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Friedrich Gulda 2
2007-11-27 18:29:32
허원숙 조회수 1374

2000년 7월 18일 (화)
KBS FM 이미선의 가정음악


음악원고 <전설 속의 피아니스트>
프리드리히 굴다 Friedrich Gulda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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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 어느날, 오스트리아의 텔레비젼을 시청하던 사람들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피아니스트 프리드리히 굴다가 성악가인 우르줄라 안더스와 함께 공연을 하다가 갑자기 완전히 발가숭이가 되어서 카메라 앞에 등장한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미쳤다!”라고 외치며 이리저리 날뛰는 모습을 본 사람들에게 프리드리히 굴다는 항상 논쟁거리가 되곤 했지요.


가령,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자신의 지휘와 연주로 공연하면서, 피아니스트가 오케스트라 투티부분까지 모조리 쳐버린다든지 하는 일부터, 클래식 공연인지 재즈 공연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그의 공연방식에 이르기까지, 그의 무대 의상을 구태여 문제 삼지 않아도 굴다의 기행들은 항상 논쟁거리를 달고 다녔습니다.


16살 때 제네바 국제 피아노 콩쿨 우승자로 20살이 되던 해에는 카네기홀에 데뷔함으로써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천재 피아니스트 프리드리히 굴다.
오스트리아 빈 출신 정통파, 20세기의 비르투오조라는 평가를 받던 프리드리히 굴다였지만 그 자신은 피아니스트로서의 단조로운 생활에 충족감을 느끼지 못하게 되지요.
천재이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자신의 몸 안에 끓고 있던 뜨거운 열정때문이었을까요?
1955년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구성된 ‘굴다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창단해서 무언가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던 굴다는 60년대에 이르러서는 ‘유로 재즈 오케스트라’를 구성하게 되었지요. 1966년 빈에서 국제 재즈 경연대회를 개최하고, 1968년에는 오스트리아의 케른텐 주의 오시아흐 (Ossiach)에서 재즈 음악 페스티발인 ‘국제 뮤직 포룸’을 열어서, 다양한 사람들과 공연을 가지면서 재즈에 더욱 깊이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클래식 음악에서 완전히 손을 뗀 것이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았지요.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녹음했던 시기도 사실 같은 때였으니까요. 굴다는 이 음반으로 독일의 음반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프리드리히 굴다의 연주로, 굴다가 작곡한 “ Play Piano Play" (10개의 연습곡)중에서 제1곡,4곡,6곡을 감상하시겠습니다.
(감상 후)
전설 속의 피아니스트.
프리드리히 굴다의 두 번째 시간으로 꾸며드렸습니다. 내일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