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Vladimir Sofronitsky 2
2007-11-27 18:35:07
허원숙 조회수 1288

2000년 7월 28일 (금)
KBS FM 이미선의 가정음악


음악원고 <전설 속의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소프로니츠키(Vladimir Sofronitsky)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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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전역을 돌며 정열적인 연주회를 개최하고 글라주노프, 라흐마니노프, 샬리아핀, 코르토, 네이가우스, 니콜라이 메트너, 프로코피에프와 교분을 쌓기 시작한 블라디미르 소프로니츠키는 1930년 상트 페쩨르부르그로 돌아옵니다.
상트 페쩨르부르그로 돌아온 소프로니츠키는 독일과 빈의 거장들의 작품은 물론이고, 이탈리아의 바로크 작곡가인 스카를랏티로부터, 프랑스의 현대 작곡가인 프란시스 풀랭크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품들을 그의 연주 레파토리로 삼게 됩니다. 1937년부터 1938년 사이 그가 개최했던 열 두 번의 전설적인 연주회에서는 북스테후데에서부터 쇼스타코비치에 이르는 넓은 레퍼토리를 포함하고 있었지요.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소프로니츠키는 상트 페쩨르부르그 음악원에서 교편을 잡고 연주활동도 활발히 하게 됩니다. 하지만 1941년 상트 페쩨르부르그가 독일군에게 포위되면서 그의 연주활동은 크게 위축됩니다. 그는 그 시절의 연주회를 이렇게 회상하지요.
“푸쉬킨 극장의 연주회장은 실내온도가 영하3도까지 떨어져 있었고, 모든 청중은 두꺼운 털코트를 입고도 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나는 손이 얼어붙어 장갑을 끼고 연주해야만 했는데, 그럼에도불구하고 청중들은 얼마나 연주에 도취해 있었는지, 그리고 나도 훌륭히 연주를 할 수 있었지요.”
1942년 요양차 모스크바로 거처를 옮긴 소프로니츠키는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로 정착하게 되고, 1946년 레닌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1954년부터는 대도시의 큰 공연장을 피해 시골의 작은 공간에서 소수의 청중과의 만남을 위해 모스크바를 떠나 러시아 전역을 여행하게 되지요.
1959년 몇 달 간 몸져 누웠으나 다시 레코딩 작업과 연주에 몰두한 소프로니츠키는 1960년 12월 5일 모스크바 음악원 소강당에서, 1961년 1월 7일에는 스크리아빈 탄생 89주년을 맞아 스크리아빈 박물관에서 연주회를 개최합니다. 그러나 1월 9일 모스크바 음악원에서의 연주를 끝으로 다시는 청중 앞에 서지 못했고 1961년 8월 29일 약물 과다 복용으로 60세의 생애를 마감합니다.
블라디미르 소프로니츠키는 골덴바이저나 네이가우스와는 달리 활동을 소련 당국으로부터 심하게 규제되고 검열받았습니다. 당대 소비에트 최고의 피아니스트였음에도 불구하고 해외여행은 극히 제한적으로만 허용되었구요, 그리고 그것은 후기로 갈수록 점점더 심해져서 그의 존재는 서구 음악계에서 완전히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최근에 와서 그의 음반이 CD로 복각되고 그의 연주의 가치가 높이 인정되면서 수많은 그의 음반들이 전세계에 소개되고 있지요.


전설 속의 피아니스트.
스크리아빈의 해석에 탁월하고, 슈만과 쇼팽을 사랑한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소프로니츠키의 연주로 _____________를 들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