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Sergei Prokofieff 2
2007-11-27 18:19:12
허원숙 조회수 1461

2000년 6월 29일 (목)
KBS FM 이미선의 가정음악


음악원고 전설 속의 피아니스트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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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미국으로 이주한 프로코피에프는 자신이 당시의 파데레프스키, 호프만, 로젠탈과 같은 부류의 피아니스트들과는 경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특히 베토벤 소나타 작품 101 이나 쇼팽의 에튀드 같은, 속으로 경멸하고 있는 낭만음악들을 프로그램에 포함시켰을 때에는 더욱 그 사실이 확연해지곤 했지요. 피아니스트로서의 성공에 실패하고 1921년 시카고에서 매리 가든이 각색한 오페라 <3개의 오렌지 사랑>마저 실패로 끝나자 그는 절망했습니다. 그리고는 미국 청중들의 보수성에 악담을 퍼부었지요.


“나는 뉴욕 중심부에 자리잡은 널찍한 공원에서 그 주위를 둘러싼 빌딩들을 올려다보면서 시종일관 나의 음악에 관심조차 없는 미국의 훌륭한 관현악단들, 골백번씩 <베토벤은 위대한 작곡가이다>라고 되뇌며 새로운 작품을 거세게 배척하는 비평가들, 연주가들에게 천편일률적인 프로그램을 50회이상 연주하도록 장기간의 연주여행을 지획하는 매니저들...그 모든 이들에 대한 차가운 분노를 느끼며 생각에 잠겼다”라고요.


그후 그는 파리로 그의 본거지를 옮깁니다. 1920년대의 파리의 지적인 분위기는 미국이 불 수 있는 그 어떤 것들보다 자극적이었지요. 비로소 프로코피에프는 자신의 음악을 이해하는 청중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1920년대와 1930년대에 걸쳐 몇 차례 미국을 방문했고 적어도 10여년 동안은 피아니스트로 계속 활약을 하지요. 그리고 더욱 더 자신의 작품만을 연주하는 데에 열주하게 됩니다. 1927년 다시 러시아에 모습을 나타낸 프로코피에프는 1935년이 되자 다시 러시아에 영원한 보금자리를 틀게 됩니다.


작곡가이면서 피아니스트였던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의 연주로 스크리아빈의 프렐류드 op.45-3, 날개달린 포엠 작품 51-3과 라흐마니노프의 프렐류드 g 단조, 작품 23-5를 들으시겠습니다.


(감상 후)


작곡가이면서 피아니스트였던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의 연주로 스크리아빈의 프렐류드 op.45-3, 날개달린 포엠 작품 51-3과 라흐마니노프의 프렐류드 g 단조, 작품 23-5를 들으셨습니다.


전설 속의 피아니스트,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의 음악세계. 내일도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