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Alfred Cortot 2
2007-11-27 18:16:13
허원숙 조회수 1791

2000년 6월 23일 (금)
KBS FM 이미선의 가정음악


음악원고 전설 속의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코르토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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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음악원을 졸업한 알프레드 코르토는 유럽 음악계에 뛰어듭니다. 피아니스트로서는 물론이었고요, 바이로이트의 부지휘자가 되어 지휘 활동도 시작하게 되었지요.
1902년 코르토는 로망 롤랭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클로틸드 브렐과 결혼합니다.
1902년 지휘자로서 코르토는 바그너의 오페라 <신들의 황혼>의 파리 초연을 하게 되지요. 그는 대단한 바그너 숭배자여서 바그너의 오페라 전부를 외우고 있었고 그 곡들을 전부 피아노로 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휘자로서, 또 피아니스트로서 신 프랑스학파의 많은 작품들을 소개하는 일에도 열중한 코르토는 첼리스트 카잘스, 바이올리니스트 티보와 함께 피아노 트리오를 조직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지요.


1917년 음악원의 최상급반의 교수가 된 코르토는 우수한 제자들을 피아니스트로 길러내게 됩니다. 그들 중에는 클라라 하스킬, 이본느 르뷔르 (Yvonne Lebure), 유라 겔러 (Youra Geller) 그리고 마그다 탈리아페로 (Magda Tagliaferro)가 있지요.
그리고 오귀스트 망조 (Auguste Mangeot)와 함께 음악원인 <에콜 노르말 드 무지크>를 창설합니다. 그곳에서의 제자로서는 디누 리파티, 상송 프랑수아, 이고르 마르케비치 그리고 디노 치아니가 있습니다. 그 밖에도 그는 책과 논문들을 저술했고 음악도 편집하며 음악회도 열었고 레코드도 만들었지요.


그렇게 분주한 그가 어떻게 손가락이 굳지 않게 연습할 수 있었을까 궁금하시죠?
대답은 간단합니다. 그는 연습을 못했습니다. 왜냐면 시간이 없었으니까요.
연습을 못하고 무대에 올라간 그는 항상 실수를 했고 연주 도중 잊어버리기가 일쑤였다고 하지요. 이런 실수는 사실 어지간한 피아니스트에게는 치명적인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코르토에게는 이런 것들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하지요. 왜냐면 그는 너무나도 대가였고 또 실수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테크닉과 함께 음악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연주하는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 11번의 음반에서처럼 음악이 요구하면 얼마든지 힘든 테크닉을 구사할 능력이 있었다고 하지요. 그리고 음악을 해석하는 점에 있어서도 그는 이미 세기의 일인자의 자리를 확실히 자리매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알프레드 코르토의 연주로 드뷔시의 프렐류드 중에서 __________________를 감상하시겠습니다.
(감상 후)
알프레드 코르토의 연주로 _________를 감상하셨습니다.
프랑스의 자존심 알프레드 코르토의 일생과 연주. 내일 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