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Emil Gilels 3
2007-11-27 18:31:53
허원숙 조회수 1434

2000년 7월 22일 (토)
KBS FM 이미선의 가정음악


음악원고 <전설 속의 피아니스트>


에밀 길렐스 (Emil Gilels) (3/4)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939년 뉴욕의 만국 박람회에 소련 대표로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와 함께 초청되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바람에 오든 계획이 무산되고 또 러시아를 떠날 수도 없게 억류된 에밀 길렐스는 1942년 공산당에 입당하게 됩니다. 이것은 길렐스에게 자신이 국내외의 정치, 사회제도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유일한 수단이었지요. 공산당에 입당한 후로부터 길렐스에게는 자유로운 예술활동을 보장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많은 상이 주어지게 됩니다. 1946년에는 스탈린상 수상자가 되었고, 1954년인민예술가의 칭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1962년에는 레닌상, 1976년에는 사회주의 노동영웅의 칭호를 받게 되지요.
1947년 외국에서의 연주회가 허락된 길렐스는 동유럽과 이태리, 스위스, 덴마크, 프랑스, 벨기에에서 연주회로 그의 기나긴 연주회의 대장정을 시작합니다.
1948년 <프라하의 봄>음악제는 길렐스의 서방세계 데뷔 무대였습니다. 그 때까지 길렐스의 이름은 전혀 생소한, 무명의 피아니스트였지요. 유난히 머리숯이 많았던 서른 두 살의 눈에 띄지 않는 외모의 길렐스가 베토벤의 발트슈타인 소나타를 연주하던 1948년 5월 29일, 그는 프라하 청중들의 우상이 되었고, 그의 이름은 곧바로 전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1955년 제네바에서 있었던 아이젠하우어 미국 대통령과 러시아의 후루시초프의 미소 문화교류협정으로 길렐스는 소련의 명망있는 연주자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게 됩니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차이코프스키의 제1번 협주곡을 연주한 길렐스는 20세기 후반의 가장 주도적인 피아니스트로서의 눈부신 활동을 시작하게 되지요.


오늘 에밀 길렐스의 연주로 감상하실 곡은 ____________입니다.
자신의 딸이자 역시 피아니스트인 엘레나 길렐스와 함께 연주합니다.


(감상 후)

전설 속의 피아니스트.
오늘은 20세기 후반의 가장 주도적인 피아니스트로 눈부신 활동을 한 에밀 길렐스의 세 번째 이야기로 꾸며드렸습니다. 내일 그의 마지막 이야기를 계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