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Sergei Prokofieff 1
2007-11-27 18:18:41
허원숙 조회수 1471

2000년 6월 28일 (수)
KBS FM 이미선의 가정음악


음악원고 전설 속의 피아니스트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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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쇼팽이 프로그램에 안들어가면 음악회가 되질 않는다고? 내가 쇼팽 없이도 얼마나 잘 할 수 있는지 증명해 보이지”
반낭만주의의 시대가 진행중인 때였습니다. 낭만적인 색채, 넓은 음역에 걸친 분산화음. 내성부, 아름다운 멜로디들은 다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음악 만으로도 연주회를 잘 이끌어갔고요.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쇼팽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을 해댔던 프로코피에프는 모차르트에 대해서도 듣기 민망할 정도로 욕을 해 대었지요.
“1도-4도-5도, 무슨 화성 진행이 이래!”
그를 가르쳤던 선생은 간담이 서늘해졌습니다.
자신이 키운 것은 제자가 아니라 악마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프로코피에프의 선생인 아네트 에시포프는 말합니다. “그는 나의 교수법을 거의 따르지 않았어요. 재주는 정말 많은데 세련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에시포프의 가르침이 없었더라면 깨끗한 손가락 기교, 강철같은 터치, 그리고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손목은 그에게서 볼 수 없었겠지요.


청년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는 철인같은 피아니스트였지요. 러시아에서 돌풍처럼 나타나 자작곡을 연주하면서 왕성한 생명력, 넘치는 생기, 야성적인 리듬을 자랑하며 덫에 걸린 듯한 낭만주의 음악에 대한 조소로 서방세계를 놀라게 한 피아니스트였구요.


1914년 프로코피에프는 피아노로 루빈슈타인 상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1917년 러시아혁명이 나자 러시아를 떠나 미국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미국에서의 프로코피에프의 음악은 가히 충격적이었다고 볼 수 있지요. 미국에서는 그런 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프로코피에프와 그의 음악은 “러시아의 혼돈”이라든지 “불협화음의 축제” 또는 “예술에서의 과격주의”라고 불리워졌습니다.
그의 피아노 연주에 대해서 사람들은 말했지요.
“강철같은 손가락, 강철로 된 손목, 강철로 만든 이두박근, 강철로 된 삼두박근....그는 온몸이 강철로 된 인간이다.”
프로코피에프는 자신의 작품을 많이 연주했습니다.
프로코피에프가 연주한 자신의 작품 중에서 행진곡 Op.12-1과 <3개의 오렌지 사랑>중에서 나오는 간주곡, 행진곡, 그리고 토카타 Op.11을 들으시겠습니다.
(감상)
Track 1~3 (4:03)과 Track 5 (4:19)


작곡가이면서 피아니스트였던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의 연주로, 프로코피에프의 행진곡 Op.12-1과 <3개의 오렌지 사랑>중에서 나오는 간주곡, 행진곡, 그리고 토카타 Op.11을 들으셨습니다.
전설 속의 피아니스트.
오늘은 작곡가이면서 피아니스트였던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의 음악세계를 이야기와 함께 보내드렸습니다. 내일 계속해 드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