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방송원고:당신의밤과음악 05-10-29 슈베르트의<물레감는 그레트헨>
2007-11-27 18:44:09
허원숙 조회수 2667

KBS FM 당신의 밤과 음악 (22:00~24:00)

허원숙의 <생활을 노래함>코너

2005년 10월 29일 (토)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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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ubert: Gretchem am Spinnrade

슈베르트: 물레감는 그레트헨

 


혹시 우연히 길에서 어떤 남자분을 만났는데, 너무 멋있어서

하루 종일 멍하니 그 사람 생각만 하면서 지낸 적 있으세요?

 


오늘 이야기로 엮어보는 음악은 , 바로 이런 이야기를 담은 음악인데요,

슈베르트의 가곡 <물레감는 그레트헨> 입니다.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슈베르트의 이 가곡은 괴테의 파우스트의 한 대목입니다.

 


어떤 장면이냐면,

그레트헨이 물레를 감는 장면인데요,

열심히 길삼을 하는 장면이 아니라,

머릿 속은 헛된 공상으로 가득채우고,

손은 그냥 물레를 돌리는 장면이지요.

돈키호테에서도 뒬씨네 양은 마을의 보잘 것 없는 아가씨였지만,

이 파우스트에서도 그레트헨은 미모도, 집안도, 학벌도

뭐 하나 할 것 없이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아가씨였어요.

그런데, 그런 아가씨가

박식한 파우스트라는 젊은 청년(물론 악마에게 판 영혼의 댓가로 얻은 젊음이지만)을

만났으니, 그 충격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저도 몇 년 전, 홍대앞을 차를 몰고 가다가

먼 발치에서 남자 셋이 걸어오는데,

얼굴은 확실히 보이지 않았지만,

그 중 한 사람이 유난히 반짝반짝 빛이 나 보여서

계속 시선이 그 사람에게로 꽂혔는데,

내 옆을 싹 스쳐 지나가는데 보니까,

바로 그 숯검댕이 눈썹의 탈렌트 그 사람이더라니까요.

어찌나 멋있던지....

암튼...

 


이 멋진 남자를 만난 그레트헨은 시름에 잠깁니다.

노래 시작하는 부분에 나타나는 오른손의 16분음표는 당연히

돌아가는 물레의 움직임을 표현했구요,

왼손의 빠암빰 빠암빰... 음들은 그레트헨의 심장의 고동을 나타냈겠죠.

 


"불안해.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어떡하지?

도대체 안정을 찾을 수 없네.

그이가 없으면 무덤같아.

그이 없는 세상은 너무 쓰라려.

내 머리는 불쌍하게도 미쳐버릴 것 만 같고, 내 마음은 산산조각나버렸네."

 


2절이 되면

파우스트를 생각하는 그레트헨의 공상이 시작됩니다.

"창가에 앉아서 밖에 그이가 지나가나 쳐다보고 있네."

 


그이의 모습을 생각하니까,

당연히 열심히 물레를 감던 손은 멈추게 되겠죠.

멍하게 물레에서 손을 놓아버린 그레트헨의 모습이 피아노 반주에 고스란히 나와있습니다.

빠암빰 빠암빰 하던 부분이 점2분음표로 아예 서 버렸네요.

그녀의 상상은 멀리서 그를 바라본 때부터 시작해서

점점 그에게로 다가가는 시각으로 진행됩니다.

 


"아, 그이의 멋진 걸음걸이, 우아한 자태.

그 입가의 미소, 빨아들일 것만 같은 눈빛

그의 말솜씨,

그의 터치,

아 그리고 그의 입맞춤."

 


그의 입맞춤 이라고 말하는 부분은 사실

이 곡의 클라이맥스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합니다.

음도 "A"가 아니고 "G"에 머물러 있죠.

사실, 이 아가씨는 파우스트랑 아직 뽀뽀를 한 사이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음은 "G"에 머물러 있고, 대신

피아노 반주가 "A"를 대신하고 더 나아가서 "Bb"까지 나아가고 있죠.

뽀뽀 뿐 아니라, 두사람 사이의 관계가 더 진전되기를 원하는 그레트헨의 간절한 바람을

피아노 반주가 대신해 주고 있는 거죠.

 


그러더니, 이 여자.

정신을 차립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물레도 피아노 반주도 다 서 버렸네요.

이런....

정신 차리자...

다시 피아노 반주가 물레질을 시작합니다.

빠라바라바라바....빠라바라바라바....

다시 물레를 감기 시작합니다.

 


"불안해 내 마음.... 어쩌지....."

그러더니 공상은 접어두고, 불가능한 자신의 희망을 간절히 절규합니다.

 


"아, 가슴뛴다.

그이를 잡을 수 있다면, 그에게 입맞출 수 있다면.....

그이 품에 안겨 죽어갈 수 있다면.... "

 


노래의 클라이맥스입니다.

아까 상상 속의 입맞춤에서 음이 한 음 낮다고 했었죠?

왜? 못 이루는 꿈의 아쉬운 상상이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이 여자... 아주 난리가 났습니다.

"차라리 날 죽여라...." 외치는 것처럼 절규하네요.

당연히 음도 아까 한 음 낮은 데 머물렀던 노래가 "A"음으로 끝까지 올라갑니다.

반주는...?

니가 올라갈 나무가 아니니 정신차리라는 듯이,

계속 물레질은 계속됩니다.

 


어때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죠?

그럼, 이번엔 정말 연주를 들으면서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