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Josef Hofmann 3
2007-11-27 18:12:50
허원숙 조회수 1192

2000년 6월 17일 (토)
KBS FM 이미선의 가정음악


음악원고 전설 속의 피아니스트


Josef Hofmann (요셉 호프만)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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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선의 가정음악 <전설 속의 피아니스트>.
오늘은 피아니스트 요셉 호프만의 이야기를 음악과 함께 엮어보내드리는 세 번째 시간입니다.


1887년 11월 26일, 요셉 호프만의 데뷔 사흘 전 뉴욕 아동학대 방지협회는 언론기관에서 발표한 공고문을 보고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요셉 호프만이 그에게 허용된 주당 4회의 연주회보다도 더 많은 연주회를 하고 있다는 기사를 실고 있었습니다.


“단지 그 소년이 피아노 앞에서 찡그리거나 공중제비를 넘지않는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그 연주를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년이 파악하고, 연주하고, 해석하는 것을 쉽게 하면 할수록 그것에 기울인 노고는 그만큼 엄청난 것이다. 훌륭한 연주는 섬세한 감각을 소진하게 만들고 일단 망가진 신경계는 그를 파멸로 이끌 것이다. 해외시장과 의사 몇 분의 검사결과를 우리는 들었다. 그들의 검사결과를 존중하지만 이들이 과연 800-1000 페이지에 달하는 곡들을 암기해야하는 정신적인 부담, 복잡성, 난해함, 과학적인 어려움을 어찌 다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만약 지금의 상황이 계속된다면 그는 정상적인 아동기를 박탈당하고 말 것이다.”


위의 기사를 실은 피아니스트 에른스트 페라보(Perabo)는 “소년의 안색을 창백했고 눈 주위는 거무칙칙했다”라고 썼습니다. 어쨌든 그 전까지 많은 양의 연주회에 시달리던 10살의 어린 호프만은, 뉴욕의 한 자선가에게서 18세가 되기 전에는 무대에 세우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5만달러를 기부받게 됩니다. 그리고는 가족들과 함께 유럽행 배를 타게 되었지요.


하지만 호프만의 어린시절이 계속되는 연주생활로 착취당한 것일까요? 바로 이점에 있어서 호프만은 회고합니다.


“나는 대중 앞에서 계속 연주했어야 했다. 6년동안의 은둔은 친절하고도 관대한 분의 기금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나의 가족 역시 호의로 받아들였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그 세월의 대부분은 허송세월이 되고 말았다. 대중앞에 선다는 것은 야심을 향한 박차이다. 만약 어떤 어린아이가 직업적인 음악가가 될 것이 확실하다면 전문적인 평가를 통해 더 좋은 음악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연주라 함은 일종의 시험이자 본인이 얼마나 진보하고 있는가를 파악할 수 있는 척도이다. 생각해 보면 은둔은 나에게 전혀 불필요한 것이었다. 나는 정말이지 병을 앓고 있지도 않았고 6개월이면 충분히 건강을 회복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6년이란 세월은 오히려 나의 야심을 맥빠지게 만들었다.”


어린시절, 강요당한 휴식을 아쉬워하던 요셉 호프만의 연주 _________________를 들으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