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Walter Gieseking 3
2007-11-27 18:11:07
허원숙 조회수 1362

2000년 6월 14일 (수)
KBS FM 이미선의 가정음악


음악원고 전설 속의 피아니스트


Walter Gieseking (발터 기제킹)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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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선의 가정음악 <전설 속의 피아니스트>.
오늘은 피아니스트 발터 기제킹의 이야기를 음악과 함께 엮어보내드리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독일이 낳은 천재 피아니스트 발터 기제킹은 독일 작곡가의 작품 전부를 연주했습니다. 심지어는 라흐마니노프의 콘체르토까지 연주했지요. 그는 몇 명 안되는 현대 음악에 흥미를 가진 국제적 감각의 예술가였고 코른골드(Korngold), 시릴 스코트(Cyril Scott), 쇤베르크, 치마노프스키, 스크리아빈, 부조니, 힌데미트, 카셀라와 같은 작곡가들의 주요 작품을 연주했지요. 하지만 그의 최고 명성은 드뷔시와 라벨의 해석가로서였지요.
전성기시절, 그러니까 1920년부터 1939년까지는, 그보다 더 미묘한 음색으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는 없었습니다. 페달기법에 관한 그의 지식은 뛰어난 것이어서 특히 반페달의 효과를 내는데 대가였지요. 반페달이라 함은 페달을 완전히 떼지 않고 중간쯤만 들어서 바꾸는 페달 사용법을 말하지요.
기제킹은 드뷔시 곡에서 아주 작은 소리로 연주해야하는 음색을 처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의 오묘하면서도 섬세한 소리는 커다란 음악회장 어느 구석에서도 다 들을 수가 있었다고 하지요. 어쨌건 그는 드뷔시 음악에 정평이 나 있었고 그 분야의 대가였습니다.
2차대전 동안 기제킹은 독일에 체류하면서 독일과 독일 점령하에 이던 프랑스에서 연주활동을 계속합니다. 그 때문에 1945년엔 나치 재판을 받아야했고 1947년까지 공개석상에서 연주하는 것을 금지당했지요. 많은 동료들은 그가 나치에 가담했다고 생각했고 그가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이를 항의하는 데모와 군중의 시위도 있었습니다. 어쨌거나 그는 이제 연주에 있어서 마력을 상실했고 대다수의 음악회에서 그저 생각없이 치는 듯이 보였지요.
하지만 전성기 시절의 그는 세기의 가장 뛰어난 피아니스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훌륭한 터치를 지닌 순수한 예술가.
주위의 어떤 피아니스트보다도 페달과 악기의 색채감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던 피아니스트.
그리고 광대한 레파토리와 어떤 곡을 막론하고 기본적인 음악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과 그 곡을 뛰어나게 아름답게 표현할 줄 아는 음악성을 지닌 음악가였습니다.


오늘 들으실 기제킹의 연주, _____________________곡입니다.