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Emil Gilels 2
2007-11-27 18:30:57
허원숙 조회수 1248

2000년 7월 21일 (금)
KBS FM 이미선의 가정음악


음악원고 <전설 속의 피아니스트>


에밀 길렐스 (Emil Gilels) (2/4)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933년은 길렐스에게는 인생의 이정표가 된 해입니다. 그 해에는 소비에트 연방의 모든 공화국이 참여한 제1회 전 소련 음악경연대회가 열렸는데요, 당시 열일곱살이던 길렐스가 바로 이 대회에 참가해서 1등상을 수상하게 되었지요.
그의 스승이었던 라인크발트 여사는 이 콩쿨에서의 우승으로 길렐스에 대한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리고 러시아의 거장 피아니스트이자 교육가인, 모스크바 음악원의 겐리크 네이가우스에게 보내지요. 길렐스는 네이가우스에게 약 3년간 수업을 받게 됩니다.
1936년 길렐스는 빈에서 열린 국제 콩쿨에서 2등, 1938년에는 브뤼셀에서 열린 이자이 국제 콩쿨에서 1등을 수상하게 됩니다.
이자이 콩쿨에서 1 등을 수상한 길렐스는 바로 이 일로 인해서 서방 세계에 자신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왜냐면 이 콩쿨은, 심사위원으로는 로베르 카사드쥐, 발터 기제킹, 아르쿠르 루빈슈타인, 사무엘 파인베르그(Feinberg)처럼 굵직한 대가들이 많이 참가한 비중이 높은 콩쿨이었고, 입상자로는 1936년 빈 국제 콩쿨에서 1등을 수상하였던 플리에르 (Flier)나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가 이 콩쿨에 각각 3등과 7등에 그쳤기 때문이었지요.
길렐스는 같은 해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네이가우스의 조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시작하게 되었고 러시아 전역을 돌며 감명깊은 연주를 들려주게 됩니다.
1939년 길렐스는 뉴욕의 만국박람회에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와 함께 러시아의 대표로 초청을 받습니다. 하지만 곧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그 꿈은 무산이 되고 말았고, 러시아를 떠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 후 길렐스는 소련군 점령하의 도시들에서나 연주를 할 수 있었고,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로서 활동 정도만 허락되는 상황에 처했지요.


러시아의 오데사 출신으로 네이가우스 문하의 가장 빛나는 피아니스트, 에밀 길렐스의 연주로 _______________를 들려드립니다.


(감상 후)


전설 속의 피아니스트. 어제에 이어 에밀 길렐스의 음악과 이야기를 보내드렸습니다. 내일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