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Sviatoslav Richter 1
2007-11-27 18:17:10
허원숙 조회수 1663

2000년 6월 25일 (일)
KBS FM 이미선의 가정음악


음악원고 전설 속의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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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이름을 가졌고 오데사의 독일 영사관에서 피아노를 가르쳤다는 이유로 의심을 받아 체포되고 비밀경찰에 의해 처형당한 아버지.
그리고 그 처형당한 아버지 덕분에 줄곧 형사가 뒤따라 다녔던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그 시절을 회고하면서 말합니다.
“나는 항상 미행당했어요. 한번은 이런 적도 있었죠.
기차를 탔는데 바로 내 앞에 맨날 날 미행하던 바로 그 사람이 앉아있는 거예요.
하도 많이 미행을 당해서 내가 그 사람 얼굴도 알거든요.
그래서 내가 물었지요. 혹시 당신도 다음 역에서 내리십니까? 하고요.
그랬더니 그 사람이 내린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그랬지요. 아 그러십니까? 나는 안 내립니다 하고요.
다음 역에 도착하니까 날 미행하던 그 사람은 할 수 없이 내렸고, 난 가던 길을 계속 갈 수 있었어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피아니스트는 매일 그저 피아노만 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미행당하고, 처형되고, 정치게임에 휘말리고....
독일어로 판사라는 뜻을 가진 리히터라는 이름 때문에 처형된 아버지의 이야기는 타임지에 실린 기사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의 첫 번째 피아노 선생님이었고요.


피아니스트의 아들로 태어난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는 굉장한 재능을 타고난 어린아이였다고 하지요. 피아노로 무슨 곡이건 초견으로 연주할 수 있을 정도였지만 레퍼토리를 연습하기보다는 악보를 통독하는데 시간을 많이 보냈다고 하지요.
오페라를 너무나 사랑하는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는 15살 때 오데사 오페라 극장의 반주자가 되었고 3년 후에는 부지휘자가 되었습니다.
19세가 되던 1934년까지도 그는 피아니스트로 데뷔하지 않았고 27세가 되어서야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해서 노이하우스와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의 연주로 프로코피에프의 피아노 소나타 중에서 일명 <전쟁 소나타>라고 불리우는 8번을 감상하시겠습니다.


(감상 후) 전쟁의 상처로 아버지의 처형을 감내해야 했던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의 삶과 연주를 함께 하셨습니다. 전설 속의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의 이야기와 연주. 내일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