못하게 했구요.

그래서 연주여행을 하면서도 입버릇처럼 서른 살이 되면 은퇴할 거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연주회를 조금씩 줄여나가더니 정말 서른 두 살이 되어서 이미 약속된 연주들을 다 하고 나서는 완전히 은퇴를 하게 되었죠.

 


음악 듣겠습니다.

1957년 글렌 굴드가 러시아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에서 협연한 베토벤 협주곡 2번 1악장 실황입니다. 레닌그라드 아카데미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에는 라디슬라브 슬로박입니다. (연주시간 13분 4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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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음반은 글렌 굴드가 죽은 후 공식적으로 발매되었는데요, 죽기 훨씬 전에 라디오로 방송이 되었고, 학생들과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해적판으로 돌아다니다가 죽은 후에 공식적으로 발매되었다는군요.

 


엄마 무릎에 앉아 처음으로 피아노를 만져보았던 두 살 때의 이야기가 있어요. 다른 애들 같으면 피아노 앞에 앉혀주면 양손을 펼치고 철퍼덕 거리면서 피아노를 뚱땅거리고 쳤을 텐데, 글렌 굴드는 손가락 하나로 한 음을 길게 눌렀대요. 소리가 점점 작아져서 안 들리게 될 때까지 손가락을 건반에서 떼지 않았다고 해요.

아마도 그런 집요함 때문에, 누구보다도 푸가를 잘 연주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누가 봐도 음악적 재능이 철철 넘쳤던 글렌 굴드가 어린 시절 모차르트를 좋아한 것은 당연했지요. 그런데 참 그 어머니는 굴드가 모차르트처럼 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거예요.
“너는 모차르트가 아니야. 사람들이 널 모차르트처럼 생각하지 않도록 해야 해. 모차르트는 신동이어서 너무 착취를 많이 당해서 망가졌으니까 너는 그러면 안된다. 너는 평범하게 자라야 돼” 그랬대요.

그래서 굴드 집안에서는 모차르트라는 말은 욕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해요.

그런데 참 우습죠? 그래도 어릴 적의 굴드는 모차르트를 좋아해서, 자기가 키우던 앵무새 이름을 모차르트라고 지었고, 금붕어 네 마리가 있었는데 이름이 바흐, 베토벤, 하이든, 쇼팽이라 불렀대요.

 


음악 듣겠습니다.

글렌 굴드가 남긴 유일한 모차르트 협주곡인데요, C 단조, K.491의 3악장입니다. 발터 쥐스킨트가 지휘하는 CBC 심포니 오케스트라입니다. (연주시간 9분 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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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멋진 연주였습니다. 그런데 연주 사이사이 글렌 굴드의 노래소리가 꽤 많이 들리네요.

 


(허) 글렌 굴드는 어려서부터 노래를 너무 좋아했구요, 어릴 때 울어야 할 때에도 울지 않고 입을 다물고 허밍을 했다고 해요.

그리고 무대 연주가 싫어서 엄살도 많이 부렸는데, 한 번은 목이 아프다고 독주회를 취소하게 해 달라고 했대요. 성악가가 목이 아파서 연주를 못하겠다면 이해가 가겠는데, 피아니스트가 목이 아프다고 연주회를 취소하고 싶다면 보통의 경우는 납득이 가지 않겠지만, 글렌 굴드는 피아노 치면서 노래를 꼭 해야 하기 때문에 목이 아프다는 게 취소 사유로 받아들여졌다고 해요. ^.^

 


(이) 시간이 벌써 다 흘렀는데, 다음 주에도 글렌 굴드의 더 흥미로운 음악과 이야기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